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의 첫 상업 장편영화 '장르만 로맨스'
2021-11-17
글 : 배동미

기억해야 할 새로운 감독이 탄생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달콤, 살벌한 연인> 등에 출연한 조은지 배우가 <장르만 로맨스>라는 준수한 장편영화 데뷔작을 내놓았다. 장르는 코미디. 그것도 무작정 말장난을 던지는 코미디가 아닌, 여러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웃음이 터지게 만들곤 이내 관객으로 하여금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빠지 도록 하는 흡족한 코미디다.

주인공 현(류승룡)은 한때 천재 소설가로 불렸으나, 7년째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교단에서 예비 작가들을 가르치는 그는, 제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지루하고 길게 출석부를 호명한 뒤에 과제부터 이야기하는 기성세대다. 문화예술인이라기보다 소박한 직장인의 삶을 사는 현은 어느 날 송두리째 자신을 흔들어놓는 사건을 겪는다. 태풍의 진원지는 유진(무진성)이란 이름의 새파랗게 어린 제자다. 유진은 현에게 애정을 고백하며 자신이 쓴 소설을 건네 는데, 현은 제자의 깊은 애정과 빼어난 글솜씨가 두렵지만 그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설상가상으로 현의 전 부인 미애(오나라)는 현의 절친한 친구 순모(김희원)와 비밀스레 연애 중이고, 현과 미애의 고등학생 아들 성경(성유빈)은 대학 진학은 뒷전인채 이웃 주민 정원(이유영)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렇다고 현의 가족을 단순히 콩가루 집안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건, 영화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서도 각자가 느끼는 애정, 질투, 불만 등을 숨김없이 풀어내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전 부인이 절친한 친구와 연애하는 모습을 보고 쿨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전남편 현에게 당당하긴 어렵지만 순모를 향한 미애의 애틋한 감정에 손가락질하기도 쉽진 않다. 한마디로 <장르만 로맨스>는 지질하지만 감정만은 진실했던 인생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솔직한 미덕을 갖췄다.

감정은 인물의 행동을 저절로 변화시킨다. <장르만 로맨스>가 웃음의 연료로 삼은 건 대사만이 아니라 배우들의 사랑스럽고 가벼운 몸짓 이다. 관객이 가장 큰 웃음을 터트릴 장면은 고3 수험생 성경이 정원 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구애의 춤’을 추는 노래방 신일 테다. <살아남은 아이> <윤희에게> 등에서 진지하고 무거운 배역을 주로 맡아온 성유빈 배우는 생애 처음으로 도전한 코미디영화에서 가볍고 우스꽝스 러운 몸짓을 선보이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유진 앞에서 어쩔줄 몰라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현, 류승룡 배우 역시 <장르만 로맨스> 만의 사랑스러운 박자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그가 안정적으로 극을 이끄는 덕분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얄밉지 않고 귀여워 보인다.

<장르만 로맨스>는 신인감독과 신인작가의 신선한 결합으로 탄생했 다. 이 작품은 단편 <2박 3일>로 2017년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상업 장편영화다. 첫 작품 <2박 3일>과 <장르만 로맨스> 사이, 조은지 감독은 <오늘, 우리>라는 독립영화를 연출했으나 여러 감독들과의 공동 연출작이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 작품을 그의 첫 장편영화로 불러야 마땅하다. 또한 <장르만 로맨스>는 김나들 각본가에게도 남다른 작품이다. 학원 강사로 일했던 그가 생애 처음 완성시킨 각본으로, 김나들 각본가만의 독특한 대사와 다층적인 인물관계가 두드러진다. 그의 각본은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한국영화 시나리오마켓 2분기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조은지 감독에 의해 최종 영화화되었다(영진위 한국영화 시나리오마켓은 영진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의 전신으로,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었다.-편집자). <장르만 로맨스>는 어떤 관객에게는 류승룡표 코미디로 기억되겠지 만, 어떤 관객에게는 방은진, 문소리, 김윤석, 정진영에 이은 새로운 배우 출신 감독이 탄생한 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CHECK POINT

배우가 아닌 감독 조은지

조은지 감독은 스무살인 2000년에 임상수 감독의 <눈물>로 데뷔한 이후 2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 주성치 코미디영화에 깊이 빠졌던 그는 “인생에서 코미디를 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밝힐 정도로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과 심사위원특별상 연기부문 등 2관왕을 차지한 <2박 3일>에서도 그의 유머가 돋보인다.

무진성 배우의 영화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는 여러모로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있다. 조은지 감독과 김나들 각본가뿐 아니라 유진 역의 무진성 배우는 <장르만 로맨스>로 처음 영화 필모그래 피를 완성시켰다. 류승룡과의 호흡이 중요한 유진 역에 여러 배우가 도전했고, 무진성 배우는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낙점됐다.

가제 <입술은 안돼요>에서 <장르만 로맨스>로

<장르만 로맨스>의 가제목을 듣고 나면 알랭 레네 감독을 떠올릴 독자가 많을 것이다. <장르만 로맨스>의 가제목은 <입술은 안돼요>로, 알랭 레네의 코미디영화와 동일하다. <입술은 안돼요>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나들 각본가가 붙인 제목이 다. 최종 작품명인 <장르만 로맨스>는 제작사와 배급사측이 개봉을 준비하면서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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