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액션히어로'의 배우 이석형, 이주영 - 현실과 장르 사이에서, 돌려차기!
2021-07-14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이주영, 이석형(왼쪽부터).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장 귀엽고 유쾌한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단연 <액션히어로>라 할 만하다. 아날로그한 홍콩 액션 영화의 향수를 간직한 이진호 감독이 막강한 개성으로 무장한 두 배우 이석형, 이주영과 합심해 이른바 ‘학식코믹액션’을 선보인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연극영화학과 청강생 주성(이석형), 학과 조교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피로에 찌든 대학원생 선아(이주영)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남다른 히어로적 소울을 타고난 괴짜들이다. 학과장인 차 교수(김재화)의 입시 비리에 얽히게 된 두 사람은 삭막한 한국 청년들의 세태 위로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B급 액션 영웅의 행보를 옹골차게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꿈의 제인> <하트>로 독립영화계의 신선한 뉴페이스로 떠오른 이석형, 최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 보였던 이주영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이주영, 이석형(왼쪽부터).

-이경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긴 했지만, 가까이서 호흡하는 역할은 아니었다. 이번엔 학식을 먹으며 함께 대학 입시 비리를 타파하는 액션 듀오로 활약하게 됐는데, 오랜 친구이기도 해서 감회가 남달랐겠다.

이주영 석형과는 같은 학원에서 연기를 배울 때 처음 만난 사이다. 석형이 학원에 먼저 와 있었으니 내겐 선배인 셈이다. (웃음) 그때 석형은 고등학생, 나는 스물아홉 즈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꿈을 쫓아가던 우리가 드디어 그걸 잡은 상황이랄까? 뿌듯하고, 신기하고, 조금 얼떨떨하다.

이석형 누나가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가 가장 신났다. 학원에서 같이 수업 듣던 사이에서 이젠 함께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찍는구나, 생각하니 한동안 놀라웠다. 실제로 잘 아니까 서로 피드백을 활발하게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B급 코믹 액션을 표방한 작품이라 글로만 구현된 각본 단계에서는 취향에 따라 감응의 정도나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이주영 원래 B급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중 하나가 장준환 감독님의 <지구를 지켜라!>이다. 배우로서 <액션히어로> 같은 작품을 해보는 게 로망이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혼자 연출자가 된 양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좋아하는 편인데, <액션히어로>를 읽을 때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무척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이석형 액션과 코미디,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다 들어있는 책이었다. 성룡의 <취권> 같은 홍콩 액션은 물론 <트랜스포머> <존 윅> 등 할리우드 액션물도 두루 좋아한다. 정해진 예산이나 촬영 여건을 생각하면 독립영화에서 오히려 액션 장르를 시도하기 더 힘들지 않나. 그런데 이진호 감독님이 과감하게 ‘통 큰 액션’을 한다고 하시니까 더 믿음이 갔다. (웃음)

이주영 석형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인데, 극 중 선아가 우마 서먼처럼 ‘추리닝’을 입고 나오는 점도 재밌었다.

-특유의 긴 팔다리 때문에 선아의 운동복이 유독 짧게 보였다. 의도된 연출인가.

이주영 아니다. (웃음) 한국에서 기성복을 사면 내게는 대체로 짧다.

-이석형 배우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서 몸이 유연하다고 들었다. 중국 무술, 맨손 액션이 다채롭게 등장하는데 훈련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석형 태권도 4단인데, 그건 그냥 어릴 때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학원을 다닌 것뿐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기에 도움은 된 것 같다.

이주영 선아는 발차기가 중요한 캐릭터였다. 나는 옆발 차기, 앞발 차기 등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짜고짜 시작했다. 베테랑인 무술 감독님의 지도를 따라 파주에 있는 서울액션스쿨에서 열심히 수학했다. 최근에 다른 작품에서 형사 역할을 맡아서 다시 액션스쿨에 갈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기본 자세가 나온다고 하더라. “제가 얼마 전 <액션히어로>란 영화에서 발차기가 주특기인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라고 자랑스레 말씀드렸지. (웃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회복지학과 학생 주성과 아르바이트에 찌든 연극영화학과 대학원생 선아. 두 사람이 겪는 극 중 사건들은 지극히 판타지적이지만 둘이 처한 환경은 무척이나 한국적인 청년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석형 그 괴리에서 인물의 중심을 잡는 일이 힘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인 반면, 주성이란 인물은 너무 태평하다거나 액션을 너무 잘한다거나 하는 만화적 설정을 품고 있다. 두 극단을 오갈 뿐, 중간이 없는 이야기라는 점이 <액션히어로>의 매력인 동시에 연기할 때의 어려움이기도 했다.

이주영 액션 장르의 기본 정서가 일종의 권선징악 아닌가. 악당을 물리친다는 원리가 중요한 장르라는 점에서, 액션 배우를 꿈꾸는 선아의 내면에는 선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한편, 선아에겐 타협하고 안주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있다. 결국 우리 누구나 다 그런 면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도 20대에는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은데 어딘가에 가로막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선아도 아마 그런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주성의 어딘가 자유스럽고 엉뚱한 구석이 배우 이석형이 가진 본연의 매력과 잘 맞아떨어진 듯 보인다. 이주영 배우의 경우 그동안 연기한 일군의 캐릭터 중에서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하는 인물을 맡았다.

이석형 <액션 히어로>는 내가 가진 재밌는 부분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스로 코미디를 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편인데 그동안 어두운 역할이 먼저 들어왔다. 이경미 감독이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불러주셨을 때도 그런 이유에서 특히 반가웠다. 이진호 감독님은 옛날에 내가 <꿈의 제인> GV에 참석해서 열심히 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찾아주신 관객분들을 만족시켜야겠단 생각에 열심히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이주영 단편영화 <몸 값>을 시작으로 그동안 장르적인 캐릭터성이 부각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선아 같은 인물을 항상 만나고 싶었다. 너무나 평범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오히려 놀라운 인상을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영화다. 선아는 주어진 환경에 많이 억눌리는 인물이라 특히나 현실적인 캐릭터였고, 배우로서는 그런 점이 더 끌렸다. 신기하게도 <액션히어로>와 더불어 올해 부천에 함께 초청된 단편영화 <목소리>에서도 극 속의 공기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동안 보여드린 것과는 조금 다른 면들을 작품에 녹여낼 수 있어서 감사한 경험이었다.

-두 사람 모두 차기작 소식도 연이어 앞두고 있다.

이주영 개봉 예정인 김곡, 김선 감독님의 영화 <보이스>에서 해커로 나온다. 상업영화에서 조, 단역을 맡으면서 편집을 당한 사례가 많은데, 이번 영화에선 편집이 거의 안돼서 기쁘다. (웃음) 거의 4시간가량 후시 녹음을 했고, 녹음실에서 내 분량이 대부분 살아있는 걸 보고 한참 즐거워했다. 그리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인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 가수 윤시내 선생의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하는 엄마의 딸이자 유튜버로 나온다.

이석형 최근 개봉한 호러 영화 <괴기맨숀>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그리고 7월 말부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에 합류할 예정이다. 원래 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연기해왔는데, 20대가 되고 나서 요즘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끊고 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드디어 전업 배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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