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와 익준>은 KT의 콘텐츠 전문 자회사 스토리위즈와 배우 매니지먼트사이기도 한 바로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미드폼 옴니버스 프로젝트 <Re- 다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 합류하게 됐나.
양익준 바로 엔터테인먼트 엄흥범 대표와는 이전에 BH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을 때 인연이 있었다. 당시 날 픽업한 게 엄흥범 대표다. 지금은 아는 형, 동생 같이 지내고 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 제작하는 작품에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처음엔 고민을 좀 했다. 단편 옴니버스 프로젝트는 예산도 부족하고 일정 기간 안에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완성해야 해서 너무 힘들다. 고민 끝에 하겠다고 덤볐는데 무려 7개월을 잡아먹었다. (웃음)
양익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영화제를 6~7년 정도 다니면서 매해 4~50편씩 영화를 봤다. 2년 정도 가니까 거기 학생들이 다 알아봐서 좀 창피했다. (웃음) 영상원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드는 재기 발랄한 영화들을 보면서 나도 자극을 많이 받곤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임선우 씨가 영상원 영화에 많이 나오더라. 뭔가 좋은 연기를 하는 근사한 배우라는 인상을 받아서 ‘임선우 배우전’까지 갔었다. 진짜 순수하게 팬이었다.
- 그런 양익준 감독을 보며 배우 쪽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임선우 <똥파리>가 굉장히 좋은 영화이지 않았나. 혼자 연출과 연기를 모두 해내다니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주신 <선우와 익준> 시나리오는 처음엔 어렵게 읽히지 않았는데 뭔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웠다. 무심코 지나가면 그냥 지나가게 되지만 여러 번 보면 뭔가 굉장히 세밀한 뉘앙스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배우이자 연출자인 양익준 감독님을 신뢰했다.
- 양익준 감독이 로맨스 영화를 찍은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듯하다.
양익준 원래 많이 찍었는데! 일본에서 찍은 워크숍 작품 <시바타와 나가오>도 헤어지는 과정을 밟고 있는 연인의 이야기다. 단편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라든지 소니코리아와 찍은 <Departure>, 류혜영•허준석 배우와 찍은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프로젝트 ‘숏숏숏’에서 만든 <미성년> 모두 사랑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가족과 이성 간의 사랑이다. 사실 고백을 못하는 바보라서 서른 살까지 연애를 못 해봤다. 그러다가 서른 넘어 연애를 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조금 빨리 잊는데,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감정이 오래 남고 힘들다. 감정이 소멸되는 순간에도 복합적인 감정들과 많은 물음표가 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무엇이 숨어있는지 궁금했다. 여자 (사람) 친구들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익준이 속상하겠다”며 위로도 해주지만 내게 헤어지자고 한 여자를 두둔해주기도 하더라. 그리고 나와 했던 연애를 디딤돌 삼아 여자가 성장할 수 있다던데? 아니, 그럼 내가 디딤돌인가? 그냥 돌이라고? (웃음) 어쨌든 그런 순간에 힌트를 얻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과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
양익준 장기 연애는 초반의 스트레스도 감내하면서 유지되는 거 아닌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에도 이런저런 일을 다 겪고 난 다음 진짜 부부가 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커플의 관계에는 사랑 뿐만 아니라 미움도 괴로움도 있다. 어렵지만 함께 이겨냈던 에너지와 기억도 있다. 그런 다양한 감정이 관계를 유지해 나가게 하는 거다. 영화 속에서 선우와 익준은 9년 정도 사귀었는데 그동안 함께 겪은 일이 너무 많아서 헤어지자고 할 때 헤어질 수도 없다. 엔딩 이후에 이 두 사람은 헤어졌을 수도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관객 각자의 경험담과 영화의 감정이 잘 순환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게 <선우와 익준>이란 영화가 가진 단 하나의 역할이지 않을까.
- 등장인물 대사 하나하나 현실감이 많이 묻어나는데 현장 분위기가 궁금하다. 배우에게 많이 열어주는 쪽이었는지.
임선우 기본적인 건 시나리오대로 했는데 어미나 말투 같은 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셨다.
양익준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고 현장에 무언가를 갖고 왔을 때 내가 쓴 것과 조금 방향이 달라도 기본적으로는 열어 둔다. 첫 연출 영화 <바라만 본다> 때부터 기본적으로 리허설을 안 한다. 그러다 보면 실수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게 내게는 실수가 아닌 되게 축복받은 한 장면일 수 있다. 배우가 그 캐릭터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대사를 까먹어도 뭔가 말을 계속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도 다 열어뒀다.
