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호 감독의 <거래완료>는 ‘중고 거래’를 소재로 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성 배우부터 신선한 뉴페이스까지 각색의 배우들이 독립된 챕터들을 채우는 가운데, 전석호와 태인호는 각각 영화를 열고 닫는 역할을 맡았다. 전석호가 연기하는 정광성은 한때 LG 트윈스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을 만큼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범죄에 연루돼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한정판 유광 잠바를 LG 트윈스의 열성팬 재하와 중고 거래하는 이야기가 첫 번째 에피소드다. 마지막 챕터 ‘크리스마스 선물’은 소설가의 꿈을 이제 그만 놓으려는 석호(태인호)가 세계문학전집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생>의 하 대리와 성 대리 역으로 처음 인연을 맺고 <굿와이프> <국민 여러분!>를 거쳐 <거래완료>에서 딱 한 번 마주치는 인연을 연기한 전석호와 태인호를 만났다.
-<거래완료>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전석호_소속사 부사장도 그렇고 회사 관계자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나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들을 되게 좋아한다. 나나 형도 여기 시나리오 받아보는 것을 좋아하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섯 개 에피소드 중에 내 꺼가 제일 좋았다. 만약에 옴니버스 영화로 잘 안 모이더라도 이 에피소드를 단편으로 살려서 서울독립영화제 같은 곳에 출품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웃음) 그리고 촬영 들어가서 진짜 열심히 했다. 야구 이야기인데, 내가 영혼도 팔았단 말이야~! 원래 두산 베어스 팬인데 LG 트윈스 잠바를 입고 연기했다. (웃음)
-어느 팀이든 상관없지 않나? 배우를 위해 설정을 바꿔줄 순 없었는지. (웃음)
전석호_바꿀 수가 없다. 유광점퍼는 LG 밖에 없고 다른 구단 팬들도 그걸 안다. 요즘이야 LG가 잘하지만 LG가 우승했던 1994년 이후 한동안 가을 야구를 상징하는 유광점퍼를 입을 일이 없었다는 스토리가 있지 않았나. 정말이지 엘·롯·기(LG, 롯데, 기아) 팬들의 충성심은! KBO는 엘·롯·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가장 흥행이 잘 된다고 좋아한다.
태인호_아, 롯데 팬들은 예전부터 엄청난 광기가 있었다. 내가 사직구장 옆에 살았다. (웃음) 학교 다닐 땐 롯데를 엄청 좋아했는데 나이 먹고 나니까 시즌 140경기씩 챙겨보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더라고.
전석호_많지. 힘들지. 그런데 나는 야구장을 자주 갔다. 코로나 전에는 포수 뒤쪽, 내야 맨 끝에 앉아서 보는 거 좋아했다.
-전석호 배우는 처음부터 첫 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고, 태인호 배우는 어땠나.
태인호_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을 때 약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이런 적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모든 인물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따뜻한 이야기라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 읽기 전에 (조)경호랑 미팅을 되게 오래 했고 끝나고 술 마시면서 말도 놓았는데, 시나리오를 다 읽고 새벽에 문자를 보냈다. “경호야,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잘 봤다. 같이 하고 싶다.”
-실제로도 소설가를 꿈꿨던 조경호 감독 자신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는 아마 석호일 것이다. 시나리오를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그 역할을 맡긴 게 아닐까.
태인호_처음엔 역할이 안 정해져 있었다. 난 처음에 캐릭터 이름이 ‘석호’이길래 (전)석호가 하려나 생각했는데…. (웃음) 나중에 경호한테 물어보니까 그건 아니었다더라.
-우연히 재하와 함께 야구 경기를 보게 된 정광성은 “야구 너무 좋아하면 너만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 대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태인호_아, 진짜 못됐다. 어떻게 애한테…. (웃음)
전석호_사회적으로 미끄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그때 내가 더 잘했으면 그런 얘길 안 했을 텐데, 너무 깊게 빠져있으면 내 잘못인지도 모르고 일을 저지른다고 나처럼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사실 아이의 순수함을 닮고 싶은 질투도 있었던 거 같다. 나도 지금 저 아이처럼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그런 말을 한 거다. 야구장 촬영이 진짜 힘들었다. 두산-LG 경기가 세 번 있는데 한 번은 외부 촬영, 한 번은 내부 촬영 이런 식으로 찍어야 했다. 심지어 내 촬영 분량은 90%가 야구장이다. 야구장에서 쳐 맞고, 야구장에서 사기 치고, 야구장에서 감동받고, 나 혼자 쌩 난리를 친다. (웃음) 한정된 공간에서 우리가 어떤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단순히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해주는 이야기보다는 이 아이를 통해 나도 무언가를 얻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태인호_네가, 아니면 그 인물이?
