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그린 나이트'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 배우 데브 파텔 인터뷰…“바닥에서 일어난 캐릭터가 영웅이 되는 현대적인 해석을”
2021-08-0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그린 나이트> 촬영현장에서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왼쪽)이 배우 데브 파텔(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 찬란

<고스트 스토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이 중세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각색한 영화 <그린 나이트>가 8월5일 개봉한다.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과 영화의 주인공인 가웨인 경을 연기한 데브 파텔(<슬럼독 밀리어네어> <라이언>)을 버추얼 인터뷰로 만났다. 아서왕의 기사들 중 한명이었던 가웨인 경이 크리스마스 연회 중에 성에 찾아와 목 베기 게임을 제안한 녹색 기사의 목을 베면서 시작되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판타지영화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설명과 해석을 정리해 전한다.

-녹색 기사와 그가 기거하는 녹색 예배당은 숲과 자연을 상징하며,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사는 도시, 문명과 대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의도된 것인지 궁금하다.

데이비드 로어리 의도된 배치다. 나는 자연이 인간과 애증의 관계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문명의 자연 침해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내재된 비극이며, 진보란 그런 것이다. 지금 우리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인류가 이 땅에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반대로 자연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안에 이 세상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J. R. R. 톨킨이 해석한 텍스트를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데이비드 로어리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어볼까, 맥락 없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스터플랜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 3월 어느 날, 이 이야기를 내가 어린 시절 보면서 자란 <윌로우> <용과 마법구슬>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시를 처음 읽은 건 대학 때였는데 기사와 그의 원정에 대한 영화의 출발점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각본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데이비드 로어리 시를 다시 읽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이 시를 템플릿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데브 파텔 우선 고집불통인 젊은이의 성장담으로 다가왔다. 아서왕의 원탁에 앉을 만큼의 특권을 누리던 청년이 자연 앞에 무릎 꿇기까지의 과정이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떠난 원정에서 무엇을 희생하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흥미를 자극했다. 그리고 자연과 그 힘에 대한 아이디어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면 막마다 인터타이틀(중간 제목)이 들어간다. 이미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 인터타이틀까지 넣은 이유가 있나.

데이비드 로어리 막의 구분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전통적인 3막 구조가 아닌 <그린 나이트>처럼 7개에서 8개 막으로 구분될 수 있는 에피소드 형태의 이야기라면 인터타이틀을 통해 문맥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했다. 관객은 인터타이틀이 나옴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걸 알 수 있다.

-가웨인은 현대에 더 어울리는 청년이다. 가웨인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데브 파텔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과 밤을 지내고 길을 달려서 집에 돌아온 가웨인의 모습이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가장 자신 없는 이야기지만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연기하기보다는 이것저것 시도하고 느끼면서 흐름에 맡기는 편이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뭔가 딸깍하고 켜지는 걸 느꼈다. 아직 어른이 아닌 남자가 실컷 놀고 아침이 돼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와 마주치고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입으로 우겨넣는 모습들에서 말이다.

데이비드 로어리 가웨인을 부족한 점이 있는 캐릭터로 만든 것이 원작과 가장 달라진 부분이다. 그가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바닥에서 일어난 캐릭터가 영웅이 되는 ‘제로 투 히어로’ 컨셉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더할 수 있었다. 또한 데브가 지금 이야기한 장면,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돌아온 10대 때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 뉘앙스를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

-말하는 여우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싼 캐릭터처럼 보인다.

데이비드 로어리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와 웨스 앤더슨의 <판타스틱 Mr. 폭스>를 좋아한다. 사실 말하는 여우를 좋아한다. 원작 시에서는 영주의 성에 있는 하인이 그 역할이었으나 영화에서는 그 시점에 새로운 인간 캐릭터를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영주가 사냥을 좋아하니 사냥감 중 하나로 대신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려진 작품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일이 힘들진 않았나.

데이비드 로어리 각색은 누가 하더라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은 모두 원작이 있었다. 각색은 원자료에 대한 존경과 창작물에 대한 기대가 만나는 중간 지점이며, 원자료와 창작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원작이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중세학 연구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사랑으로 각색을 했고,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기사의 원정을 그리는 영화에 액션을 넣고 싶은 욕심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자제했나.

데이비드 로어리 <그린 나이트>에는 무엇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액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최종 편집에서 삭제됐지만 결투 장면도 있었다. 숲에 사는 거지들과 절벽에서 싸우는 장면이었는데 편집할 때 보니 그냥 지나치면 될 캐릭터라 생각돼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로 했다. 촬영할 때는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약간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찍지만 포스트프로덕션에 가면 그 결정이 감독으로서의 본능과 어긋난다는 걸 알게 될 때 재미있다.

사진제공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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