[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구파도 감독, 귀여운 월하노인들의 이야기
2021-07-09
글 : 배동미
구파도 감독,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이하 <만년이 지나도…>)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죽은 자는 모두 흰 구슬과 검은 구슬로 된 염주를 차게 된다. 흰 구슬은 살아생전 행한 선행을, 검은 구슬은 악행을 의미한다. 인구 대폭발로 인해 모든 구슬이 흰 구슬인 영혼만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게 되고, 검은 구슬을 흰 구슬로 바꾸기 위해서는 저승의 신이 하는 일을 아르바이트처럼 도와야 한다. 바로 이승의 사람들을 부부의 연으로 연결해주는 월하노인의 역할이다. 주인공 샤오룬(가진동) 역시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월하노인으로 일한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서 잃어버린 절절한 옛사랑 홍징칭(성 유 후아)과 조우하고, 월하노인 파트너 핑키(왕정)의 마음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 우리가…>)에서 순수하고 풋풋한 청춘들의 사랑을 전했던 구파도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만년이 지나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만년이 지나도…>는 부천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직접 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특별히 <만년이 지나도…>를 영화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년이 지나도…>는 2000년에 쓰기 시작해서 2001년에 출판된 소설이다. 영화로 옮기려고 노력했었지만 워낙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가 많다 보니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 실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한국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보게 됐다. 정말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사후세계를 묘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영화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 이후로 <만년이 지나도…>의 영화화를 다시 결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촬영한 작품인가.

=2019년 12월에 크랭크인해서 2020년 2월에 크랭크업했다. 크랭크업을 2주 앞두고 코로나가 발생했는데, 당시에 대만에는 마스크도 부족할 정도로 코로나 사태가 심각했다. 마지막 2주간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시절 우리가…>의 주연배우 가진동에게 주인공 샤오룬 역을 맡겼다.

=가진동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가진동에게 역할을 맡기면 안심이 된다. 현장에서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가진동이 이 역할을 잘한다.

-<만년이 지나도…>의 샤오룬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여주인공 홍징칭에게 결혼해달라고 조른다. <그 시절 우리가…>의 순애보 캐릭터 커징텅(가진동)과 유사하다.

=소설 집필 순서는 <만년이 지나도…>가 <그 시절 우리가…>보다 먼저다. 그러다 보니 남자 주인공이 옛사랑에 대해 가지는 느낌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샤오룬과 홍징칭의 사랑도 안타깝지만 보답받을 수 없는 핑키의 마음도 애절하다. 두 연인 사이에 끼어드는 핑키가 얄미워 보이지 않도록 연출했는데, 왕정 배우에게는 핑키가 어떤 캐릭터라고 설명했나.

=핑키는 과거 나쁜 남자를 만나서 연애한 적이 있고, 죽고 나서야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샤오룬의 진정성을 보고 느끼면서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사랑에 대한 핑키의 태도는 한마디로 대범함이라 할 수 있다. 자고로 사랑은 대범해야 된다. 핑키는 상대가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이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마음 역시 솔직하게 표현해서 사랑스런 인물이다. 그를 지켜보는 우리도 핑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눈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한 방울 떨어뜨리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서러워서 엉엉 소리 내며 쏟아내는 눈물도 있다. 샤오룬이 홍징칭을 처음 재회할 때 흘리는 눈물은 후자였다.

=사실 시나리오 리딩 때 가진동이 눈물 연기가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그때 나는 “좋은 연기자는 무조건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위로했다. 그래 놓고 촬영에 들어가선 “울어”라고 하니까 가진동이 “울 필요 없다면서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무조건 울어”라고 했고 아마 가진동은 설움에 복받쳐서 운 것 같다. (웃음) 그 장면에서 개가 등장한다. 가진동이 큰 소리를 내서 우니까 개가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여러 번 재촬영해야 했다.

