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강릉국제영화제]
GIFF #7호 [인터뷰] '왕과 함께' 디에고 온가로 감독
2021-10-28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있는 그대로의 진정성

유명 래퍼와 시골 농장 그리고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극영화. 도무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왕과 함께>에서는 이 요소들이 한데 공존한다. 새로운 앨범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래퍼 머니(프레디 깁스)는 앨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의 한 시골 마을로 떠난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동네의 정취에 매료된 그는 SNS를 통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래퍼의 인생을 다뤘다는 점에서 에미넴이 출연한 <8마일>을 떠올리는 관객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왕과 함께>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영화다. 디에고 온가로 감독은 실제 래퍼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비 전문 배우들을 적극 기용하며 즉흥적인 호흡에 영화의 리듬을 맡겼다.

- 이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 전작인 <밥 앤 더 트리즈>(2015)에서 매사추세츠에 있는 벌목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내가 13년 동안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는 동네를 배경으로 했다. 미국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타입의 커뮤니티를 다른 작품에서도 풀어내고 싶었다. 10년 전쯤 프랑스 신문에서 18세 래퍼의 인터뷰를 읽었다. 첫 번째 앨범이 엄청나게 성공한 후 두 번째 앨범을 들고 나오면서 했던 인터뷰인데, 그가 느끼는 압박감을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더라. 아직 삶의 경험이 적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데 억지로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다는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힙합 신의 래퍼들은 항상 마초적이고 터프해야 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데 이 친구는 그러지 않았던 거다. 그 기사가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다. 전작과 같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번엔 외부인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전혀 다른 환경을 경험한다는 스토리로 풀어내면 그 사람의 유약함이나 위기를 잘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음악 산업, 셀러브리티의 삶, 소셜 미디어 같은 다양한 소재도 영화에 녹아 있다.

= 주인공이 래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그런 요소를 당연히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래퍼들을 다룬 다른 영화와 좀 다른 점이 있다. 보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이 랩을 하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왕과 함께>는 이미 정상에 있는 사람이 점점 추락하는 모습을 담는다. ‘힙합과 시골의 만남’ 같은 소재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스튜디오에 가져갔다면 당연히 코미디일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난 아주 진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웃사이더가 전혀 다른 환경에 노출되면서 느끼는 내면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 머니 머큐리를 연기한 래퍼 프레디 깁스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 배우에게 랩을 시키기보다는 실제 래퍼에게 연기를 하도록 하고 싶었다. 래퍼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주 날것의 감정들과 에너지, 그들의 래핑 스킬과 역량, 다양한 경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 녹아 들어 가면 좀더 확장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여러 힙합 뮤지션들에게 접촉했다. 그들은 흥미를 보이다가도 투어나 음반 녹음 스케줄 때문에 스케줄이 맞지 않거나 제작비가 너무 작다고 아예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캐스팅이 난항을 겪으면서 몇 년이 훌쩍 지나가니 너무 피곤했다. 브레이크를 두고 휴식을 취하다 우연히 프레디 깁스의 뮤직비디오를 접했다. 너무 재미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보자마자 이 사람이 적역이라고 확신했다. 두 달 뒤에 코로나19가 터졌는데 오히려 내개는 되게 좋은 기회였다. 공연이 모두 취소되고 다들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내 시나리오를 보낸다면 좀더 성사 가능성이 올라갈 테니. 예상이 적중했다. 마침 본인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 연기가 처음인 프레디 깁스가 그 캐릭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어떤 노력을 했는지.

=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프레디 깁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그의 종교, 음악 산업에 대한 그의 견해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내가 구축해 놓은 인물에 프레디 깁스를 맞추기보다는 극중 캐릭터를 실제 프레디 깁스에 가깝게 수정해갔다. 그래서 머니 머큐리가 아주 풍부하고 리얼하고 현실감 있는 인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프레디 깁스의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본능적으로 이 사람은 연기에 재능이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때문에 많은 디렉션이 필요 없었다. 또 원래 즉흥 연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그가 내게 제안을 하면 내가 답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했다. 원래 뮤지션이라 연기 템포도 워낙 좋았다. 즉흥적으로 연기했던 테이크를 똑같은 대사로 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대로 반복해내는 등 기억력도 비상했다.

- 언뜻 다큐멘터리로 보일 정도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연출을 고수했다.

= 있는 그대로의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 스타일 안에 내러티브가 들어갔을 때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내가 비 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프레디 깁스가 음악 작업하는 신은 진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처럼 촬영했다. 나는 잘 모르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주문한 후 카메라만 들이댄 거다. 농부들이 작업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러티브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내가 개입해서 디렉팅을 하고 배우들 의견도 당연히 수렴했다. 내가 감독으로서 한 일은 언제 개입하고 언제 다큐멘터리처럼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 마지막 공연 장면은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찍었나.

= 지난해 말쯤 찍은 신이다.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정점을 찍었을 때라 방역 지침이 매우 엄격했다. 콘서트 홀 안에서 20명 정도의 엑스트라만 쓸 수 있었는데 육안으로 보기에 너무 휑하더라. (웃음) 어떻게든 이 장면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철저하게 세웠다. 스톡 푸티지 중에서 우리 영화와 가장 흡사한 조명과 분위기를 담은 신을 찾았다. 그리고 무대 앞에 스무 명의 엑스트라들이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서 있게 했다. 관중은 근접한 거리에서 찍은 다음 카메라가 점점 깁스의 얼굴 쪽으로 올라가게 하면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숏에서 빠진다. 다행히 사람들이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잘 보신 것 같다. (웃음)

- 차기작 계획이 있나.

= <왕과 함께>의 시나리오를 함께 쓴 자비 몰리아와 협업하고 있다. 인물, 스토리, 배경까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조합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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