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6호 [기획] 레오스 카락스의 고집, “영화와 관객이 만날 장소는 극장뿐”
2021-10-11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아네트>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의 대화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는 영화를 가르칠 수 있다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허문영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여러 의미로 전대미문의 마스터클래스였다. 영화를 결코 ‘클래스’에서 배운 적 없는 감독, ‘마스터’의 칭호를 그다지 달갑지 않아 하는 이 감독의 이름은 프랑스 영화의 울창한 외딴 섬, 레오스 카락스. 그의 요청대로 이번 행사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꾸려졌다. 비기를 훔치기 위해 객석을 찾은 감독, 배우, 영화과 학생들을 비롯해 영화팬들로 가득 찬 극장은 긴장과 흥분으로 자주 술렁였다. 올해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아네트>로 영화제를 찾은 레오스 카락스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폴라 X> <홀리 모터스>까지 단 6편의 작품만으로 세계 관객에게 대체 불가능한 영화적 체험을 각인시킨 진귀한 영혼의 소유자다. 10월 10일 오후 KNN 시어터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 ‘레오스 카락스, 그는 영화다’의 세부를 옮긴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하 허문영) 우선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관객에게 인사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하 레오스 카락스) I feel alive. 살아있음을 느낀다.

-허문영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전엔 음악가를 꿈꿨지만 “음악이 나를 거부했다”라고 말했다. 마침 이번 영화의 장르가 뮤지컬이다. 한편 감독님은 프랑스 영화지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활동한 평론가 출신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들 사이에서 무엇이 당신을 영화 만들기로 이끌었나.

=레오 카락스 영화를 처음 시작한 것은 16살이다. 시골에서 살다가 파리로 이사를 갔고, 그 때부터 미친 듯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배우에 매혹되었을 뿐이다. 그러다 점점 만드는 사람에 대해 의식하게 됐다. 카메라 앞과 뒤에 각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 관계성이 나를 움직였다. 그 시절엔 무성 영화를 주로 보았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미지가 커다랗게 춤을 추는데 소리는 전혀 없는 것이 신비로웠다. 그 경험이 나의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그러다 16mm 카메라를 손에 넣어서 촬영을 시작했고 곧바로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만류하면서 단편부터 만들기를 권하더라.

-허문영 1962년생인 레오 카락스는 10대 시절에 단편영화(<교수형 블루스>)를 만들었고, 22살이 된 1984년에 첫 장편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선보이면서 일약 천재로 추앙받았다.

=레오 카락스 (완강히 고개를 젓고 잠시 침묵. 객석은 웃음) 어쨌든 언급해주신 첫 장편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흑백 영화였고 저예산이었다. 나는 참 행운아라고 늘 생각한다. 배우이자 제작자였던 프로듀서 알레인 다한, 내 연인이었던 촬영감독 장-이브 에스코피어 촬영감독과 내리 세 편(<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을 함께했다.

-허문영 굉장한 과작의 감독이다. 그 3편 이후 지금까지 총 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영화를 자주 만들지 않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 물론 제작비 문제가 컸으리라 짐작한다.

=레오 카락스 이유야 여러 가지였다. 예산 문제도 컸고 또 어떤 때는 내가 악명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할까. 평판이 좋지 않아서 캐스팅이 잘 안된 적도 있다. 어떤 배우가 연기를 할 지 정하지 못한 채로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다보면 작품이 더이상 진전되지 않기도 한다. 어떤 때는 그저 나 자신이 고갈되어 작품 구상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그리고 설사 내가 이 세상 돈을 다 갖고 있어도 지금보다 많아봤자 3~5편 더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냥 다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36세에 요절하면서 32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 정도를 하려면 족히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이다. 홍상수 감독도 1년에 두 편씩이나 만들지 않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새 작업을 할 때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달라지고 변화했을 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관객과의 대화

-관객 걸작을 만드는 비결을 알려달라.

=레오스 카락스 못한다. 그런 건 말할 수가 없다. 뛰어난 협력자들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여기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영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다. 카메라는 어떻게 쓰는지, 녹음은 어떻게 하고 세트는 어떻게 다루는지 등등 아무것도 몰랐던 혼란 그 자체의 감독이었다. 그 상태에서 내 비전을 정리해주고 명료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모두 동료들이었다.

-관객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레오스 카락스 나는 이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는다. 최신 영화를 소개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파리로 이주한 직후인 16살부터 25살까지 정말 많은 영화를 보았고 그로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너무 사랑하지만 보진 않는다. 필요하다면 부분적으로 특정 장면만 보거나, 아주 신뢰하는 주변 사람이 꼭 추천하는 경우에만 찾아본다.

-허문영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다. 관객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최고의 무성영화는 무엇인가. 당신의 영화는 언제나 무성영화적인 느낌이 있다.

