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은 어느날 새벽 목격자도 없이 납치된 배우 황정민이 납치범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탈주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황정민이 자기 자신, 즉 천만배우 황정민을 연기하는 영화 <인질>의 언론시사회가 8월5일 열렸다. 과연 설정이 전부인 영화일까 설정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는 영화일까. <인질>에 대한 <씨네21> 기자 및 평론가들의 시사 첫 반응을 전한다.
임수연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그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냥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황정민의 유명한 ‘밥상’ 영상이 영화 처음부터 나온다. 이걸 이렇게 쓴다고? 배우 황정민이 배우 황정민으로 출연하는 <인질>은 실제 배우의 이미지를 영화 속으로 가져왔을 때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포문을 연다. <부당거래> <신세계> <베테랑> 등 그의 필모그래피를 안다면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유머, 전작의 액션 스타일을 뒤집는 처절한 몸의 사투, 연예인이 느낄 수 있는 불쾌함과 실명 설정이 주는 리얼한 긴장감이 94분 러닝타임을 알차게 채운다. 극중 황정민은 뛰어난 배우이기 때문에 인질범도 속일 수 있다는 점은 극 중간 중간 영리한 서스펜스를 만드는데, 설마 저게 연기인가 싶은 생생함으로 보는 관객도 순간 헷갈리게 한다. 군더더기 없이 황정민이 인질로 잡히는 본론으로 들어가고 나면 영화는 쉬지 않고 달린다.
<인질>은 흥미로운 기획과 탄탄한 프로덕션, 좋은 배우들이 잘 모인 재미있는 오락영화다. 현실을 극으로 끌어오는 장치는 장르적 리얼리티를 배가할 수 있지만, 실제 이름으로 나오기까지 하는 설정은 흥미성 이벤트가 아니라면 자칫 극을 가볍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아예 이 설정으로 영화 전체를 채우는 액션 스릴러를 만든 것은 황정민 정도의 배우가 아니고서는 성립 불가능한 기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배우 황정민이 납치당한 상황을 연기해야 하는 영화배우 황정민은 특유의 에너지를 집약해서 온몸 불사르는 열연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평소 자기관리 혹은 액션 스쿨을 다니며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운동 신경이 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인간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런 연기자들이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을 법한 자기방어와 위기대처 능력이 꽤 생동감 있다. 여기에 더해 화려한 무술을 전시하기 보다는 주인공의 표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촬영, 범죄자들의 아지트를 통해 캐릭터를 함께 완성하는 미술 등 프로덕션 전반이 옹골차서 매끈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인질>은 낯선 얼굴을 기용할 때 강점을 잘 활용한 영리한 상업영화다. 배우에게 원래 입혀진 이미지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극중 상황이 마치 진짜인 것 같은 생생함을 주는 것이다. 황정민보다 먼저 납치됐던 소연 역의 이유미는 꼭 두 사람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관객이 염원하게 만들고, 인질범 대장 최기완 역의 김재범, 최기완의 명령을 따르지만 100% 내키는 것 같지는 않은 염동훈 역의 류경수, 배우 황정민의 팬 용태 역의 정재원 등이 진짜 흉악범죄자들을 보는 듯한 리얼한 공포를 자아낸다.
조현나
강남 한복판에서 배우 황정민이 납치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새도 없이 인질범들은 영화 속 배우 황정민을 끌어다 자신들의 작업실로 내던진다.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 곳은 탈출이 가능할지, 탈출해도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선은 자연스레 인질범들에게로 향하는데 이들의 구성이 꽤나 흥미롭다. 게임 캐릭터처럼 각자 맡은 역할과 개성이 뚜렷하고 사용하는 무기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리진 못하는 모양새다. 계속해서 빈틈을 드러내고, 가장 지적이고 날카로운 인질범들의 리더조차 어딘가 허술하게 일을 처리한다. 영화의 재미는 황정민이 그 틈을 뚫고 들어가는 데에서 나온다. 적당한 농담과 혼신의 연기로 상황을 모면하는 모습이 현실과 극의 경계를 흐리고 웃음을 자아낸다. 인질범 역을 맡은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도 캐릭터를 넘어 그들이 누군지 궁금하게 만든다. <인질>은 아주 치밀하진 않지만 관객이 기대한 만큼의 재미를 보장하며 안전한 선택이 되어줄 영화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현실 세계의 배우 황정민이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를 당했다? 보는 관객도 믿을 수 없고 황정민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영화에 펼쳐지는 순간, 인질범이 “이거 진짜야”라는 말을 하며 황정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펀치 한 방을 맞고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도리가 없겠지만, <인질>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라는 벽만 허물고 마음을 연다면 제법 괜찮은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인질범의 리더는 꽤나 지능적이고 끈질기며, 인질 황정민 또한 유효한 반격을 날린다. 둘의 티키타카가 한쪽으로 무너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며 이루어지는 가운데 동분서주하는 경찰 역시 딱 필요한 만큼 무능하다.
<인질>은 그래서 재미있으며 동시에 그래서 그 이상의 재미는 없다. 황정민이 황정민을 연기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무언가를 영화에서 찾기는 힘들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굳이 ‘진짜’ 황정민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황정민의 유명한 대사들 ‘부라더’나 ‘드루와’ 같은 것들은 영화에 그저 등장만 할 뿐, <인질>이라는 영화의 고유한 설정들과 어우러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그러면 어떤가. 한 배우가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항상 흥미로운 일이며, 그게 또 차려진 밥상 잘 먹는 황정민이라면 시간 내어 볼 만한 먹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