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더 베타 테스트' 짐 커밍스, PJ 맥케이브 감독 - 할리우드에 대한 우화
2021-07-13
글 : 배동미
PJ 맥케이브, 짐 커밍스 감독(왼쪽부터).

<더 베타 테스트>의 공동연출자인 짐 커밍스와 PJ 맥케이브는 16년간 함께 공동각본가이자 공동연출자, 그리고 동료 배우로 함께 활동해온 친구 사이다. 2005년 대학에서 각각 영화 연출과 연기 전공자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각본을 쓰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한 <더 베타 테스트>는 할리우드에 대한 우화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인 할리우드 탤런트 에이전트 조던(짐 커밍스)은 결혼을 6개월 앞두고 보랏빛 편지봉투에 담긴 유혹적인 초대장 하나를 받는다. 성적 취향을 체크해서 우편으로 부치면 그에 부합하는 상대를 지정해 정해진 시간에 한 호텔에서 만나게 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초대장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을 떠올리게 하는 <더 베타 테스트>의 랑데부는 단순히 유혹에 빠진 남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아니라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사라져 가는 조던의 직업군, 즉 할리우드 에이전트의 불안한 상태를 함께 꼬집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지난 7월 9일 화상으로 만난 영리한 두 연출자는 <더 베타 테스트>의 각본이 탄생한 바로 그 차고에 나란히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짐 커밍스 우린 원래 서로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항상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러다 사람들을 속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말이 나왔다. 탤런트 에이전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촬영한 건가. 크랭크인과 크랭크업 일정을 알려달라.

PJ 맥케이브 2019년 11월 29일에 촬영을 시작해서 12월까지 18회차로 찍었다. 촬영 이후 완성하기까지 14개월간 후반 작업을 하게 됐다.

짐 커밍스 촬영을 마치고 한 달만에 편집을 마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영화계가 이렇게 락다운이 될 줄 몰랐다.

-각본을 공동으로 썼는데 어떤 방식으로 함께 글을 썼나.

짐 커밍스 일단 시나리오를 쓰기 전 구글 문서에 리서치한 내용을 다 넣어 둔다. 그렇게 자료를 모은 뒤 트리트먼트까지 완성하고 나면 소프트웨어 ‘라이터듀엣WriterDuet’을 이용해서 두 사람이 책상 양쪽에 앉아 함께 시나리오를 쓴다. 시나리오를 쓸 때 대사 하나하나가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실제로 연기도 하면서 쓴다.

-공동연출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각자의 연기도 디렉팅해야 할 텐데.

짐 커밍스 PJ는 내게 늘 “끔찍한 연기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웃음) 기본적으로 정신없이 촬영장에서 뛰어다닌다. 카메라 뒤에서 연출을 하다가 바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해야 하는 식이다. 각자가 연기할 때는 서로가 카메라 뒤에서 액션과 컷을 외쳐주면 되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둘 다 연기할 때다. 프로듀서나 코디네이터 등 여러 스탭이 우리의 연기를 보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챙긴다.

-짐 커밍스가 연기한 주인공 조던의 대사 양이 엄청나다.

짐 커밍스 조던은 본래 스스로를 잘 통제해서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식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영화 후반부 주차장 신을 보면 조던이 말을 미친 듯이 빨리 한다. 제스처도 애니메이션처럼 많이 쓴다. 조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데 보는 관객으로서는 웃긴 장면이다.

PJ 맥케이브 영화 <엑소시스트>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다가 말미엔 조던이 완전히 말을 멈춘다. 그런 식으로 각본에서부터 제스처와 대사 리듬이 극단적으로 가도록 했다.

