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안녕, 내일 또 만나' 백승빈 감독
2021-11-11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일상을 잘 영위해야 창작도 잘할 수 있다

백승빈 감독의 <안녕, 내일 또 만나>가 11월4일 개최되는 제11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전작 <프랑스 중위의 여자> <장례식의 멤버> <나와 봄날의 약속> 등에서 그랬듯, 백승빈 감독은 영미 문학에서 받은 영향을 영화의 서사 구조, 인물과 긴밀하게 연결짓는다. 동준(심희섭)은 17살 무렵, 친한 형 강현(신주협)에 관해 후회 섞인 선택을 한 뒤로 세 가지의 평행 우주에서 서로 다른 ‘동준’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한다. 전부 다른 길을 걷는 와중에도, 후회를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세명의 동준을 통해 세번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백승빈 감독을 만났다.

- <안녕, 내일 또 만나>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

=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이 “개막작을 찾고 있는데 얼마 전 퀴어영화 작업을 끝마쳤다고 들었다. 궁금한데 영화를 좀 볼 수 있겠냐”고 연락을 주셨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프라이드를 회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 한국영상자료원 웹진에 연재했던 칼럼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 당시 영문학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할 수 있을지 칼럼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윌리엄 맥스웰의 소설 <안녕, 내일 또 만나>에 관해 쓴 글을 보고 손영성 감독이 전화를 했더라. 글만 읽고도 울었다고, 영화로 제작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중에 개인 연출작을 준비할 때 그 칼럼이 생각났고,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쓴 게 덜컥 선정이 됐다. 칼럼을 쓸 때가 연출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낙심하던 시기였다. 글을 쓰면서 내가 왜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 다시 깨달았고 그 글을 바탕으로 영화도 제작하게 됐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업물이다.

- 칼럼에 비해 영화는 훨씬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다룬다. 강현도 마찬가지지만 어머니 서사의 비중도 굉장히 커졌다.

= 맞다. 내가 실제로 어머니에게 느낀 따뜻함과 미안함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경우 병원에서의 대화 신에 중점을 뒀는데 그 신을 1회차 촬영 때 찍어야 했다. 최근 <오징어 게임>에서 활약한 김주령 배우가 어머니를 연기했는데, 촬영 때 많이 우셨다. 신의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해주셨다. 극중 강현은 현실과 다르다. 그때도 내가 닮고 싶은 이상적인 사람이었지만 어느 정도 각색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동준에게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듬직해 보였으면 해서 내가 선망하는 이들의 요소를 조금씩 반영했다.

- 또한 평행 우주 설정이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훨씬 방대해졌다.

= 칼럼은 나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다룬 것이라 장편이 되려면 더 큰 사고가 필요하겠더라. 평행 우주는 캐럴 앤셔의 <아쿠아마린>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책 역시 평행 우주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우주의 나’는 ‘지금 현재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지만 분명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 <안녕, 내일 또 만나> 외에도 <조반니의 방> 등의 책이 영화에 등장한다. 전작에서도 책이 중요한 소재였는데, 이번 작품엔 어떤 영감을 주었나.

= 어릴 때부터 외골수에 책벌레 소년이었다. 여전히 책 커버에 손을 올리면 내 손이 따뜻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작업에 소설들을 레퍼런스 형태로 자주 넣는 건 내가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과거의 유령 같은 사람들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전엔 다소 무리하게 넣은 감이 있지만 이번 작품에선 제임스 볼드윈, 윌리엄 맥스웰 등의 작품들이 잘 밀착됐다고 생각한다.

- 평행 우주의 배경지를 대구, 서울, 부산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

= 대구는 고향이라 20년 넘게 살았고 서울에선 16년 정도를 살아서 익숙하다. 대구를 파트1, 서울을 파트2의 배경지로 보여주고 파트3에선 바닷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를 보며 조깅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었다.

- 심희섭 배우가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세명의 동준을 연기했다. 모두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면을 지녀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배우에게 어떤 디렉팅을 해줬나.

= 파트별로 동준에게 중요한 순간을 딱 한 문장씩 설명했다. 파트1의 동준은 조카를 사랑하는 사람, 파트2의 동준은 성격이 별로인 사람, 파트3의 동준은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 셋 다 다른 타임라인에 살고 있어서 순서대로 찍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전부 뒤죽박죽으로 찍었다.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 배우 자신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긴 했더라. 현장에서도 “희섭씨, 그 얼굴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몇번 이야기를 하니 본인도 감을 잡더라. 어느 순간부터 세 인물의 차이를 잘 구분해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세 평행 세계의 동준 모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 현재의 내 심정이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 나는 예술이 삶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술과 삶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일상을 잘 영위해야 창작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인 작품을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삶을 긍정하며 환희를 찾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좋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도 그렇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 듣다보니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자기 반영적인 영화란 생각이 든다.

= 맞다. 창작자가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걸 부끄러워하진 않으려 한다. 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공개됐을 때 퇴행적이라는 평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작품을 할 때마다 이게 퇴행적인지 아닌지 고민했는데 이번 작업은 처음으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찍었다.

-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내 일부를 끌어내서 만드는 영화는 아마 이 작품이 마지막일 것 같다. 내 안에서 길어내서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했다. 다음엔 좀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나만 즐거운 게 아니라 가족과 관객이 봐도 즐거운 영화들을 연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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