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민이 배우 황정민으로 출연하는 <인질>은 상대적으로 낯선 얼굴들을 인질범으로 캐스팅해 가상의 설정에 섬뜩한 리얼리티를 더했다.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주로 활동해온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 발탁해 황정민을 납치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중 우두머리 최기완을 연기한 김재범은 2004년부터 수십편의 연극·뮤지컬 무대에 선 잔뼈 굵은 베테랑 배우다. 영화를 통해 관객이 배우들을 처음 접할 수 있게끔 무려 2년 넘게 캐스팅 사실이 비밀에 부쳐졌고, 김재범은 동료 배우들에게도 캐스팅 사실을 숨기고선 무대에 섰다.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 그를 만났다.
1000 대 1 연극 <오케피>(황정민 연출·주연)를 함께한 (황)정민 형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다. 제작사 외유내강 분들과 정민 형, 필감성 감독이 리액션을 해주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마치 함께 신 연습을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디션인데도 성취감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봤더라. 경쟁률이 1000 대 1이었다고 들었다.
기분 좋은 답답함 <인질>이 공개되기 전까지 출연 사실을 알려서는 안됐다.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알게 됐는지 “지금 황정민 형이랑 뭐 해요?”라고 물으면 “그랬던가? 난 잠깐 나오는 거라 정민 형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네…”라고 둘러댔다.
최기완 시나리오의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최기완의 학창 시절, 가정환경, 부모님의 특성까지 생각하며 영화엔 나오지 않는 전사를 만들었다. 최기완은 세상이 자기 밑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다. 하지만 ‘흙수저’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정민의 집에서 그의 명품 옷을 훔쳐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좋은 집과 좋은 옷이 원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고 생각해서다. 일말의 죄책감은 전혀 없이 그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자신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CCTV가 있는 걸 알면서도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쓱 보고 지나가는 거다.
얼음 같은 빌런 최기완은 굉장히 치밀한 것 같은데 한편으론 허술한 캐릭터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전혀 이입하지 않는데 자기의 고통에는 굉장히 예민하다. 굳이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클리셰를 모두 깨겠다고 접근하면 오히려 표현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본에 충실하는 동시에 다른 빌런들과의 차이점을 많이 생각했다. 가령 이인자 염동훈(류경수)은 불같고 감정적이지만, 최기완은 얼음 같고 감정 표현이 없고 순간적으로 폭발하다가 다시 가라앉는 성격이다.
겁 없는 신예 연극·뮤지컬쪽에선 연기를 오래 해서 “아이고, 쟤 또 나오네”라고들 생각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쪽 경험은 거의 없다. 그러다 지금 소속사(SM C&C)를 만나면서 조금씩 오디션 기회가 생겼다. 영화쪽에선 뭔가 열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난 ‘겁 없는 신예’다. (웃음) 공연하면서 거의 모든 캐릭터를 다 연기해봤다. 그게 전부 내 몸에 남아 있다. 이제 꺼내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성룡 형이 성룡 영화를 보면서 액션 배우를 꿈꿨다. 나도 옆에서 같이 보다가 꿈이 연예인이 됐다. 고등학생 때 딱히 연극 활동을 하진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며 내 성적을 받아든 순간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웃음)
먼지 연기 학원에 등록해 몇 개월 다니다가 가장 먼저 시험을 보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다. 2차는 ‘움직임’을 본다. 시험장에서 받은 제시어는 ‘먼지’. “난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서울예술대학교 시험을 위해 준비한 무술을 응용해서 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연기해보았다. 학원 선생님이 그냥 시험 삼아서 면접을 보라고 한 건데 합격해서 깜짝 놀랐다.
황정민과 외유내강 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그냥 김재범으로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작업해서 너무 행복했다. 집에서 외유내강 사무실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앞으로도 작품을 하고 싶다. 이거 꼭 기사에 써달라. (웃음) 또 정민 형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형은 내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알게 되면 뿌리칠지 모르니 몰래 잡고 있겠다. (웃음)
Filmography
영화 2021 <인질> 2018 <데자뷰> 2016 <마차 타고 고래고래>
드라마 2019 <검법남녀> 시즌2 2018 <시를 잊은 그대에게>
연극 2021 <완벽한 타인> 2020~21 <아마데우스> 2020, 2018 <아트> 2015 <데스트랩> <올드 위키드 송> 2014 <내 아내의 모든 것> <나쁜 자석> 2013 <연애시대> <유럽 블로그> 2011 <극적인 하룻밤> <아트> 2009 <날 보러 와요>
뮤지컬 2021 <아가사> <박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2020 <스모크> <머더발라드> 2019~20 <팬레터> 2019 <랭보> <사의찬미> <더 캐슬> 2018 <어쩌면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