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 감독상 수상작] '그녀는 만찬에 초대받지 않았다' 리 헤이븐 존스 감독
2021-07-16
글 : 배동미
100% 웨일스어 대사로 된 공포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발디의 아리아 <Nisi Dominus>가 흐르면서 막을 연 영화는 영국 웨일스의 아름다운 저택 곳곳을 비춘다. 이 아름다운 곡조에는 “주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이란 성경 시편 구절이 담겼다. 내포된 의미는 “신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은 믿음을 상실한 것 같다. 첫째 아들 기토는 성도착증을 앓고 있으며 둘째 아들 그웨리드는 마약에 탐닉 중이다. 아버지 그윈은 약한 동물을 사냥하는 데서 활력을 찾는다. 국회의원인 그윈은 런던 정치계에서 권력을 쥔 것은 물론 웨일스 땅을 이용해 돈도 푸지게 벌어들였다.

한데 곧 이 집에서 만찬이 열릴 예정이다. 어머니 글렌다만 동동거리며 만찬을 준비하고 있다. 글렌다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서빙할 젊은 여성 카디가 일일 고용돼 저택을 찾고, 말수가 적은 카디는 만찬을 준비하면서 가족의 눈을 피해 괴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만찬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웨일스 태생인 리 헤이븐 존스 감독이 웨일스 신화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정령 블로데이웨드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가져온 이야기다.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 머물고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나 영화 <그녀는 만찬에 초대받지 않았다>에 대한 이야기와 웨일스에 대해 물었다.

-당신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다. <BBC>의 인기 시리즈 <닥터 후> 시즌12의 일부를 연출했다는 건 알지만 아직도 당신에 대한 정보가 베일에 싸여있다. 영화감독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많은 감독들이 그렇듯 나도 연기로 출발한 경우다. 나는 런던에 있는 로열연극아카데미(RADA)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연기에만 매진한 건 5년 정도였는데 웨일스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었다. 연기를 하면서 ‘이게 원하는 게 맞나’ 싶었고 TV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연출자에게 나도 연출을 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 후로 연기 경력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TV시리즈 감독을 많이 맡게 됐다. 장편 영화를 연출한 건 <그녀는 만찬에 초대받지 않았다>가 처음이었는데 TV 시리즈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TV 시리즈는 프로듀서와 작가 역할이 강해서 연출자가 작가주의적으로 시각적 표현을 펼칠 기회가 적다. 시청자 눈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최우선이다. 반면, 나는 연극도 연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연극적이고 표현주의적으로 구성하는 걸 좋아한다.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내 비전을 보여줄 기회가 더 많다고 느꼈고, 내가 영화감독의 일을 더 즐긴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의 무드를 짓누르는 '습지의 깨어나면 안 되는 여인'에 대한 지역 괴담은 웨일스의 전설이나 신화에서 기인한 것인가.

=웨일스의 전설인 마비노기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느슨하게 가져와서 작가와 내가 만든 얘기다. 웨일스에는 전설이 많다. 마비노기 영웅전은 네 줄기로 나뉘어있는데 네 번째 얘기에 블로데이웨드(blodeuwedd)란 꽃의 정령이 있다. 얼굴이 꽃으로 뒤덮인 이 정령은 마법사에 의해 창조됐는데 인간에게 시련을 당한 뒤 복수를 펼친다.

-영화는 비발디의 아리아 <Nisi Dominus>를 들려주면서 집 곳곳을 비추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교음악을 쓰고 독특한 구조의 집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아리아에는 성경 시편 “주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이란 내용이 담겼다. 즉, “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극중 그윈 가족들은 많은 부를 창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저주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비발디의 종교 음악에 모티프가 된 성경 말씀을 영화의 주제와 결부시키기 위해서 인트로 음악으로 썼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저택은 작가 로저 윌리엄스와 함께 로케이션을 다니다가 발견했다. 사람들은 흔히 웨일스식 공포를 떠올릴 때 돌로 된 어두운 중세 때 가옥을 생각한다. 나는 현대적인 웨일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배경은 존 폴슨이란 건축가가 지은 저택인데 굉장히 현대적일 뿐 아니라 광활한 풍경 안에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놓은 벙커처럼 보였다. 라이프 하우스라는 저택의 이름도 기묘해서 좋았다. 우리는 저택 안에서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집의 이름이 모순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집에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그윈 가족의 추악함을 단죄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캐릭터들이 단죄를 받는다. 모두 각자의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아들은 성에 대해서 집착하고 둘째는 마약에, 아버지는 돈에 집착한다. 사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글렌다와 카디 두 여성이다. 처음의 글렌다는 얄팍하고 겉모습만 중요한 것처럼 국회의원 아내로서 지위를 속물처럼 드러내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글렌다에 대해서 동정심이 생길 것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글렌다는 과거 자신이 웨일스 농장에서 살았던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는 동안 그 역시 잘못을 저질렀지만 우리가 공감할 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반면 카디는 저택 사람들과 달리 소심한 동물처럼 보인다. 그 집 식구들에게 마치 잡아먹힐 것처럼 보였던 카디는 점점 더 끓어오르며 분노를 폭발시킨다. 모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카디가 겪었던 고통으로 인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르 영화라는 틀 안에서 자연 보존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는 점을 힌트로 주고 싶다.

-<그녀는 만찬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100% 웨일스어 대사로 된 영화다. 출연 배우들 모두 웨일스인들인가.

=맞다. 웨일스의 인구가 300만명밖에 되지 않는데, 그에 비해 우리 중 연기자나 공연예술가가 많은 편이다. 웨일스에 아이스테드바드(Eisteddfod)란 세계적인 예술축제가 있는데 그래서 웨일스 출신 배우와 공연자들이 많은 것 같다.

-각본가인 로저 윌리엄스가 각본과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

=우리는 15년 정도 알아온 사이다. 그는 오랫동안 나와 공동작업을 해왔고, 우리는 일종의 동맹 같은 사이다. 윌리엄스가 각본을 쓰고 내가 감독했던 TV시리즈가 많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진 않고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윌리엄스에게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내 비전을 글로 실현시켜주는 존재다. 이번 영화는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할 것 없이, 우리 두 사람이 웨일스어로 된 호러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러면서도 보편적으로 통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첫 장편영화로 감독상을 수상한 기분이 어떤가.

=사실 웨일스어로 된 호러영화가 많지 않다. 어느 나라보다 호러영화를 잘 만드는 한국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상을 받다니 꿈을 이룬 것 같다. (웃음)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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