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인터뷰] 극장과 관객의 만남을 통해 발굴과 가이드 역할을 충실하게
2021-10-06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극장과 관객의 만남이라는 영화제의 대원칙을 지켜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면 오프라인 영화제를 준비 중인 가운데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이전보다 훨씬 풍성하고 알찬 프로그램과 양질의 영화들을 초청, 영화의 축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프로그램 구성의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가 강조한 것은 결국 좋은 영화를 만나고자 하는 관객의 열망을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영화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위기에서 상식과 역할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면면을 소개한 뒤 마지막으로 올해 영화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한 가지 팁을 전했다. “올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좌석을 마련했지만 인기작들이 모인 주말에는 티켓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영화 중에도 보석 같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부디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영화를 만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올해는 유달리 좋은 영화가 많이 몰린 것처럼 보인다.

=일반론으로 이야기하자면 코로나로 인한 반작용적인 측면이 있다. 전세계적인 불확실성의 증대로 인해 코로나 이후 제작되거나 개봉을 기다리는, 쌓여 있는 영화들이 꽤 된다. 올해 칸, 베니스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많은 작품이 몰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월드 프리미어 작품을 많이 선보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스럽다.

-지난해 위기 상황에서 오프라인 영화제를 무사히 마쳤다. 잘된 부분도 있고 미흡한 지점도 있었을 텐데 올해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나.

=오프라인 영화제는 어쩔수 없는, 동시에 정당한 선택이다. 영화제는 결국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행사여야 한다는 게 큰 틀에서 정책적인 방향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난다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시기에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 게 영화제의 역할이며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그보다 어려운 판단 사항은 게스트 초청이다. 지난해에는 전면 온라인 관객과의 대화(GV)를 시행했지만 올해는 완화된 방역 지침과 코로나 백신 덕분에 일부라도 게스트 초청이 가능해졌기에 최대한 활용해서 관객과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갈라 프레젠테이션의 레오스 카락스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국제영화제 각본상까지 거머쥐는 진기록을 세웠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때 <우연과 상상>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은 단연 하마구치라고 생각한다. 베를린 직후부터 초청을 진행했다. 하지만 솔직히 성사 여부는 불투명했다. 7월부터 일부 국가에서 외국인의 자가격리 기간 면제 정책이 시행되면서 가능성이 열렸고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까지 연결할 수 있었다. 하마구치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인연이 깊기도 하고, 서로의 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 아래 성사된 행사다. 레오스 카락스도 부산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터라 다시 방문하는 것에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사실 정말 많은 해외 감독과 게스트들이 참석 의사를 보내왔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최선의 타협안을 낼 수밖에 없어 아쉽다.

-올해 출품된 아시아영화들은 어떤가.

=전세계적으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가운데 일본영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왔다고 본다. 여전히 저력이 있고, 특히 독립영화쪽에서 좋은 움직임들이 꾸준히 발견된다.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스기타 교시 감독의 <하루하라상의 리코더>는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도쿄!>(2008), <마더>(2009) 등에서 봉준호의 조감독을 맡았던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도 추천한다. 짜임새 있는 깊이 있는 스릴러다. 서아시아쪽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아시가르 파르하디의 <히어로>지만 그 밖에도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 베타쉬 사나에에하, 마리암 모그하담 감독의 <흰 암소의 발라드>나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후다의 미용실> 등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이 풍성해진 가운데 부산영화제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프로그램 구성의 기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발굴, 다른 하나는 충실한 소개와 가이드다. 우선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최대한 가져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월드 프리미어도 중요하지만 다른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된 영화라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가져오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발굴을 위해 저변을 넓히는 시도도 있었다. 뉴 커런츠와 아시아영화의 창-지석상 부문의 차이가 부각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뉴 커런츠는 신인감독의 데뷔작 발굴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지석상 후보는 거장들의 신작까지 대상 영역을 확대했다. 지석상은 오기가미 나오코, 브릴란테 멘도자 등 중견감독들이 포진해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OTT 작품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온 스크린 섹션의 신설도 큰 변화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OTT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다. 영화와 여타 매체의 경계가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도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제의 한 부분으로서 소개할 만한 창작물이 있다면 꾸준히 소개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런 작품들을 극장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극장과 관객의 만남, 그 대전제 아래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동네방네 비프’도 그런 가능성 중 하나일까.

=허문영 집행위원장님의 큰 그림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핵심은 센텀시티와 해운대 이외의 공간, 나아가 부산이라는 도시 전역에 영화제의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거다. 작은 단위의 마을공동체에서 영화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실 영화제는 어느 정도 수직적, 엘리티즘적인 시선에서 설계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영화를 상영하니 찾아오라는 딱딱한 태도를 벗고 부산지역 14개 구마다 직접 스크린이 찾아가는 방식이다. 함께 본다는 공동의 의식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두개의 특별기획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특별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집행위원장님의 생각이다. 매해 영화에 대한 흐름을 가이드해주는 것이 영화제의 의무라고 본다. 몇해 전부터 훌륭한 중국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는 경향을 묶어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를 통해 소개한다. 또 하나의 특별전은 ‘원더우먼스 무비: 여성감독이 만든 최고의 아시아영화’다. 돌아가신 김지석 선생님이 아시아 베스트영화에 대한 설문을 시작하면서 5년에 한번씩은 정리하겠다고 계획했는데, 그 연장에서 마련된 특별전이다. 1996년 이후 베스트영화의 리스트가 사실 비슷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성과 키워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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