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과 조승우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영화 <후아유>에서 그랬던 것처럼 먼저 기다리고 있던 이나영에게, 조승우가 역시 영화 속에서 그랬듯 넉살 좋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약속시간에 꼭 맞춰온 이 모범생들. 그런데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타더니 서먹하게 눈길을 피하며 별뜻 없는 농담과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터뜨리다가도 어느 순간 낯설어지곤 하던 <후아유>의 형태와 인주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던 것도 같다.
<후아유>는 게임기획자 형태와 수족관다이버 인주의 위태로운 성장 혹은 사랑을 그리는 영화. 형태는 인주의 게임파트너가 돼 3년 동안 눌러둔 속마음을 다 알아버리지만, 현실로 돌아와선 그녀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인주의 상처를 다 알면서도 아는 척하지 못하는 형태와 이름도 모르는 게임파트너를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인주가, 결국엔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그 친밀하면서도 수줍었던 마지막 인상을 조승우와 이나영이 그대로 스튜디오까지 끌고 왔다. 허물없이 장난치는 친구처럼 있어 달라 하면 서로 착착 감기고, 응시하는 눈빛을 보여 달라 하면 자연스럽게 같은 곳을 쳐다봤다. 그러다 튀어나온 한마디 “어, 이나영 치마 입었네.” 참 힘들었다던 촬영을 끝내고서도 아직 못 본 모습이 있었나보다.
이나영과 조승우의 이런 호감과 긴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분열된 <후아유> 인물들의 관계를 현실감 있게 살려내는 데 도움이 됐다. 카메라 밖에서도 이런 도움은 마찬가지. 조승우는 연기 선배인 이나영의 노력하는 모습을 깊이 새겼고, 이나영은 편안하게 역할에 젖어드는 조승우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 다른 때는 사이 안 좋느냐는 얘기만 들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두 젊은 배우는 자신들의 영화처럼 간결한 인상을 남긴 채 각자 단독 촬영에 들어갔다. 아직 갈 길이 먼 이들은 영양분만 남기고 군더더기는 버린, 속이 꽉 차도 여전히 가벼운 풍선처럼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