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인터뷰] 코로나19도 막을 수 없는 아시아영화의 생명력
2021-10-06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박선영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프로그래머 인터뷰

“제 땅이 꽤 넓어요.” 박선영 프로그래머는 일본과 서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중화권 영화와 인도영화를 포함하고 있으니, 담당 권역의 땅 크기와 인구수는 확실히 압도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해 박선영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두가지 특별전을 도맡아 진행했다. 여성감독이 만든 최고의 아시아영화를 선정해 소개하는 ‘원더우먼스 무비’와 21세기 중국영화의 특징을 살피는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까지, 아시아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 힘을 쏟았다. 원석의 영화들을 한편이라도 더 소개하고자 애쓰는 모습에선 아시아영화(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코로나19로 아시아 출장길이 다 막히면서 업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겠다.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된 게 가장 아쉽다. 만나서 영화 얘기도 하고, 신작 소식도 듣고,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끌어오기도 하고, ACF(아시아영화펀드)에 지원하라 얘기도 하고, 알음알음 사람들도 소개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까. 업무 환경에 변화는 생겼지만 올해 고무적인 건 작년에는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영화가 살짝 위축된 감이 있었는데 올해는 감독들이 코로나 시국에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인도, 방글라데시 쪽에서 눈에 띄는 영화들이 꽤 많았다.

-인도도 코로나19의 피해가 큰 나라 중 하나인데.

=가끔 인도의 감독들과 연락을 하면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이제 나아가고 있다거나, 가족들 모두 코로나19에 걸려 병원에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정으로 다들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시아 독립영화인들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그렇다고 영화의 수준이 예전과 비교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코시국’을 반영한 놀라운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2개의 특별전, ‘원더우먼스 무비: 여성감독이 만든 최고의 아시아영화’와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를 모두 담당했다.

=‘원더우먼스 무비’는 지난해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1년이 연기된 특별전이고,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는 허문영 집행위원장님이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전을 하나 더 하면 좋겠다고 해서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1년에 특별전을 두 개 한 최초의 프로그래머이지 않을까 싶다. (웃음) 우선 아시아 여성 감독 특별전인 ‘원더우먼스 무비’는 정말 공을 많이 들인 프로그램이다. 관련 프로그램 책자를 만들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의 26년 역사상 한번도 본 적 없는 예쁜 책 만들기에 도전했다. 올 컬러에 양장본이다. (웃음) 여성 감독이 만든 최고의 아시아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설문에 참여해줬다. 여러 감독님과 평론가들이 ‘나는 왜 이 영화를 좋아하고 지지하는가’에 대한 글도 써주셨는데,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살람 봄베이!>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다. 책자의 가격이 높게 책정됐지만 충분히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자부한다.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에선 2010년대 이후 중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는 이름들을 불러온다.

=위원장님의 채근으로 시작됐지만, 부산에서 틀고 싶은 중국영화들이 있었다. 아쉽게 아시아 프리미어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산에서 상영하지 못했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틀지 못한 영화들이 있는데, 정루신위안의 <그녀 방의 구름>이나 송팡 감독, 비간 감독의 영화들이 그랬다. 웨이슈준 감독의 경우 첫 장편을 만든 2016년부터 고 김지석 선생님이 주목해온 감독이고, 디아오이난, 리뤼준, 구샤오강 감독까지 부산이 포커싱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2010년대 이후 중국영화들이 보여주는 이전 세대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들,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보이는 풍경을 짚어보고 싶었다.

-2년 전엔 ‘아시아 여성감독 3인전’을 기획했고 이번엔 ‘원더 우먼스 무비’를 선보인다. 여성 프로그래머로서 여성의 서사를 발견하고 선보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 김지석 선생님이 5년에 한번씩 ‘아시아영화 100’을 업데이트하겠다고 약속했고, 처음엔 그 목록만 새로 업데이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궁금하더라. 최고의 아시아영화 100의 리스트에는 어쩌면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다른 질문을 더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아시아 여성 감독들을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봤다. 여성 감독의 영화로 한정해서 물어보지 않았다면 묻혔을 주옥같은 영화도 많았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여성 감독들이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뿌듯했다.

-올해 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을 맡은 디파 메타 감독은 부산에 오기로 했는데 막판에 참석이 어려워졌다고.

=디파 메타 감독은 올해 핸드프린팅의 주인공 중 한명으로 예정돼 있었고, 본인도 부산에 적극적으로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최근 천식 증세가 심해져 의사가 장거리 여행을 만류했다고 한다. 부산에 오려는 의지는 있었는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 외에도 신작 <원 세컨드>로 장이모우 감독님을 초청하려고 신경을 썼는데 성사되지 못했다. 3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 류하오춘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무엇보다 특별전의 아시아 여성 감독들을 모으지 못한 게 아쉽다.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을 만든 몰리 수리아 감독은 지금 미국에서 넷플릭스 시리즈를 찍고 있어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대신 온라인 GV에 참석하기로 했다.

-최근 아시아에서 주목해야 할 나라가 있다면 어디인가.

=올해는 방글라데시인 것 같다. 압둘라 모함마드 사아드 감독의 <파도가 보인다>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소개됐는데, 방글라데시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에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APM(아시아 프로젝트 마켓) 선정작이기도 한데, 영화는 보수적인 방글라데시 사회, 특히나 더 보수적인 의학계 안에서 벌어지는 미투 이야기다. 감독이 두 번째 장편에서 굉장히 수준 높은 영화를 완성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 중 한명인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의 <떠도는 남자>는 지석상 후보작이고, <발 밑의 나락>은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 월드 프리미어다. 신인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 신인감독의 패기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영화다. 방글라데시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운 영화들을 올해 많이 만났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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