=레오스 카락스 <군중>(킹 비더, 1928), <선라이즈>(1927, F.W 무르나우), <리틀 리제(La petite Lise)>(장 그레미용, 1930). 무성에서 유성으로 영화가 전환되던 시대에 나온 영화들이고 나는 그 시기 영화들이 좋았다. 영화라는 매체는 다른 예술에 비해 역사가 짧다. 그래서 세대가 바뀔 때마다 무언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그 힘을 온전히 끌고 갈 수 없다. 처음에 영화라는 매체가 발굴되었을 때 엄청난 효과를 냈잖나. 그 충격의 효과가 서서히 힘을 잃을 때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변화를 꾀했다. 새로운 기법과 기술로서 영화의 힘을 이어나가려는 행위이고, 지금의 3D, 디지털 영화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나는 3D가 영화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고 느끼진 않는다. 영화의 힘을 만드는 진정한 요소는 감독의 실험 정신이다. 영화의 기본 위에 그런 실험을 덧대야 한다. 여기서 기본이라는 것은, 이미지를 캡처한다는 개념을 말한다. 이미지를 찍어낸다는 것. 그 기본적인 원칙의 힘을 알고 싶다면 무성 영화를 보길 바란다.

-관객 <홀리 모터스>를 발표한 지 벌써 9년 정도가 흘렀다. 앞서 새 작업을 할때마다 감독님 스스로가 우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신작 <아네트>를 만드는 동안엔 자신의 어떤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나.

=레오스 카락스 <아네트>는 기존의 작업과 출발점이 다르다. 처음으로 외부의 제안을 먼저 받아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경우다. 20살 때부터 언제나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 영화는 음악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스팍스의 음악을 13살 때부터 사랑하고 들어왔다. 또 영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자라면서 조금 잊긴 했지만 내게는 영어가 모국어다. 아버지로서의 내 경험도 작용했다. <아네트>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나쁜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게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관객 영화 속에 자신을 노출하고 딸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고, 딸에 관한 감독님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도 묻고 싶다.

=레오스 카락스 <홀리 모터스>에서는 개와 나오고 <아네트>에서는 딸과 나온다. 둘 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만든 작품이다. 사람들은 내가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 마치 홈무비처럼 내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요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딸에 관한 내 마음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비밀이다.

-관객 <아네트>에서 스팍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레오스 카락스 스팍스의 음악을 어릴 때부터 너무나 좋아했는데 이번에 서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일주일 뒤에 새 노래를 보내줄 정도로 작업이 아주 빨리 나왔다. 일을 맡긴 게 아니라 그저 같이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스팍스 형제의 세번째 멤버라는 이야기를 농담으로 주고 받을 정도였다.

-관객 구원을 찾았나? 그리고 감독님 영화에서 담배는 무슨 의미일까, 정말 많이 피던데.

=레오스 카락스 구원? 노, 노, 네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많은 작가들이 구원을 찾았지만 나는 불가능할 것 같다. 담배는 세 번째 영화를 만들 때부터 피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사람들과 많이 만날 필요가 없었는데 점점 예산이 늘어나면서 직접 제작자, 투자자, 변호사 등과 비즈니스 미팅이 늘어난 시기였다. 그들과 관계도 맺고 친해져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배웠는데 그렇다고 딱히 사회적인 사람이 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냥 끊을 수가 없어서 계속 핀다.

-관객 코로나 시대의 영화란? 팬데믹 상황이 영화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레오스 카락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극장 상황은 코로나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요구하는 것, 그리고 스트리밍 플랫폼이 요구하는 것은 같다. 관객이 극장에 가지 않고 집에 붙어있길 원하는 것이다. 굉장히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극장과 바가 자리잡는다. 극장은 곧 사회가 만들어지는 공간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허문영 만약 OTT 플랫폼에서 자본과 자유를 약속하고 협업을 제안한다면 제작할 용의가 있나.

=레오스 카락스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는 꼭 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스크린에서 영사되는 것이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올바른 방법이다. OTT를 통한 영화의 재상영은 괜찮다고 본다. 만약 새 작업을 제안 받는다면 시리즈물 등 영화가 아닌 다른 형태인 경우에 고려해보겠다.

-관객 감독님 자신의 작업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나는 내가 만든 단편영화를 볼 때면 자기파괴적인 생각을 느낄 때가 많아서 괴롭다.

=레오스 카락스 영화 안 본다니까, 내 것을 포함해서! 편집하면서 당연히 보게 되지만 완성된 버전을 따로 찾아보지는 않는다. <홀리모터스>와 <아네트> 두 작품 다 칸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칸에서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 역시 내 작품을 보고나면 부족한 점들이 크게 보여 실망감이나 우울감이 들기 때문에 일부러 보려하지 않는다. 그럼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실제보다 조금 더 그럴싸한 작품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웃음)

-관객 졸업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영화과 학생이다. 내 영화에 출연해줄 수 있을까.

=레오스 카락스 난 몸값이 매우 비싸다. (웃음)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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