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007 노 타임 투 다이' 한 시대를 장식한 대니엘 크레이그의 작별 인사
2021-10-01
글 : 배동미

한 시대를 장식한 6대 본드, 대니엘 크레이그의 작별 인사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6대 본드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대니엘 크레이그식 본드다움에 작별을 고하는 작품이다.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시리즈의 매력은 여전하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이번에 처음 ‘007 시리즈’ 제작에 뛰어든 유니버설 픽처스의 지구 로고에서, 제임스 본드가 걸어 나와 총을 쏘는 ‘건베럴 신’을 유려하게 이어 붙이며 영화 팬들을 흡족하게 만든 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총 2번의 오프닝을 치르는데, 첫 오프닝은 ‘총을 싫어하는 본드걸’로 유명한 매들린(레아 세두)의 과거와 관련된 설원 신이다. 매들린의 아버지이자 테러 조직 스펙터의 회원인 미스터 화이트(예스페르 크리스텐센)에게 가족을 잃은 사핀(라미 말렉)이 나타나 매들린의 어머니를 죽이고, 어린 매들린은 살아남기 위해 그에게 총을 쏜다.

<007 스펙터> 모로코 기차 신에서 매들린이 본드에게 들려준 옛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오프닝으로, 전편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 간결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매들린을 먼저 소개하는 화법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오프닝 시퀀스. <007 스펙터> 마지막 런던 웨스트민스터 브리지에 총을 던진 뒤 MI6를 은퇴한 본드는 매들린과 함께하고 있다. <007 여왕 폐하 대작전> 삽입곡인 루이 암스트롱의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가 흐르고 본드는 느긋하게 애스턴마틴을 운전해 이탈리아의 오랜 도시 마테라에 도착한다. 본드의 첫사랑 베스퍼(에바 그린)가 묻힌 곳이다.

평화도 잠시, 매들린의 제안으로 베스퍼의 무덤을 찾은 본드는 알 수 없는 암살자들에게 쫓긴다. 갑자기 시작된 싸움에서 본드는 훌륭한 액션을 선보인다.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이 액션 시퀀스는 극장에 앉아 스크린에서 볼 때 더욱 큰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 석회암을 깎아 만든 바위 도시를 누비는 바이크와 줄 하나에 매달려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지는 본드는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본드는 흙을 뒤집어쓰고 상처를 입게 되는데, 아무래도 그의 외상보다 내상이 더욱 뼈아픈 것 같다. 본드는 매들린이 제안한 여행지에서 암살자를 만나자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차갑게 돌아선다.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내적으론 예민하고 상처를 잘 입는 본드는 <007 카지노 로얄> 이후 15년 동안 우리가 지켜봐온 모습 그대로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곳곳에는 시리즈의 전통을 엮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악당 사핀은 과학자 오브루체프(다비드 덴시크)를 이용해 MI6가 비밀리에 개발해온 나노봇을 빼돌려 테러를 저지르려고 하고, 이때 본드는 요원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메이카 해안가의 한 저택에서 낚시를 하며 살고 있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골든아이’라 이름 붙인 자메이카 저택에서 시리즈의 첫 소설 <카지노 로열>을 집필했다는 걸 떠올리면, 은퇴 후 본드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 셈이다. 최근 팬들이 <007 카지노 로얄>로 기억할 본드의 오랜 친구 CIA 펠릭스(제프리 라이트)가 본드를 찾아와 오브루체프를 찾는 임무를 제안하는데, 두 사람의 협업은 원작 소설에서부터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한편 여성 캐릭터를 통한 시리즈의 변화도 엿보인다. 본드는 모국이 아닌 미국과 손잡고 현장으로 돌아오면서 신참 CIA 요원 팔로마(아나 데 아르마스)와 쿠바 작전을 펼치는데, <나이브스 아웃>을 통해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끈적끈적하지 않게, 그러나 서로를 신뢰하는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살인번호 007을 물려받은 MI6 요원 노미(라샤나 린치)는 <007 스카이폴>에서 Q와 본드가 그랬던 것처럼 세대 차이를 놓고 작은 말싸움을 주고받는 재미를 선사한다. 시리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본드의 아내와 가족에 대한 서사가 등장한다는 점도 파격적이다.

CHECK POINT

오랜 기다림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6년 만에 나온 신작이다. 그사이 감독은 대니 보일에서 캐리 후쿠나가로 교체되었고 각본가 피비 월러 브릿지도 합류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2020년 4월 개봉예정이었던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코로나19로 총 3번 개봉을 연기하고 약 1년6개월을 인내한 끝에 개봉했다.

액션 연기와 부상

대니엘 크레이그는 촬영 초반 자메이카에서 발목 부상을 입었다. 바버라 브로콜리 프로듀서에 따르면 “대니엘 크레이그는 자신이 직접 액션 연기를 하기 때문에 액션 장면의 디자인과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액션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액션 신 대부분은 촬영 막바지로 미뤄졌고 그가 강도 높은 물리치료를 받아 회복한 끝에 탄생할 수 있었다.

Q의 고양이

<007 스펙터>에서 Q는 본드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며, 자신은 먹여살려야 하는 고양이들과 상환해야 할 대출금이 있다고 불평한다. 대사로만 언급됐던 Q의 고양이가 <007 노 타임 투 다이>에 등장한다. 잠시 런던으로 돌아온 본드는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와 함께 Q의 집을 찾아가는데,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Q의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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