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표현 수위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했다”
2021-07-12
글 : 김성훈
사진제공 쇼박스

매진, 매진, 매진.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돈 덕분일까.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최고 화제작은 단연 <랑종>이다. <랑종> 상영이 끝난 뒤 진행되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온라인으로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매진되기까지 단 2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타이어로 무당을 뜻하는 <랑종>은 타이의 북쪽에 위치한 이산 지방을 배경으로 신내림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을 다루는 호러 영화다. 한국의 나홍진 감독과 타이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프로듀서와 감독으로 만나 화제가 된 작품이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가 첫 공개된 뒤 나흘만인 지난 7월 6일 줌으로 만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타이어로 만든 영화가 한국이라는 큰 무대에서 공개된다는 사실이 긴장되면서도 흥분된다. 지난주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뒤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게 기회를 준 나홍진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완성한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더 긴 심층 인터뷰는 현재 발행된 <씨네21> 1314호에 실린다.

-나홍진 감독이 쓴 시나리오 원안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점에 매료됐나.

=그간 내가 연출했던 호러영화와 분위기, 정서, 서사 전개 방식이 달라 굉장히 흥분했다. 전작 <피막>에서 보여준 코미디 요소가 전혀 없어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드라마가 전사적으로 흥미진진했다.

-각색 과정에서 취재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무엇을 취재했나.

=타이의 무속신앙과 토속신앙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 타이 전역에 있는 무당을 취재했다. 특히 타이 북부 지방, 영화의 주요 무대인 이산 지역을 방문해 많은 무당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무당들에게 들은 얘기나 신내림과 관련해 타이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 중에서 영화에 반영된 부분이 있나.

=원작의 큰 줄기는 그대로지만 취재하면서 세세한 설정들이 이야기에 많이 추가됐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건 오프닝 시퀀스에 자막으로 등장하는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라는 설정이다. 실제로 이산 지역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

-님(싸와니 우툼마)이 신내림을 받은 바얀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신인가.

=그렇지 않다. 취재를 통해 접한 여러 신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신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까닭은 진짜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인가.

=시나리오 원안에서 이미 설정된 형식이다. 나홍진 감독과도 이 형식에 대해 많은 논의를 주고받았는데 관객이 좀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느끼려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도를 보니 이산 지역은 북쪽으로는 라오스, 남쪽으로는 캄보디아와 가까운 국경 지역이더라. 지형적으로는 바다와 멀고 산이 많은 지역이던데 이곳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

=타이 전역에서 활동하는 무당 중에서 유독 이산 지역의 무당들이 시각적으로 눈에 띄고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영화에서 님이 달걀을 이용해 질병을 고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그 지역의 무당들이 굿이나 의식을 치를 때 달걀을 이용하더라. 또 다른 이유는 타이의 동북부 지역 전체가 산이 많은 건 아닌데 유독 이산 지역에 산이 많았고 그게 이곳에서 촬영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다.

-이산 지역을 처음 찾았을 때 그곳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타이 영화의 단골 배경인 대도시 방콕이나 유명 관광지인 치앙마이와 달리 이곳은 나 같은 방콕 사람들에게도 낯선 지역이라 관객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이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곳이기도 하고.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은 캄보디아 국경과도 인접한 곳이라 캄보디아 문화도 일부 섞여 있어 낯선 문화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 마을 곳곳에 불상, 신과 관련된 소품, 깃대 등 무속신앙이나 토속신앙과 관련된 장치나 소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건 미술팀이 작업한 건가.

=아니다. 실제 이산 지역의 풍경이다.

-님을 연기한 싸와니 우툼마는 매우 리얼한 연기를 선보여서 잔상이 오래 남는데 그는 타이에서 어떤 배우인가.

=타이에서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연극배우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얼굴은 아니다. 그는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고 틈틈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한다. 전작 <원 데이>(2016)에서 작은 역할로 인연을 맺어 님 역할을 요청했고, 알다시피 님은 연기하기 무척 어려운 캐릭터인데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싸와니 우툼마를 포함한 주요 배우들은 주로 연극배우들로 구성됐는데, 수차례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깊은 숲이나 외딴곳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곳에서 촬영하면서 섬뜩했던 순간이 있었나.

=전혀. 영화를 찍을 때는 집중하느라 귀신이 실제로 있었더라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웃음)

-박재인 안무가가 좀비의 움직임을 안무로 설계한 <곡성>과 달리 <랑종> 속 좀비들은 개나 거미 같은 동물, 곤충처럼 움직이던데 어떤 컨셉으로 설계했나.

=안무는 여러 사람의 생각과 손길이 섞였다. 남자 무당이 밍에게 생긴 이상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의식을 행하는 후반부에서 남자 무당의 제자들이 강아지나 개처럼 돌변하는 장면은 배우들에게 어떻게 움직였으면 좋겠는지 생각을 물어보며 만들어냈다. 밍이 보여주는 이상 증세와 움직임은 나홍진 감독의 소개로 함께 작업한 박재인 안무가가 직접 안무를 만들어서 동영상을 보내주었고, 나릴야 군몽콘켓과 함께 안무 영상을 보고 상의하며 만들었다. 좀비들의 움직임이 제각각인 건 캐릭터마다 조금씩 다른 컨셉의 안무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성적인 묘사, 동물 학대와 아동 학대 등을 묘사한 몇몇 장면을 두고 윤리적 재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나홍진 감독도 나도 그 부분에 대해 우려한 바 있다. 나홍진 감독과 굉장히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고, 어떻게 묘사할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또 신중하게 연출했다. 그럼에도 언급한 그 장면들은 ‘인간의 악’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했고, 나름 적당한 수위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촘촘하게 짜여진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는 서사에 빈칸과 물음표가 많다. 그건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제공하기 위함인가.

=맞다. 전작들은 인과관계에 따라 서사를 전개시켰지만 이번 영화는 빈칸을 둠으로써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것은 나홍진 감독이 제안한 부분이기도 하다.

-<랑종>은 전작과 장르도 소재도 다르지만 업보와 속죄(<피막>), 원죄(<포비아> 시리즈 1, 2),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셔터>)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인간의 죽음, 믿음, 죄, 악 같은 주제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다루는 것 같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2, 3가지를 구상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템을 먼저 만들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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