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거래완료' 조경호 감독, 진솔하게 나를 담아서 만든 다섯 편의 이야기들
2021-07-13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거래완료>는 중고거래와 관련된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거래되는 물건마다 깊게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물건마다 사연이 다양한데, LG 트윈스 팬인 초등학생(임승민)에게 야구잠바를 팔러 온 전직 야구 선수(전석호)는 안타까운 이유로 야구의 꿈을 접었어야 했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신체에 부착하면 바로 수면에 빠질 수 있는 장치를 중고로 사러 온 재수생(복권일)은 판매자인 고3 수험생(채서은)에게 찰나의 떨림을 느낀다.

밴드로 활동하고 싶은 신입 공무원(이규현)과 그에게 공무원 시험 수험서를 사는 기타리스트(이교형)의 운명도 얄궂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비디오 게임 막판을 깨야겠다며 게임기를 중고로 사들이는 사형수(조성하)와 20년 가까이 신춘문예에 낙방하자 소장하던 세계문학전집을 팔러 온 작가 지망생(태인호)의 이야기도 안타깝다. <거래완료>는 인물들을 향해 알맞게 따스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5개의 이야기에 고른 균형을 유지해낸다. 첫 장편 영화로 부천을 찾은 조경호 감독을 만나 영화의 곳곳에 숨겨진 감독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기획한 영화인가.

=대학 졸업 후 회사원으로 7년 일했다. 서른넷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에 들어갔다. 졸업 때까지 세 번의 영화 제작 기회가 있었는데, 앞서 만든 단편 영화들이 다 영화제를 못 갔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이번 작품만큼은 허세를 부리지 않고 내가 잘 아는 것들, 남들보다 내가 좀더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이야기가 일기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다. 전세를 빼서 마련한 2500만원으로 마지막 도전을 했다. 앞서 두 편의 단편을 만들며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소개하고 싶은 독립영화계, 연극계 친구들을 다 모아서 장편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 10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전부 다 주연을 할 수 없으니 옴니버스를 떠올렸다. 택시에서 벌어지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은 짐 자무시 감독의 <지상의 밤>을 좋아하는 데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옴니버스이기도 했고.

-첫 번째 이야기인 <2002년의 베이스볼 자켓>은 개인사와 어떤 연관이 있나.

=야구위원회 산하 스포츠투아이란 회사에서 7년간 일했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 공을 던졌을 때나 배트로 쳤을 때 카메라로 분석해서 각각의 통계가 나온다. 스핀 레이트는 어떻고 공이 어느 정도로 꺾여서 포수에게 들어가고 등등. 그걸 전략 분석에 활용해서 선수들 연봉에 반영하고 팬들에게도 공개된다. 나는 이를 한국에 도입하는 일을 담당했다. 원래 드라마나 영화에서 야구장 장면을 찍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작은 독립영화지만 우울하지 않고 감동적이고 스펙터클도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스위치>는 불면증에서 시작했다. 잠을 못 자서 친구들에게 장난스럽게 “내 몸에 스위치가 달려있어서 그걸 누르면 잠에 빠졌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한 적 있는데, 거기서 착안한 판타지 장르로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 <스위치>는 수능을 앞둔 재수생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실제로 나는 강남 8학군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82년생이고, 수능이 현재보다 중요했던 세대로서 이를 녹여내려고 했다.

-세 번째 이야기인 <붉은 방패와 세 개의 별>은 기타 중고거래와 관련된 이야기다.

=20대 초반 기타를 쳤다. 나는 취미 기타로 남았지만 영화에 기타리스트로 등장하는 이교형은 20대 때 같이 기타를 치다가 프로가 된 친구다. 지금은 프로 기타리스트로서 홍대에서 배고프게 생활하고 있다. 그를 취재하면서 그의 이야기와 감정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5장마다 모두 관객을 끌어당기는 ‘훅’을 넣으려고 했는데 3장에서는 밴드 연주가 그런 역할을 한다. 이교형만 실제 기타리스트이고 나머지 배우들은 한예종 출신의 연극배우들인데, 이교형과 이들은 한 장면을 위해서 4~5개월 합숙하면서 연주 연습을 했다. 배우들은 연주가 처음이고, 이교형은 연기가 처음이기 때문에 서로 교환 레슨을 했다. 영화를 찍을 때도 재밌었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정말 재밌었고 다섯 개의 이야기 중 배우 간 케미스트리가 가장 좋았다.

