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바쿠라우'가 브라질의 현실을 투영한 방식
2021-09-15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현실은 어떻게 영화의 티저가 되었나

※영화의 결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종종 감춰진 진실을 찾아 끝내 드러내곤 하지만, 누군가 감춘 적이 없는데도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성실히 전하기도 한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바쿠라우>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기생충>이 한국의 반지하 문화를 모르더라도 세계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라면,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정치사회적 실상을 모를 경우 존 카펜터 혹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영향을 받은 유혈 복수극으로만 보일 수 있다. 실태를 알고 보면 <바쿠라우>는 지금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야만의 현장이다. 중요한 점은, 이게 브라질 안에서만 끝나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라질 동북부를 비추는 도입부에서 비포장길을 달리는 급수 트럭에 테레사(바바라 콜렌)가 타고 있다. 테레사는 백신 몇병을 구해 고향 마을 바쿠라우로 가는 길이다. 길에는 관을 실어나르는 화물 차량이 사고로 엎어져 관들이 널브러져 있다. 관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테레사는 연구실에서 쓰는 흰 가운을 걸치고 “보호복”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사망자 세계 2위(8월 말 현재 약 58만명)인 브라질은 아마존 내륙까지 백신을 전달하는 공급망이 없다시피하다. 치료는커녕 장례 치를 관이 모자라 품귀 현상이 빚어진 지 오래다. 원체 브라질 각지의 주민들은 소아마비와 같은 후진국형 감염병에 시달리며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허구와 실제의 순환 관계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영화가 공개된 이후의 일이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한 사회의 아픈 곳을 확대경으로 비춘 측면이 있다. 병폐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한국 콜센터의 노동환경이 팬데믹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바쿠라우>의 곳곳에선 누군가의 기억 또는 앞으로 다가올 어떤 장면이 순간적으로 틈입하곤 하는데, 과거와 미래의 선후 관계를 뒤섞으며 허구와 실제가 서로 순환하고 있음을 말하는 듯 보인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이다. 다음의 영화 줄거리는 아래 실제 상황과 놀랍게 겹치는데, 선후 관계라기보다 순환 관계임에 주목하자.

#줄거리.고향에 간 테레사는 마을 원로이자 리더였던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주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린다. 급수차가 수시로 물을 실어날라야 하는데 당국은 댐을 막아놓았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를 지키며 외부인이 올 때마다 무전으로 알린다. 주민들은 유사시 일제히 몸을 숨기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시장은 재선을 위해 마을을 찾지만 민심은 등을 돌린 지 오래다. 시장은 책 수백권을 쓰레기 취급하듯 화물차로 실어다 바닥에 쏟아붓는 반지성주의자다. 그런 그에게 바쿠라우의 유권자들은 눈엣가시다. 이어 의문의 외지인이 어린아이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주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장 혈투에 나선다. 알고 보니 학살자들은 시장이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실제 상황1. 1987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아마존 투쿠루이댐은 원주민 주거지 40만ha를 수몰시켰다. 2019년에는 한 광산 재벌 기업이 댐 공사를 서두르다 붕괴되는 바람에 256명이 숨졌다. 브라질이 이렇게나 댐 공사에 혈안이지만 브라질 동북부 대부분 지역에선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급수차에 의존하는 생활을 10년 넘도록 이어가고 있다. 올해 8월 현재 브라질 연방대법원 앞에서는 전국 각지의 원주민 수천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 땅을 빼앗지 말라”는 요구다. 수십년간 지속돼온 문제지만 극우파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자 원주민들은 급속히 삶의 터전을 개발업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약통 하나를 들고 방송에 출연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말라리아 치료제)을 먹으면 된다”라고 떠들던 반지성주의의 대표 인물이다.

#실제 상황2. 브라질의 원주민 보호구역은 아마존 우림을 지키는 보루다. 보우소나루는 취임하자마자 아마존 개발을 위한 각종 정책을 지원하는 한편, 환경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원주민 보호구역 관련법은 휴짓조각 취급했다. 그런 그에게 아마존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은 눈엣가시다. 가끔씩 원주민 대표를 불러다 유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지만 원주민들은 등 돌린 지 오래다. 우리는 아마존에 산불이 계속돼 이미 남한 면적의 5배가 소실됐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경작지를 만들려는 이들이 숲에 불을 놓는 수법으로 삼림을 밀어내려다 발생한 화재들인데, 드넓은 브라질 땅에 왜 그리 많은 경작지가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육식과 참극의 상관관계

#실제 상황3. 21세기를 전후로 전세계 육식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사료로 쓰이는 대두 수요가 덩달아 급증했고, 이후 철강과 석유가 주력이었던 브라질의 수출 1위 자리를 대두가 차지하게 된다. 신바람난 곡물 기업들의 돈벌이만큼 아마존은 파헤쳐지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연간 약 2억달러어치의 대두를 브라질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질문해보자. 지금 당신이 먹는 소고기가 브라질 원주민들의 고통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핏 평범한 유혈 웨스턴으로 보이는 이 영화에 칸국제영화제가 심사위원상을 안긴 이유가 보이지 않는가. 아마존은 지구 육지 산소 공급의 20%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기후 위기에 치명적 악영향을 더하고 있다.

#실제 상황4. 2019년 7월 브라질 북동부 아마파주 원주민 보호구역을 무장 습격한 금광업자 50여명이 원주민 지도자를 살해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아마파주 동쪽 마라냥주에서 아마존 수호대로 활동하던 원주민 2명이 벌목업자들의 총격에 숨졌다. 그러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 브라질 가톨릭단체는 최근 원주민 살인사건이 급증해 2017년 110명, 2018년 135명이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유엔이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자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는 각국 정상이 모인 국제회의에서 “아마존은 브라질 소유”라며 거부했다. 주민들은 “대통령의 말로 학살이 정당화되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실제 상황5. 2019년 8월, 역시 브라질 동북부 파라주의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불법으로 땅을 강탈하려는 외지인이 원주민에게 축출됐다. 외지인들은 농경지 확보를 위해 불법 벌목 행위를 저질러온 이들이었다. 어떻게 이들을 몰아낼 수 있었을까. 참다 못한 원주민 수십명이 ‘전사’가 되어 소총으로 무장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 영화의 공동감독 줄리아누 도르넬리스는 “브라질과 현실 세계는 날마다 우리 영화의 티저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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