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의 큐레이터' 마이크 피기스 감독…음악과 비주얼, 텍스트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좋은 영화가 탄생한다
2021-08-14
글 : 조현나
사진 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는 세계 음악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영화인을 ‘올해의 큐레이터’로 선정해 초청한다. 2021년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의 주인공은 바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외에도 작업에 영감을 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팔로우> <밤의 열기 속으로> <냉혈한> 등 총 6편을 해당 섹션의 상영작으로 선정했다.

8월 14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상영된 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해당 클래스는 연출과 음악 작업을 병행하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작품세계와 음악영화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작품들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제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자 올해의 큐레이터로 선정됐다.

=한국에 대한 모든 걸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영화제를 방문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에 기대가 많았다. 매일 아침 두 개의 한국 신문을 구독하며 꼼꼼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결국 한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됐다. 아쉽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신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과 영화의 접목을 꾀하는 제천영화제는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한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영화제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제에 초대됐을 때 정말 기뻤고, 앞으로도 이 영화제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에서 상영될 여섯 작품에 관해 여쭤보고 싶다. 자신의 연출작 중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과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상영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영화음악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보여준 작품이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도라고 평가받지 못했는데, 최근 이 영화음악의 한정판 CD가 출시되며 다시 조명받고 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저예산의 작은 영화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연출하고 음악을 만들 자유가 주어진 작품이었다. 내 필모그래피에서 흔치 않은 경우다. 나의 음악적인 뜻을 펼칠 수 있었던 이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와 <팔로우>의 선정 이유도 궁금하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보다 영화의 O.S.T가 더 유명세를 탔다. 더불어 영화가 음악, 특히 재즈에 끼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문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는 영화다. 재즈 애호가인 루이 말 감독이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를 불러 즉흥적으로 영화를 촬영했는데 후에 이 영화 작업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앨범 등 그의 음악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굉장히 드물고 독특한 사례다. 개인적으로 호러 장르를 좋아하진 않지만 <팔로우>는 정말 잘 만들어진 호러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선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는 1950년대 호러 장르에서 많이 발견된 스타일이다. 이 영화를 통해 디지털 음악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고 현재까지 그 관심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관해서도 마스터클래스에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냉혈한>과 <밤의 열기 속으로>는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퀸시 존스가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퀸시 존스는 작곡, 편집뿐만 아니라 연주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한 음악가다. 그는 음악을 작곡한 뒤 즉흥 연주를 붙이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취했는데, 그 스스로 재즈 뮤지션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가 작업한 <냉혈한>은 줄거리보다 음악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밤의 열기 속으로>는 노만 주이슨 감독이 퀸시 존스에게 많은 자유를 허락한 영화다. 영화 말미에 <죠스>의 음악과 흡사한 부분이 등장한다. <밤의 열기 속으로>는 시기상 <죠스>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를 보며 어쩌면 영화와 재즈가 평행적인 서사를 그리며 함께 성장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두 영화를 통해 음악영화 작업이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새롭게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폭넓게 이야기하고 싶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의 경우 연출과 음악을 직접 담당했다. 연출과 음악 작업을 병행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의 철학은 음악이 곧 영화이며 영화는 다층적인 평행 서사라는 것이다. 영화는 비주얼과 텍스트, 음악, 플롯 등 모든 요소가 고르게 작동해야 한다. 이 독특한 역학이 균형 있게 작동할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며 반대의 경우 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요소들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대본의 많은 부분을 삭제하거나 음악을 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나 혼자 작업하면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할 때보다 갈등과 고민을 줄일 수 있다. 후반 작업 때도 내가 원하는 대로 영화의 심리적 공간을 음악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관객들이 극장 대신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가 늘었다.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이 많이 달라진 현재, 영화와 음악을 작업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고 또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 역시 무척 염려하는 부분이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을 통해 정말 많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시청하고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의 저주’가 발생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보는 작품을 프로그래밍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치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까 하는 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반영된다. 때문에 서사나 콘텐츠가 타협안을 찾으며 애매해지는 것이다. 나는 영화, 드라마의 기능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자극하고 새로운 담론을 유도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이 염려된다. 더불어 침묵이 배제된, 부자연스러운 영향을 미치는 음악에 관해서도 걱정이 많다.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한국 작품을 많이 본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 최근 재밌게 본 게 있다면.

=드라마 <알고있지만,>을 흥미롭게 봤다. 젊은 연인들의 관계와 그 관계가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한소희 배우가 굉장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준이 굉장히 높은 단계에 이르렀지만, 영화의 주제가 한정적이고 반복된다는 인상도 받았다.

-시나리오와 음악 작업을 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

=음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한 달에 한 번 프리 재즈 음악을 하는 밴드 멤버들과 모여 연습을 한다. 나는 주로 트럼펫과 기타를 연주하는데 얼마 전에 기타도 새로 하나 구매했다. 매일 연습 중이다. (웃음) 그밖에 사진을 찍는다거나 신문, 책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도 도움이 된다.

-차기작에 관해서도 여쭤보고 싶다. 올해 초 홍콩에서 <마더 텅>의 촬영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이며, 얼마나 진행됐는지 이야기해준다면.

=굉장히 복잡한 프로젝트다. 코로나19 상황도 있고 제작진 중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현재 후반 작업 중에 있고 정말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디지털 음악을 사용했는데, 나의 음악 작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밖에도 한국의 사람엔터테인먼트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제목은 <셰임>이며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장편 영화다. 곧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 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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