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경제사 시간에 1929년 대공황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약진이 있었다고 배운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백작과 같은 대표적인 공포 캐릭터들이 이때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비롯해 무성영화의 전성기도 이 시대였다. 공황 때 영화산업이 잘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시절에 정리 해고된 실직자들이 아침에 집을 나와서 비 오는 날에는 등산 대신 극장으로 갔다는 눈물 어린 신화들이 생겼다. 그 이전에 한국영화는 ‘방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고난의 경제 위기를 지나고 나서 ‘한국영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코로나19 경제 위기는 “경제 위기=극장 흥행’이라는 공식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국내 극장 배급사에서 코로나19 초기 몇달 동안 그전 3년 동안의 수익만큼 손해를 봤다고 <씨네21> 토론회에서 얘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 OTT의 약진으로, 영화의 위기는 아니지만, 스크린은 위기인 게 맞는 것 같다. 수치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극장이 위기를 겪는 동안, 게임의 사회적 위상은 훨씬 더 높아졌다.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기가 어려워졌고, 게임 셧다운제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특히 20~30대 남성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바둑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생겼듯이, 이제 게임을 대표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영화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아니 정치인이 있었나? 임화수 시절까지 올라가면 너무 올라가는 것 같다.
코로나19는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만명을 넘어 3만명 수준까지 나오는 것 같다. 내년 봄에도 일상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고, 내년 겨울에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이렇게 긴 시간 비정상적으로 극장이 운용되는 상황은 영화산업의 등장 이래로 처음이다. 대공황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극장의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내년 이맘때까지 정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있는 극장이 과연 얼마나 될까, 헤아려보게 된다.
OTT 플랫폼이 있으니까 영화는 사라지지 않지만 극장에서 사람들이 모이던 지금의 문화가 그대로 있을지는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천만 영화’도 21세기 초반까지 등장했던 오래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에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즐기기’를 할까? 그들의 선택지에 극장이 아예 없는 순간도 이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극장 스크린이 문화재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올까?
올 연말에도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다. 팬데믹 국면이 장기화하면 생겨날 여러 가지 변화 중 스크린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글로벌 영화산업에는 위기가 없었고, 개별 국가의 영화 위기만 있었다. 이제는 판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팬데믹 국면은 다시 길어질 것이다. 스크린의 위기, 우리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