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사회의 풍경을, 예술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올해 9월 9일부터 16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에 그 답이 있다. 팬데믹이 일상화된 풍경 속에서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은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지난 1년간 기존 질서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품들을 만들었고, 이것이야말로 올해 DMZ영화제의 경향이라고 김영우, 강진석 프로그래머는 말한다. 극장 개봉, 부가판권시장을 통해 관객을 만나기 힘든 다큐멘터리의 특성을 고려해 자체 OTT VoDA를 론칭한 점도 올해 영화제의 특징이다. 3년째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김영우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출신으로 올해 합류한 강진석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그동안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해외 작품을 담당해왔다. 신임 강진석 프로그래머와 역할을 어떻게 안배했나.
김영우 강 프로그래머가 신임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함께 프로그램을 짰다. 경쟁부문은 강 프로그래머가 좀더 신경을 쏟았다.
-올해는 39개국에서 온 126편을 상영한다. 주제도 젠더 이슈부터 코로나19까지 다양하다.
강진석 코로나19를 담은 작품이 특히 많다. 주성저 감독의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는 중국 우한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메이데이>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태에 놓인 감독들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탐구한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장건재 감독이 참여했다. 코로나19가 영향을 많이 미치는 분야 중 하나가 공연예술계다. 백종관 감독의 <거의 새로운 인간>은 무용계를, 김민정 감독의 <얼굴들>은 연극계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예술을 계속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예술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과 맞닥뜨린다. 코로나19를 다큐멘터리로 담는다는 건 기존 질서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는 의미다.
-개막작은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다. 어떻게 선정했나.
강진석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영희 감독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만들었다. 영화가 가진 힘이 좋았고 영화제가 준비하고 있는 DMZ-POV섹션 ‘기록 너머의 기록: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와도 결이 맞다고 생각했다.
-담론의 장인 DMZ-POV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영화를 상영하고 강연과 대담이 이뤄지는데, 회고전이나 기획전 같은 부문이라 보면 되나.
김영우 2019년 DMZ영화제를 다시 세팅하며 세운 세 가지 주요한 축이 영화제, 인더스트리, 그리고 DMZ-POV다. 각각 상영, 제작, 비평의 영역인데 이 세 가지가 거의 동일한 무게를 갖고 있다. 영화비평이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시아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비평은 전무한 상황이다. DMZ영화제는 DMZ-POV를 통해 아시아 다큐멘터리 비평에 적극적인 씨앗을 뿌리고자 한다. 예컨대 ‘기록 너머의 기록: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는 비평적으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시공간적 확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자체 OTT VoDA를 올해 처음 연다.
강진석 다큐멘터리가 극장 개봉, 부가판권시장을 통해서 관객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전용 OTT를 만들어보자는 야심은 이전부터 있었다. 정식으로 구축에 들어간 건 올해 상반기부터였고 이번에 첫선을 보인다. 영화제 기간에는 상영작 중심으로 운영한 다음, 잠깐 서비스를 내린 뒤 10월 1일 정식 론칭할 계획이다. 국내외 다큐멘터리 188편 정도를 론칭작으로 선정했고 수급 중이다. VoDA는 구독형 OTT가 아니고 개별 작품들을 개별 결제하는 방식이다.
-2년 연속 다큐멘터리 마켓 ‘칸 독스’ (Cannes Docs)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영우 몇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일반 영화제 마켓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영화제 마켓들이 다큐를 위한 공간을 열어주고 있는데, 신작 쇼케이스를 열면서 플레이어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먼저 시작했고 칸국제영화제도 따라가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DMZ영화제와 파트너를 맺었다. 우리로선 칸 독스를 통해 아시아 다큐멘터리를 유럽이나 메인 스테이지로 내보내는 게 목표다. 지난해엔 <1989 베를린, 서울 Now>를, 올해는 <애국소녀>를 소개했다.
-프로그래머로서 추천작을 소개한다면.
강진석 글로벌비전 부문 단편 작품들은 지금 동시대 작가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실험적인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리커신의 <거울>, 리아오지에카이의 <기억에 관하여>, 잉량의 <마음의 세계>, 백종관의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 등을 통해 아시아 작가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포럼과 상영작을 연동해서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인데, DMZ-POV 섹션 ‘기록 너머의 기록: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 포럼을 듣고 국제경쟁 부문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김영우 중국과 일본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 다큐계에서도 중국과는 경향이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많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판지안의 <두 개의 별>은 2008년 일어난 대지진 이후 중국의 평범한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고, 고모리 하루카, 세오 나츠미의 <더블 레이어드 타운>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를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만의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영우 크게 두 가지다. 다큐멘터리영화도 기본적으로 영화다. 영화가 주는 매력들을 다큐멘터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강점은 ‘책상에 앉아서 천하를 본다’는 말이 있듯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다양한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진석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건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같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고 연대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다큐를 보기 전의 나와 보고 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달라진다. 그렇다면 세상도 달라진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