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퇴임 앞둔 한국영상자료원 주진숙 원장
2021-12-16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계속 전진하는 자료원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2018년 12월5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의 새 원장으로 취임한 주진숙 원장은 전임 원장의 불명예 사퇴 이후 어수선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업무를 시작했다. 영상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 등 자료원 본연의 업무도 강화해야 했으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해 디지털 정보자원 창출도 고민해야 했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여성영화인모임 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지내고 3년 임기로 자료원을 이끌어온 주진숙 원장은 일복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벌여 후임 원장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좋은 분이 후임으로 와서 계속해서 전진하는 자료원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한 주진숙 원장을 퇴임을 얼마 앞두고 만났다.

마지막 출근일은 언제인가.

공식적으로는 12월4일이다. 현재 후임 원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어 상황을 보고 있다.

지난 3년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나.

영화 전공자가 아니었던 전임 원장이 불명예 퇴임하면서 반사적 이익을 본 것도 있는 것 같다. (웃음) 자료원에 와보니 조직도 잘 꾸려져 있고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더라. 그래서 일을 좀 많이 벌인 것 같은데, 무언가 해보자 했을 때 직원들이 굉장히 잘 따라줘 보람 있었다.

여성 영화학자라는 점 때문에 자료원의 직원들이 소통의 측면에서 기대한 바도 있었을 듯하다. 직원들의 이야기도 귀담아들었다고 알고 있다.

취임 이후 직원들을 만나서 각자 지난 1년간 어떤 업무를 했으며 어떤 보람을 느꼈고 어떤 불만이 있었는지 들었다. 우리는 농담 삼아 자료원 직원들을 개인 사업자라고 하는데, 협업이 많지 않고 각자 자신이 맡은 전문적 영역의 일만 하기 때문이다. 첫해엔 업무 효율화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조직 개편에 대해 고민했다. 예를 들면 나뉘어져 있던 수집과 카탈로깅팀을 통합하는 식으로 팀간의 경계를 허물어 효율성을 높였다. 직원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이라는 것보다는 영화학자 출신이기 때문에 업무 이해도가 빨랐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직원들이 영화 프로그래밍을 할 때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도 즐거웠다.

아이디어는 자주 제시했나.

매년 하나의 큰 키워드를 정하고 그 키워드에 맞춰 전방위적으로 업무를 추진해보자는 식의 아이디어도 냈다. 지난해에는 한국전쟁 70주년, 광주 40주년이라는 주제로 기획전 프로그래밍을 하고, 관련 작품들을 복원한 뒤 디지털화해 서비스하고 연구하는 식이었다.

지난 6월, 전임 원장 시절의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해 공식적으로 사과도 했다.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안에서부터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겠다.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취임하던 날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그것을 외부에선 공식적 사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임 원장 시절의 일이지만 사과에 대한 일종의 압박감을 계속 느꼈고, 내부 규정도 바꿀 필요를 느꼈다. 마침 현 정부도 공직자들의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여서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이 정한 윤리강령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담아 내부 행동강령과 윤리지침을 보강했다. 예를 들면 업무에서 발생하는 영향력을 이용해 부당한 행위를 하거나 개인적 이득을 취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기관을 운영하면서 자료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지점도 있는지.

자료원은 필름 보관소에서 시작했다. 이제는 데이터 센터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데이터 센터가 되려면 정보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중장기 계획도 정보화 시스템 구축, 자료의 디지털화에 맞춰져 있다. 원장 취임 첫해에 영국영화협회(BFI)에 출장을 갔다. BFI에선 영국의 영화 유산을 주제별, 장르별로 다양하게 컬렉션해서 디지털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민간 영상물 아카이빙도 잘되어 있었다. 방대한 양의 영상 자료들을 아카이빙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온라인 서비스 하는 모습을 첫 출장에서 봤는데 그게 무척 강렬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박혔다. 현재의 예산과 인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민간 영상물 수집이나 복원작 컬렉션 구축 등 우리도 새롭게 시도해볼 만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자료원)은,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고 생각한다. 이 보물들을 어떻게 재밌게 서비스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디지털화 관련 연구 용역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건 예산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예산을 따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예산 마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모양이다.

원장이 백방으로 뛰면 부담스러워한다. 예전엔 예산 담당 직원 혼자 뛰어다닌 모양인데,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첫해부터 팀장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기획재정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의 업무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서 조금씩 예산을 따는 기쁨을 느꼈다. 문체부의 업무 이해도가 높을수록 우리도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하게 된다. 자료원의 중장기 계획의 청사진이 될 만한 일들을 꽤 벌여놓은 상황이라 후임 원장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자료원에서 선보인 전시나 특별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장민승 감독과 정재일 음악감독이 함께 기획, 제작한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도 기억에 남고, 자료원이 보존하고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큐레이션해서 소개하는 KOFA 컬렉션을 시작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금 다른 결이지만, 자료원에 오자마자 팀장급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일부 직원들에게 상처준 일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세대교체를 단행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수평적인 조직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예산 전용의 측면에선 본부장 3명과 얘기하는 게 팀장 8~9명과 얘기하는 것보다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고민 끝에 팀제로 개편했다.

퇴임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할머니가 되려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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