전석호_나도, 그 인물도. 촬영에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간절함을 보여줬을 텐데, 이걸 한정된 시간 안에 찍어야 하니까 더 간절해졌나 봐. 홈 앤 어웨이(스포츠 경기에서 서로 다른 두 팀, 즉 홈 팀과 원정 팀이 각각 상대방의 홈구장에서 한 번씩 대결하는 방식)로 경기가 진행되니까 이번에 못 찍으면 한 달 후에나 촬영이 가능했다. 그래서 오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다들 진짜 고생하면서 찍었다.
-반면 재하는 “간절히 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정광성이 중고거래를 통해 얻은 것도 이 말이 아니었을까?
전석호_유광점퍼는 가장 잘 나갔던 시절에 대한 집착이다. 마치 다 큰 어른인 척 하지만 옛 영광을 빨리 놓지 못하고 쥐고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사실 희망을 꿈꾸는 게 잘못된 건 아닌데, 괜히 꿈꿨다가 상처만 더 커질 수 있다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거다. 희망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다. 아이랑 거래를 하면서 어쩌면 마음이 통할 수도 있겠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주제는 마지막 챕터와도 연결되며 영화를 하나의 테마로 이어준다. 사실 냉소적인 태도가 팽배한 요즘 같은 시대에 너무 순진하기만 한 소리가 아니냐고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마무리가 중요하다.
태인호_그래서 더 좋았다. 사실 따뜻한 작품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아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거래완료>는 정말 힘들게 찍은 영화다. 하루는 이거 찍었다가, 하루는 다른 에피소드 찍었다가, 감독과 스태프들이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이면 큰 에너지가 생길 수 있겠다, 소박하지만 큰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분 모두 연극판에 오래 있다가 <미생>으로 TV 드라마를 시작했다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나. 그래서 더 친해졌나.
전석호_사실 주변에서 그렇게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난 전혀 몰랐다. (웃음) 그냥 부산 출신 형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내가 대학로에서 큰 공연을 했던 게 아니라 작은 소극장에서 주로 연기를 했고, 운 좋게 <미생>이란 작품을 만나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그때 형 소개로 만났던 회사에 지금까지 있다. 어떤 공통분모 때문에 가까워졌다기보다는 사람 자체가 좋아서 친해졌다. 내가 맨날 이렇게 까불고 놀려도 받아준다. (웃음)
태인호_둘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다른 점이 많다. 난 석호처럼 못한다. 석호가 <미생> 때 마당발이라서 모든 배우를 연결하는 브리지 역할을 했다. 배우들 전화번호도 다 받아서 우리 모이자, 술 마시자는 얘기하는 쪽이었다.
전석호_난 지금도 그러고 있다. 사람은 안 변해~. (웃음)
-그럼 태인호 배우는 현장에서 어떤 포지션인가. 가만히 있어도 동생들이 알아서 따르는 타입?
전석호_그렇지. 은근히 밀당하는 타입. (웃음)
태인호_마음은 석호랑 비슷한데 표현하는 법이 다르다.
전석호_형은 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모든 술자리에 다 앉아있다. 그게 너무 웃기다. (웃음)
태인호_가서 조용히 있어서 사람들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또래들끼리 만나면 엄청 떠드는데.
-연극판에서 시작해 <미생>으로 대중들에게 발견된 이후 지난 7여 년간 두 분 행보가 흥미롭다. 전석호 배우는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작은 소극장 무대에 틈나는 대로 오르고 최근엔 예능까지 얼굴을 비춘다. 태인호 배우는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영도> 같은 독립영화에서 원톱 주연으로서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전석호_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 거니까.
태인호_그런 게 있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하던 게 익숙하고 재밌다. 부산에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래서 내 초점은 연극보다 영화 쪽에 가 있었다. 아직도 내 안에 풀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어서 계속 더 하고 싶은 거다. 연극 무대에 서는 건 잠시 미뤄뒀지만, 나중에도, 아니 지금도 계속하고 싶다.
전석호_<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워낙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니까 (장)항준이 형이랑 함께하게 됐다. 공연도 드라마도 영화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좋은 건 그냥 다 하게 된다. 또 그렇게 했을 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형이 말한 부분은, 그런 것도 있다. 난 40년 가까이 서울에 살면서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았다. 어디 가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내가 사는 공간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뭐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느냐며 좀더 무모한 도전을 많이 했다.
태인호_우린 그런 건 생각할 수조차 없다. 난 20대 시절을 부산에서 다 보냈다. 부산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은 연극 아니면 할 게 없다. 그리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좀 낯설더라.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고, 하지만 또 다른 두 분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가 기대된다. 앞으로 어떤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나.
전석호_얼마 전에 드라마 <지리산> 촬영이 끝났고,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때까지>가 있다.
태인호_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가 있는데, 조만간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