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대놓고 욕망하는 재미
2021-12-02
글 : 김소미
<연애 빠진 로맨스> 정가영 감독
사진제공 CJ ENM

<비치온더비치> <밤치기> <하트>의 술꾼도시여자 정가영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 <연애 빠진 로맨스>로 돌아왔다. 그의 영화엔 항상 맞은편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와 연애하고 싶은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는 약간 취했고 종종 상대가 술을 뿜게 할 정도로 솔직하며 대부분 정가영 자신이다. 이번 신작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는 배우 전종서가 바통을 이어받아 한결 현실적인 밀레니얼 청춘의 레이스를 달린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섹스 파트너로 취급받고 새 연인과도 허무하게 헤어진 자영(전종서)은 더이상 고강도 연애 노동 서비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데이팅 앱을 통해 잡지사 기자인 우리(손석구)를 만난다. 술 마시고 대화하다 모텔에 가면 끝이라고 바랐건만, 둘 사이에도 결국 진심 비슷한 것이 생겨나고 만다. 연령대별 사랑이 “10대는 머리, 20대는 심장, 30대는 배꼽 밑”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여자 자영을 따라가다보면 정가영식 연애 모럴의 재미에 취하는 건 시간문제다. 솔직한 발화, 터부와 유머를 버무리는 재주, 그리고 불편함 없는 섹스 코미디를 지향하는 감수성은 달콤하지만 도수가 꽤나 높다.

-캐릭터들의 이름을 나열한 초창기 제목 <우리, 자영>에서 <연애 빠진 로맨스>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우리 자영’은 말 그대로 ‘우리 한번 자자’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발칙하고 유니크한 매력이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다만 사람에 따라 한번씩 더 되물어야 하는, 그래서 설명이 필요한 제목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아꼈던 작명이라 마음이 아리긴 했지만 여러 의견을 받아들여 보다 친숙하면서 의미도 있는 제목으로 택했다.

-연애인 듯 연애 아닌 연애, 확고한 신뢰와 결속의 개념을 배제한 로맨스가 밀레니얼이 바라는 관계의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전 세대와 90년대생들이 생각하는 연애에 대한 관념이 다른 것 같다. 자유로워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더 보수적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달까. 그런 동시에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느 시대든 똑같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썼다.

-자영은 더이상 상처받기 싫어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자기 욕망에 놀랍도록 솔직하고 대담하다.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과 주도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시나리오다.

=여성 인물에 강력한 개성을 주고 싶었다. 자기 감정에 대해 스스로 잘 모르겠는 동시에 굉장히 강력한 욕망들에 휩싸여서 혼란스러운 때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조금 더 자신을 거리두고 보게 되는 성숙한 날들도 찾아오는 게 아닐까. 철없는 한편 응원하고 안아주고 싶은 여자가 이끄는 서사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본인이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은 첫 장편이라는 점에서 자영을 연기한 전종서에게 각별할 듯싶다.

=늘 놀라웠다. 종서 배우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는 타입이라 인간의 강하고 약한 면들을 아주 예리하게 파악해낸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자영은 자존감이 낮고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미완성의 인물이었는데, 배우가 해석한 버전은 당장에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뿐 자기 중심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차츰차츰 새로운 자영을 더 사랑하게 되더라.

-정가영 영화에 나오는 조금 어리숙한 타입의 남성들이 있는데 주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던 배우 손석구가 이 계보를 이어받았다.

=손석구 배우를 알아갈수록 박우리보다 더 박우리 같다고 느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여성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더라. 어쩌면 그동안 연기했던 역할들이 손석구란 사람과 정말 먼 캐릭터였구나 싶을 정도로.

-긴 분량의 대화 신들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인다. 취중 대화 신을 현장에서 연출할 때 어떻게 접근하나.

=초반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더라도 현장에서 충분히 리허설하자는 데 모두가 합의했다. 배우가 실제 현장에 충분히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적응하고, 누군가와 정말 술을 마실 때처럼 텐션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완벽한 리듬감과 현실감이 장착된 상태에서 카메라를 켰다. 내가 연기할 땐 술도 좀 마시면서 찍었는데 이번엔 그럴 수 없으니 긴장도 됐다. (웃음)

-우리가 자기 칼럼에 자영의 사생활을 활용했다는 설정은 꽤나 문제적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이 사건이 끼치는 영향을 어떻게 묘사하고 싶었나.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신중하게 고민했던 지점이다. 우리가 칼럼 안에서 결코 성적인 내용은 쓰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고 모든 사실을 안 자영이 복수에 성공하는 장면, 우리가 충분히 사과하는 장면들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이 논리나 윤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을 여전히 느낀다는 것에 대해서도 영화를 열어두고 싶었다.

-자기 안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그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일 텐데 정가영 영화는 항상 후자에도 능하다. 그래서 상쾌하달까.

=친구들이 내게 항상 그런다. 넌 참 예민한데 이상하게 남 눈치는 안 본다고. 반발심 같은 걸까? 돌이켜보니 20대는 연애 감정과 성욕, 그리고 성공하고 싶은 야망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게 한 것 같다. 약하고 상처를 잘 받는 게 내 본모습 중 하나다. 어쩌면 그래서 나를 더 세고 발칙하게 포장한 것일 수도 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면도 있었다. 내가 무언가 거침없이 발화했을 때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더라. ‘어라? 내가 막 나갈수록 좋아하네?’ 싶었던 거지. (웃음)

-지금의 정가영에게 솔직함의 미덕이란.

=너무 계산하지 않고 솔직하게 사는 인물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고 자꾸만 끌린다. 그 안에 보석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거리낌 없는 인물들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극중에서 박보검 배우가 자주 언급된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의 배우 조인성에서 취향이 바뀐 건가. 아니, 둘 모두 항상 눈여겨보고 있다. 함께 영화 찍고 싶다.

-준비하는 차기작이 있나.

<=82년생 김지영>을 만든 봄바람 영화사와 준비해보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사람 냄새가 진한,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코미디의 색채는 꾸준히 가져갈 생각인가.

=아직은.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을 웃길 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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