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변적 변수로 인식되어온 음악을 주연으로 만든다. 작곡, 작사, 연출, 연주, 노래까지 두루 아우르는 음악 창작자들을 조명하는 콘서트,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KCMF)이 올해로 2회를 맞이했다. 감독과 배우, 작가의 예술이 아닌 작곡가의 예술로 돌아보는 영화는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예술단, KCMF, 그리고 <씨네21>이 주관하는 이번 공연에는 이장호, 김한민, 오성윤 감독 등이 자문위원으로, 조성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자문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서울그랜드필하모닉의 60인조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을 통해 한층 더 웅장한 음향을 구현하며 조성우, 이지수, 심현정, 최승현, 홍대성 작곡가가 엄선한 대표곡들(<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실미도> <늑대소년>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제2회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은 12월1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스크린의 전유물인 영화음악을 콘서트장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서훈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행사를 주도했는데, 클래식 지휘자로서 영화음악 콘서트의 의의를 어떻게 보나.
서훈 훌륭한 영화음악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지만 음악 그 자체로 주목받는 기회는 여전히 드물다. 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큰데도 그 위상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연주 형태로 공연장에서 재생산되는 경우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듣는 영화음악의 매력을 제대로 조명해보려 한다. 올해는 조성우, 이지수, 심현정, 최승현, 홍대성 5인의 음악감독을 모시고 진행한다.
자문위원장으로 함께한 조성우 음악감독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오래전부터 영화음악과 관객의 만남을 추진해왔다. 영화음악 콘서트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있을 법하다.
조성우 서훈 집행위원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작곡가를 조명하겠다는 말이 마음에 꽂혔다. 작곡가의 음악적 개성과 스타일이 온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을 한국 영화음악의 문제점으로 늘 생각해왔다. 오랜 시간 업계에 있으면서 아직도 절감하는 부분이라 이번 기획 취지에 큰 의의가 있다고 느꼈다. 이런 기회가 늘어나면 영화음악 성장의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문화예술 매거진 <아츠앤컬쳐>의 전동수 대표가 콘텐츠위원장을 맡았다.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국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 해박한 만큼 영화음악만의 매력도 꼽아준다면.
전동수 음악에 따라 영화의 질이 결정된다고도 생각한다. 얼마 전 폴란드영화제에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8편 정도 보았는데 즈비그니에프 프레이스네르의 음악이 영화를 위대한 경지에 올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극장이나 매체를 통해 접했을 때 일반 대중에겐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항상 그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 고민해왔다.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 공연을 계기로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확실한 조명을 받고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나 공연 문화에 친숙하지 않았던 분들까지 그 접점을 현장에서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수 작곡가는 그간 <실미도> <건축학개론> <마당을 나온 암탉>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음악을 작·편곡하고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았다. 이번에 어떤 곡을 선정했나.
이지수 <실미도> 한곡과 <올드보이> 두곡을 엮어서 작업하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니 다 오래된 영화들이라 젊은 관객은 잘 모르겠지만 이 기회로 접해보셨으면 한다. <실미도>의 <684부대>는 훈련 과정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박진감 있고 신나는 곡이라 오프닝으로 택했다. 스포츠 중계 등 매체에서 꽤 쓰인 적 있어 객석에서도 익숙하게 반겨주실 것 같다. <올드보이>의 명장면인 산낙지를 씹어먹는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도 편곡했다.
최승현 작곡가는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클래식> <리턴> <다찌마와 리> 등의 음악을 작·편곡했다. <올드보이>에서 인연을 맺은 세 작곡가(이지수, 심현정, 최승현)가 이번에 다 함께 참여해 소회가 남다르겠다.
최승현 실은 처음엔 나도 <올드보이>를 연주하려다가 이미 이지수, 심현정 작곡가가 선택해서 이러다 너무 <올드보이> 일색이 될 것 같아 과감히 빼버렸다. 메인 곡은 <친절한 금자씨> 오프닝 테마로 택했고, <리턴>과 <GP506>의 메인 테마들이 오케스트라 이관 편성에 적합한 곡들이라 이를 잘 활용해보려 한다.
홍대성 작곡가는 <말모이> <공작> <아가씨> <내부자들> <신세계> <베를린> 등의 음악을 작·편곡했는데 이번엔 특이하게 드라마 O.S.T도 포함시켰다.
