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기사 윌리엄>의 섀닌 소사먼
2002-05-22
글 : 위정훈
신데렐라, 무시무시한 행운을 거머쥐다

섀넌 마리 카훌라니 소사몬(Shannon Marie Kahoolani Sossamon)이라는 복잡한 본명처럼, 섀닌 소사몬의 얼굴이 풍기는 분위기는 어느 계통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프랑스, 하와이, 네덜란드, 아일랜드, 필리핀, 게르만의 피를 조금씩 섞어 빚은 듯한 그녀의 얼굴은 ‘미인’의 범주에 넣기엔 모자라지만, 기묘한 균형미가 풍긴다. 그리고 시대극 <기사 윌리엄>에서 이국적 아름다움을 풍기는 고귀한 여인 조슬린은 섀넌 소사몬의 마스크에 빚진 부분이 많다.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블랙잭 딜러였던 어머니와 카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섀닌 소사몬은 3살 때 네바다주 르노로 이주, 유년기와 사춘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소녀 시절의 꿈은 댄서. 댄스스쿨에 등록하기 위해 17살에 LA로 옮겨온 섀닌 소사몬은 춤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한편, 지역 클럽에서 DJ 활동을 하며 음악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연기? 야망 리스트의 우선순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1999년,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기네스 팰트로와 잭 팰트로의 조인트 생일파티에서 DJ를 하던 친구를 도와주던 소사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리고 신데렐라 동화가 시작되었다. 다가온 사람은 <유주얼 서스펙트> 등의 캐스팅 디렉터 프랜신 마이슬러. 그는 소사몬이 카메라 앞에 서본 경력이라곤 광고 몇편 찍은 것밖에 없음을 알았지만, <기사 윌리엄>의 여주인공 조슬린 역 오디션을 받으라고 연락했고 6번의 오디션을 거쳐 소사몬은 주연자리를 거머쥐었다. 현재와 과거를 낭만적으로 뒤섞은 시대극 <기사 윌리엄>(2001)에서 섀닌 소사몬은 “사랑한다면 경기에서 패배하라”는 대담한 사랑의 증거를 주문하고, 연인의 신분이 들통나자 몸을 숨기라고 현명하게 충고하는 여인 조슬린이 되었다.

소사몬의 두 번째 출연작 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40일 동안의 금욕을 선언한 맷이라는 청년이 하필 맹세를 한 직후 매력적인 여성 에리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 의 감독 마이클 레먼은 남자친구의 금욕선언을 존중하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사려깊은 여성 에리카 역에 케이티 홈즈를 염두에 두었지만 거절당하고 좌절했다. 그러나 소사몬을 만난 순간,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없지만, 개성과 카리스마와 지성을 갖춘,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에 매혹당했고, 그녀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섀닌 소사몬은 스타덤을 향해 질주하고픈 욕망은 없었다. <기사 윌리엄>과 를 찍은 소사몬은 일선에서 후퇴하여 LA에 있는 인디 레코드가게인 아론에서 일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다음 행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내가 나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넉달 동안 레코드가게의 높은 선반 뒤에 꽁꽁 숨어 있던 섀닌 소사몬을 다시 영화계로 유혹한 건 독립영화이자 블랙코미디인 <매혹의 법칙>(The Rules of Attraction). 뒤이어 <기사 윌리엄>의 감독 브라이언 헬겔런드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심령 공포영화 <신 이터>(Sin Eater)에서 다시 한번 히스 레저와 호흡을 맞춰달라고 요청했고,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섀닌 소사몬은 “연기에 전력을 쏟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엔 내가 해야 할 더 많은 일들이 있다. 남은 일생 동안 연기를 하리라 생각지 않는다”면서 배우로만 예정된 미래를 거부한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 밤이면 LA의 클럽에서 DJ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나머지 시간은 영화와 여행에 바치고 있는 그녀의 한마디. “아직도 나의 무시무시한 행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낯설다. 가끔 연기가 나를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운명,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맡기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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