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태창흥업주식회사 / 감독 김수용 / 상영시간 65분 / 제작연도 1977년
<야행>의 제작 과정은 1970년대 한국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1974년 1월에 촬영을 마친 영화가 3년이나 지난 1977년 4월에 개봉했고, 그해 국산영화 흥행 4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윤정희는 1973년 5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는데, 김수용 감독의 연락을 받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일시 귀국한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야행>은 <안개>(1967)의 후속 프로젝트 같은 기획이었는데, 역시 김승옥 원작으로 태창흥업이 제작하고 윤정희와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 각색은 시나리오작가로 출발해 데뷔작 <몸 전체로 사랑을>(1973)까지 연출했던 홍파 감독이 맡아 예술영화의 톤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촬영은 당시 신문 기사에도 언급될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됐는데, 1973년 12월 마지막 주 촬영에 들어가 1월 10일 크랭크업했다. “노 세트, 올 로케” 촬영으로 17일 만에 끝낸 것이다. 김수용 감독의 특출난 재능 덕에 제작은 순조로웠지만 개봉은 순탄치 않았다.
불법영화에서 흥행작으로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영화를 제작한 회사는 연방영화였고, 1974년 8월 뒤늦은 제작 신고를 한 것은 삼영필름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만든 제작사는 태창흥업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1973년 2월 영화법 4차 개정으로 영화사 등록제가 허가제로 변경되면서 태창흥업의 제작사 등록이 취소됐고, 김수용과 윤정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태창은 일단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하지만 당국은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제작한 데다 대명제작 혐의가 있다며 제작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렇게 영화는 사장됐다.
영화업 자격을 회복한 태창흥업이 1976년 12월 구구절절한 사전 제작 사유서와 함께 뒤늦은 제작 신고를 내면서 이 “불법영화”는 구제되었지만 이후 심의 과정은 혹독했다. 이듬해 3월 본편 검열에서 “퇴폐적이고 지나친 정사 장면이 너무 많아”라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4월 영화사는 20군데 신에 대한 재편집 내용 대조표까지 작성해 65분 버전으로 재검열을 받는다. 결국 화면 삭제 9개처, 화면 단축 1개처, 대사 삭제 2개처 처분을 추가로 받으며 검열을 통과한다.
다행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영화사의 자진 삭제 전인 75분 버전으로, 애초 김수용이 의도한 에로티시즘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4월 23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개봉관 한곳에서만 13만5천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다. 1977년은 고교생물과 성인영화가 침체됐던 영화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해다.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는 6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겨울여자>였으며, <고교얄개>와 <얄개행진곡>이 그 뒤를 이었다.
영화는 ‘야행’이라는 한글 제목과 함께 ‘Voyage de nuit’라는 프랑스어가 같이 등장하며 예술영화라는 지향을 과감하게 밝힌다. 오프닝 크레딧의 배경 화면은 해가 뜨는 풍경으로 시작해 달리는 차 안에서의 시점으로 고속도로를 보여주다가 서울 도심의 빌딩 숲 장면으로 넘어간다. 다시 차의 시점으로 서울 도심을 보여주다 줄곧 흐르던 정윤주 특유의 불협화음 스코어가 셔터 문이 열리는 장면의 소리까지 맞물린다. 괘종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한 대형 은행에서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사가 박 대리(신성일)에게 부도 처리를 지시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 롱숏 화면이 흥미롭다. 오른쪽 전경의 상사가 박 대리를 부르면 화면 중간에 앉아 있는 그가 돌아보는데, 가장 왼쪽의 안경 낀 여성이 동시에 돌아본다. 둘은 어떤 관계일까. 부도를 맞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달려온 회사 대표가 상사를 만나는 장면이 후경에서 이루어지고, 전경에 은행원 현주(윤정희)의 모습이 보인다. 이 영화가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신호를 관객에게 보내는 순간이다.
사실과 환상을 오가는 섹스 묘사
박 대리의 남자 동료와 현주의 여자 동료가 감쪽같은 사내 연애를 통해 결혼한다는 내용이 소개된 후, “안경만 벗으면 미녀”인 현주는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지금은 국립서울현충원이라 불리는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 내린 그녀는 헌병의 곁눈질을 받으며 스타킹을 허벅지 위로 올린다. 이곳에서 발생한 성적인 뉘앙스의 배경은 영화가 중간 정도 흐르면 설명된다. 영화 속 표현으로 “올드미스”인 그녀는 도회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영화가 촬영된 시점인 1973년에 건축된 반포주공아파트로 들어선다. 인트로의 고속도로 장면부터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든 신호탄이라 할 주공아파트 단지까지 영화는 70년대 중반의 풍경을 예사롭지 않게 담아낸다.
현주는 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준비한 후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TV를 보다 잠이 든다. 한 남자가 들어와 현주를 만지는데, 그는 술에 취한 박 대리다. 남자는 짧은 섹스를 끝내고 돌아눕지만 만족하지 못한 현주는 박의 위로 올라간다. 당시 검열에서 삭제된 대표적인 부분이다. 현주는 수건만 몸에 두른 채 혼자 저녁을 먹고 박은 옷도 추스르지 않고 잠이 든다. 남녀 커플의 일상의 섹스를 묘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한축이다.
사실 현주와 박 대리는 은행 동료들 몰래 동거하는 중이다. 결혼을 원치 않는 박의 태도에 현주는 체념한 상태인데, 삶의 질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휴가를 받은 현주는 홀로 도심을 배회하다 신혼여행을 떠난 동료들의 섹스를 상상하고 자신의 섹스까지 상상한다. 다음날 아침 고향인 태안으로 가면서 그녀를 사로잡는 무엇이 설명된다. 동생이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의아하게도 현주는 교복을 꺼내 입는다. 그녀가 바닷가에서 자전거 타는 모습 사이로 군복을 입은 남자가 학생 시절 현주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플래시백된다. 남자는 현주의 학교 선생이었는데 베트남에서 전사했다. 이렇게 현주는 첫사랑과의 섹스를 감각으로 떠올린다.
서울로 돌아온 현주는 은행의 전체 공간이 내려다보이는 다방에 앉아 박과 나눈 대화를 복기한다. “우린 안 해?”라는 현주의 질문과 “시시해, 결혼식 같은 건”이라는 박의 대답은 대사의 주인을 바꿔 반복된다. 다방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총질하는 환상이 삽입되면서 이제 현주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위트 있게 설명한다. 역시나 박은 술에 취한 채 늦게 들어오고 언제나 그랬듯 둘은 무감한 섹스를 나눈다. 남은 휴가를 보내던 현주는 도심의 육교 위에서 느닷없이 수갑이 채워져 여관방으로 끌려가 강제로 관계를 맺고, 이때 선생과의 첫날밤 장면까지 교차되며 그녀의 환상은 극에 달한다. 휴가는 끝났고 출근한 그녀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엔딩의 점프 컷이 말해주듯, 이제 삶은 오로지 그녀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