- 임선우 배우는 양익준 감독의 스타일 경험해보니 어땠나.
임선우 되게 새로웠다.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게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하는 현장도 경험해봤는데 그때 당시 감독님은 슛 들어가기 전에 좋은 걸 먼저 보고 싶으신 거였다. 이와는 다른 스타일의 감독님과 작업하는 게 되게 재밌었다. 근데 상대배우가 감독인 경우는 처음이라 촬영하다 헷갈리는 부분은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은 누구지? 감독인가, 배우인가. (웃음) 근데 그럴 수밖에 없다. 굉장히 빨리 신들을 찍어야 하는 날은 현장이 정신없이 돌아가니까 영화 속 이야기인지 현실인지 혼동된다. 근데 그런 경험이 모두 영화를 찍는 즐거움이 됐다.
- 임선우 배우는 원래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예고를 나와 바로 연기를 전공하는 것과는 좀 다른 궤적을 거쳤는데,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사회생활 경험이라든지 경영 마인드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감독 역할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임선우 학교에서 보면 굉장히 다양한 부류의 배우들이 존재한다. 근데 중간에 방향을 틀어서 배우가 된 사람들은 수많은 고뇌의 시간을 거치고 집에서 난을 한번 일으킨다. (웃음) 결국 자기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옆에서 누가 말려도 들리지 않고 그냥 가는 게 있다.
양익준 요즘은 아이돌도 모델도 다 연기자가 되고 <오징어 게임>의 허성태 배우는 연봉 7000만 원씩 받던 대기업 직원이었다가 배우가 되지 않았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감독과 촬영감독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대하고 2년 연기 전공하고 감독이 됐는데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유명해졌다. 어디에서 어떤 친구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잘 봐야 한다.
- 듣다 보니 그게 바로 두 분의 공통점이네. (웃음)임선우 그렇네. 나도 지금 깨달았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나도 알아야 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점점 책임감이 생겼다. 가령 함께 작업하는 감독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래서 학교에 있을 때는 물불 안 가리고 연기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했다. 연극원과 영상원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수업이 있다면 찾아 듣고 정신이 반쯤 나가서 그렇게 살았다. 그 시기에 내가 그 학교에 있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행운이다.
양익준 7년 전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너무 감정만 갖고 영화를 만들고 이론적인 부분은 잘 모르니까. 근데 아카데미에서 프로듀서 전공을 했던 아는 누나가 “학교에서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울 수는 있지만 안에 있는 감성은 네가 더 나으니까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하지 말아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 때문에 학교에 다시 들어가는 건 접었다.
임선우 감독님의 감성을 이번에 촬영하면서 굉장히 많이 느꼈다. 전혀 쓸 수 없는 장면이 될 뻘짓을 해도, 그렇게도 할 수 있다고 봐준다. 배우로서 연기하면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매우 중요하다. 양익준이라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도 좋은 걸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선우 올해 개봉하는 <연애 빠진 로맨스>(감독 정가영)에 출연한다. 그리고 내가 찍은 첫 드라마 <트레이서>가 있다. 내가 시도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를 연기해서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선우와 익준>!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양익준 임선우 배우가 참 작업열이 많은 사람이다. (웃음) 난 10여 년 동안 계속 헤매고 있다. <똥파리>의 흔적일까, 영화 제작 이후 벌어지는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다 보니 약간의 귀찮음과 두려움이 있다. 진작 장편영화를 찍었다면 대여섯 편은 찍었을 텐데. 7년 정도 쓴 시나리오도 여타 문제로 작년 하순에 하지 말자고 스스로 정리했다. 가능하면 내년이나 늦어도 내후년쯤, 50살이 되기 전에는 꼭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동안 연기는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출은 직업으로 두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귀중한 그릇으로 생각하니까, 그렇게 너무 귀중하게 대하니까 오히려 손을 못 대는 것 같다. 아,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더 이상 내가 감독이라고 할 수 없겠다 싶어서 감독도 배우처럼 내 일로 생각하자고 스스로 결정했다. 다음 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공개되는데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0만 명이 됐으면 좋겠다. 딱히 100만 명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는데, 역시 <오징어 게임>이 질투 나서 그런가? (웃음) 거기 출연한 (김)주령 배우가 아는 친구인데 팔로워 400명대에서 220만 명이 됐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 팔로워가 100만 명이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임선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올릴 것 같다. (웃음)
양익준 협찬이 들어올지도 모르지! 난 지금 매니지먼트사도 없기 때문에 혼자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 해.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