-월하노인이 된 망자들이 교복을 입고 이승 사람들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 유니폼이 전통의상이 아닌 교복이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산뜻해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월하노인의 특별한 유니폼이나 복장을 묘사하진 않았고 영화에서만 교복을 입혔다. 사후세계의 인물이 다양한데 망자를 통솔하는 경찰은 제복을 입고 재물신은 카지노 딜러와 같은 차림을 하고 있다. 월하노인에게 교복을 입힌 건 최대한 귀엽게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명색이 노인인데 교복을 입히는 건 안 어울리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람’ 싶었고, 실제로 배우들에게 교복을 입혀보니 괜찮았다. 영화 속 설정이 소설과 달랐던 점이 또 하나 있다. 번개 맞아 죽은 샤오룬의 외모였다. 소설 속에서 샤오룬은 피부가 터지고 새카맣게 탄 참혹한 모습이다. 영화 촬영 회차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연배우에게 특수분장을 시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덜 흉측한 모습으로 순화시켰다. 러닝타임이 흐르면서 점점 상처가 회복되는 설정을 녹여 특수분장을 줄여나갔다. 그러다 상처가 회복되면 샤오룬의 영혼도 점점 회복된다는 아이디어도 떠올린 것이다.

-월하노인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 유리병에 든 우유를 마신다. 혹시 대만에 이와 관련한 전설이나 이야기가 있나.

=중국 전설에서 모든 영혼은 환생 전 망각의 차를 마신다. 그래서 망자들이 노인처럼 차 한잔을 마시고 기억을 잊도록 그렸어야 하는데, 아무렴 과학기술이 발달했는데 저승도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에 자판기에서 우유를 뽑아 마시는 걸로 설정을 바꿨다.

-저승 장면의 조명은 울긋불긋하게 처리했다. <그 시절 우리가…>의 해사한 조명과 대비되는데 저승 신을 연출할 때 촬영감독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두 영화의 톤이 매우 다르지만, <만년이 지나도…>의 촬영 감독과 <그 시절 우리가…>의 촬영 감독은 동일인물이다. (웃음) 중화권에서는 망자가 서방극락세계로 갈 때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고 믿는다. 죽은 영혼들은 극락세계로 가는 방법이나 길도 모른 채 이곳에 떨어진다. 그래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느낌이 들도록 최대한 파랗고 진한 색을 사용했다.

-<만년이 지나도…>에는 염라대왕도 등장한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염라(이정재)와 달리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인데 염라대왕을 이렇게 묘사한 건 어떤 이유인가.

=대만은 다민족이 얽혀 사는 지역이다. 염라대왕 캐릭터는 대만 원주민 출신 배우를 기용했다. 일종의 수호자로서 원래부터 대만에 살던 사람이란 의미에서다. 강력한 영혼의 소유자는 겉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년이 지나도…>와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교하자면, <신과 함께> 시리즈는 긴 러닝타임을 할애해 망자가 살아생전 어떤 좋은 일을 했고 어떤 나쁜 일을 했는지 일일이 심판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만년이 지나도…>에서 망자는 좋은 일을 하면 흰 구슬을, 나쁜 일을 하면 검은 구슬을 갖게 된다. <만년이 지나도…>와 <신과 함께> 시리즈 모두 영혼의 심판이란 기본적인 설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만년이 지나도…>는 과거에 집중하기보다는 ‘앞으로 네가 좋은 영혼으로 거듭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더 중점을 둔다. 만약 더 좋은 영혼이 되고자 한다면,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보다 희망적인 이야기다.

-구파도 감독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사랑을 절절하게 그리고 결국에는 그 사랑을 포기하는 용기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반드시 복수한다’, ‘반드시 이 사랑을 지킨다’라는 집념이 강하다. 창작자로서 나는 현실의 내가 못하는 것, 내가 못하기 때문에 정말 행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이야기로 만든다. 정말 복수하고 싶은데 캐릭터가 복수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나의 집념을 풀어내려고 한다.

-끝으로 현재 대만 영화계의 상황은 어떤가. 구파도 감독이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대만의 모든 영화 현장은 현재 촬영이 중단된 상태다. 극장도 전혀 운영되지 않는다. 드라마 현장은 여전히 촬영을 하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용기인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더 파더>다. 2개월 전에 봤다. 대만의 코로나 방역은 이전까지 안정적이었으나 최근 들어 코로나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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