-요즘 일상화된 중고거래를 매력적인 소재로 썼다.

=실제로 중고거래를 해보면 재미있는 것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는 점이다. 구매자로서는 주머니 형편이 넉넉하다면 굳이 중고로 물건을 안 살 것이고, 판매자 입장에게도 쓰던 물건을 팔고 싶지 않은 정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중고거래를 매개로 만난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더 쉽게 속마음을 터놓게 되는 상황도 재밌었다. 실제로 내가 중고거래로 대학로 연극배우에게 기타를 산 적 있다. 우리 둘 다 기타를 취미로 치고 있지만 예술계 지망생으로서 힘들게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서 우리는 커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금액을 깎아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웃음) 이처럼 중고거래라는 소재를 이용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드라마 <심야식당>이 음식을 극의 중요한 소재로 가져가지만 결국 식당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듯이.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한 4장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아닐 것 같은데.

=주제와 이미지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올해 40대가 됐다. 내가 살아온 삶을 한 번 더 반복하고 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정말 짧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쓸 때 이야기와 이미지가 반대로 가는 걸 좋아한다. 슬픈 상황에 처한 캐릭터가 오히려 웃는 모습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잖나. 사형수가 되어 억울하게 죽을 사람이 슬프게 홀로 어떤 걸 준비하기보다 마지막 소원인 90년대 비디오 게임을 깨는 모습이 이미지로 다가왔다. 교도소란 어두운 공간과 총천연색 게임의 대비가 재밌을 것 같았다.

-수능, 취업 준비 기간, 사형집행 전, 신춘문예 등단 준비 등 인생에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고된 순간들을 모아서 옴니버스 영화로 동여맸다.

=40대가 되면서 중년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내 개인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 지금 나이까지 이렇게 지망생인 입장인 상황이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패자들 그리고 두 번째 기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형수가 두 번째 기회를 얻고 야구선수도 한 번 실패한 선수지만 누군가는 자기를 좋아하고 있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될 꼬마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선수의 야구 카드를 가지고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재수생은 명백히 두 번째 기회에 도전하는 데 거기에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로맨스를 담을 수 있었다. 3장의 밴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밴드로서 실패하고 연습공간에서 짐을 빼는 상황이지만 <타이타닉>에서 마지막 순간에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처럼 함께 공연을 한다. 5장 <크리스마스 선물>은 누군가는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는 석호의 글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인 김가영이란 꼬마가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안톤 체호프 단편 같은 느낌으로 모아 후대에 전할 수도 있겠다고 봤다.

-다섯 가지 이야기가 달리 진행되지만 1장에 나온 야구선수 광성이 2번째 장에서 뛰어가는 행인으로 등장하면서 연결된다.

=<매그놀리아>를 다시 보고 공부하면서 연결점을 주려고 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이야기들이 한 쇼트에 연결되면서 끝난다. 배우들도 재밌어하고 이야기적으로도 풍성해졌다. 되짚어보면 어린 시절 봤던 MBC <테마게임>에서 두 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두 이야기가 반드시 겹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테마게임>과 <매그놀리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였던 것 같다. (웃음)

-장르영화들이 인기가 많은 요즘, 세세하고 촘촘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도전이었을 것 같다.

=글을 써도 한 줄 글에 자기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을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영화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따뜻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성향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사람들이 <어벤져스>에 거는 기대와 <거래완료>에 거는 기대는 다를 것이고 돈을 투자하는 주체도 다르다. 어쨌거나 독립영화 연출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지구는 이렇게 돌아간다’는 걸 솔직히 보여주는 것 밖에는 없다. 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많이 보여 주는 것만이 제작을 지원해준 경기콘텐츠진흥원과 영상원에 대한 예의이자, 영화를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재밌어할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는 <허공에의 질주> <라이프 오브 파이> <벤허>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작품의 톤 앤드 매너를 참고해서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었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지금 준비 중인 시나리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한다. <부기 나이트>나 <성난 황소>처럼 한 인간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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