-현지 매체들로부터 얼굴 연기가 짐 캐리와 같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짐 커밍스 어릴 때부터 얼굴 근육을 잘 썼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아주 작은 변화라도 얼굴에 나타났다. 생각하는 대로 표정에 다 드러나서 여자친구에게 거짓말을 못할 정도다. 대사로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 얼굴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조던은 회사에서 성적 판타지를 담은 비밀스러운 공간인 호텔을 찾을 때마다 트레이닝 바지와 운동화로 갈아입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 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짐 커밍스 말한 그대로다. (웃음) 조던은 이런 일탈을 처음 해봐서 긴장되고 무서운데 일단 빨리 볼일을 보고 난 뒤 ‘빨리 도망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원래 에이전트들은 대부분 상류층처럼 깔끔하게 꾸민다. 그가 받는 초대장도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느낌이 있다. 따라서 뭔가 갖춰 입은 느낌이 들도록 셔츠와 넥타이는 그대로 뒀는데, 볼일이 끝나면 바로 도망가려고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조던이 첫 호텔 방문 때 치아 미백을 하면서 각별히 외모에 신경 쓰는 것으로 그려진다.

짐 커밍스 원래 할리우드 사람들이 이는 하얗게 만들고 피부는 까무잡잡하게 태운다. 조던이 치아 미백에 집착하지만 앞니에 국한된 이야기고, 안쪽 치아는 다 썩은 상태다. 웃을 때 보이는 곳까지만 미백을 하는 건데 할리우드 자체가 그렇다. 겉만 번드르르하다.

-조던이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도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마약으로 입이 자주 마르는 것처럼 입술을 혀로 핥는 제스처도 자주 등장한다.

짐 커밍스 탤런트 에이전시 탑 4 안에 코카인이 만연해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암시가 영화에 분명히 있다. 기본적으로 입이 말라있고 계속 으르렁거리고 얼굴 자체가 고무처럼 움직이면서 정신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의 중후반부, 호텔에서 만난 여인을 카페에서 만난 조던이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알려달라고 집요하게 묻는다. 이름만 알면 개인정보가 웹에 다 퍼져있는 세상이란 사실이 섬뜩하다. <더 베타 테스트>는 현실 세계와 웹, 그리고 개인 정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데 연출자로서 현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짐 커밍스 예전에 탤런트 에이전트는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셀러브리티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종의 메신저이고 인간 SNS였던 셈이다. 컴퓨터와 SNS의 발달로 그 역할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여행중개업이 무너지듯이 말이다. 조던이 여성을 발견하고 전화번호가 아닌 이름을 묻는데, 성까지 알 필요도 없고 이름만 알려달라고 한다. 이름만 알면 웹에서 모두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를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신경쇠약적인 곤경에 빠진다.

-<더 베타 테스트>는 할리우드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가까이에서 경험한 할리우드는 실제로 어떤 곳인가.

짐 커밍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로컬 시상식이다”(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 라고 한 게 굉장히 정확한 표현이다. 할리우드는 그만큼 배타적이다. 그리고 쿨하지 못한 곳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시스템 자체를 우회해서 만들어졌다. <더 베타 테스트>는 바로 이 방 안에서 감독 두 사람이 14개월간 동고동락하면서 각본을 썼고 클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조달해서 탄생했다.

PJ 맥케이브 99%의 할리우드 사람들은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만 하고 오직 1%만 영화를 만든다. 극중 조던이 계속 말만 하는 것처럼 할리우드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팅을 가지면서 말한다. “정말 재밌는 이야기네요.”

짐 커밍스 그놈의 “정말 재밌는 얘기네요!”

PJ 맥케이브 “정말 재밌는 얘기네요. 우린 관심이 있으니 다음에 또 얘기해요” 라고 말만 할 뿐 실제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아이즈 와이드 셧>을 떠올리게 한다. 연출자로서 좋아하는 영화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짐 커밍스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가 있었다. 언급한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한 재현 방식으로 ‘미국인들이 섹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단순한 이야기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기생충>도 레퍼런스 중 하나였다. <기생충>의 카메라는 굉장히 정교하게 움직이며 서사를 표현해낸다. 이런 정교한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흔치 않다. 데이비드 핀처의 <조디악>과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같은 느낌도 내려고 했다. 이창동의 <버닝>도 레퍼런스 중 하나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벤은 단순히 대화하는 장면만으로도 어떤 공포감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카메라가 유려하게 흐르는데 이런 느낌을 우리 영화에서도 표현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이 있다면.

짐 커밍스 요즘 한국영화 보면 질투가 난다. 왜 우린, 왜 나는 이렇게 못 만들까.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한국영화계에 감사하고 우리 영화를 봐준 관객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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