홍대성 나는 일단 연주가 가능한 곡으로…. (웃음) 대중적으로 즐길 만한 곡들을 선정하기 위해 애썼다. <아가씨>의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군도> 속 <최후의 결투>, 그리고 지난해에 참여한 드라마 <구미호뎐>의 <삼도천의 이별> 등이다. <구미호뎐>의 음악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멜로디의 힘이 강해서 관객과 같이 현장에서 호흡해보고 싶었다.
서훈 이번에 홍대성, 조성우 음악감독님이 드라마 O.S.T를 꼽아주셨는데 앞으로 영화음악페스티벌에서 드라마 음악도 계속 같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로 영화가 어려워지면서 영화음악 감독님들의 드라마, OTT 시리즈 참여가 늘어나고 있어서 배제할 수 없는 흐름이다.
조성우 음악감독이 공연 후반부를 길게 장식할 예정이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천문: 하늘에 묻는다> 그리고 드라마 <인간실격> 등 허진호 감독 작품의 음악이 돋보인다.
조성우 어떤 영화를 선정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고 그다음 공연용으로 적합한 음악을 골라냈다. 영화음악은 영상과 분리해 독자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운 스타일도 많은데 내 경우는 원래의 컬러 자체가 선율적인 음악이라 공연을 올릴 때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에선 허진호 감독님 영화의 서정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인간실격>의 경우 20여년 만에 드라마 작업을 했는데 결국 음악적으로 드라마와 영화는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그 밖에도 오래된 영화지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피아노곡, 음악영화인 <꽃피는 봄이 오면> 등의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번 콘서트의 특색이라면 작곡가들이 직접 연주한다는 점이다.
서훈 스크린을 위한 믹싱, 음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은 작곡가들에게도 분명 희귀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관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작곡가가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컨셉을 정했다.
홍대성 평생 누구 앞에서, 무대에서 연주해본 적이 없어서 정말 긴장된다. 성가대 반주도 안 해본 사람인데 첫 데뷔를 롯데콘서트홀에서 하게 됐다. 너무 떨리면 대타를 쓰고 싶은데.
이지수 준비된 대타가 없다. (웃음)
홍대성 큰일났다!
서훈 음악감독님들이 다 피아노를 연주하기 때문에 무대 배치도에도 신경 썼다. 연주에 피아노가 들어오면 독주가 아닌 경우는 주로 뒤쪽에 배치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아노가 지휘자 앞에서 마주 보면서 스트링 파트의 가운데서 연주하게 된다.
공연을 위해 편곡한 요소 중 관객이 기대해볼 만한 새로운 지점이 있을까.
조성우 요새 국악을 공부하는 중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하나 정도는 국악으로 해서 오케스트라와 국악기의 협연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천문…>에서 작업한 곡들이 바탕이 될 것 같다.
이지수
최승현 영화음악에서 목관악기 등이 쓰인다고 하면 보통 이관 편성으로 하지 않고 솔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편곡을 해서 목관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기존에 피아노가 없던 곡에도 새롭게 넣어보는 식으로 다채롭게 시도했다.
홍대성 <범죄와의 전쟁…> 속 <1982년>이라는 곡은 원래 기타곡인데 이번에 피아노로 연주할 예정이다. 콘서트장에서 연주하면 빅밴드 느낌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재즈에 가까운 편곡도 고민하고 있다.
60인조 오케스트라로 영화음악이 연주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영화 상영 없이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영화음악을 공연하면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들도 있을 듯하다.
서훈 확실히 영화음악은 원작의 감정과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헤아리게 되지만 올해 공연에선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려 한다. 지난해에는 영화 장면을 준비해서 음악과 함께 플레이했는데 되돌아보니 음악에 집중하려는 관객에게 어쩌면 불필요한 무대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는 좀더 과감히 새로운 음악적 해석에 몰입할 수 있도록 영상을 배제하고 연주에 집중하는 포맷으로 간다. 최소한의 장면만 일부 스크린에 띄울 예정이다.
전동수 매체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본질에 가닿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아주 프레시한 현장의 음악을 듣는 것, 그건 결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살아 있는 음악을 객석에 전달함으로써 클래식의 영역이 확장되리라 기대한다.
조성우 영화음악만의 장르적 특색이라 한다면 음악 안에 서사가 있다는 점이다. 이미 드라마를 내포하고 있는 음악이 큰 홀에서 연주되면 관객이 느끼는 정서적 감흥도 배가되지 않을까. 각자의 머릿속에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