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원작 웹툰에서 버리고 취한 것들이 만든 풍경
2022-02-23
글 : 최지은 (작가 <괜찮지 않습니다>)
상실과 배제의 살풍경

젊고 신선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과의 만남은 분명 반가운 경험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 즐거움을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의 4부쯤을 보며 생각했다. ‘꼭 12부작이어야 했을까?’ 그 후 같은 의문이 수차례 떠올랐다. ‘진정 12부작이어야만 했나?’ 그리고 11부가 끝나는 순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고?” 물론 60분물 16부작 ‘미니시리즈’에 단련된 한국인에게 709분의 러닝타임이 절대적으로 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우학>은 질주하는 좀비 떼의 속도와 별도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유독 강한 인내심이 필요한 시리즈다. <씨네21> 송경원 기자는 1342호에서 “이 빤한 시리즈의 속도는 약간 이상하다”라고 지적하며 “의도와 달리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빠르다는 인상을 받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에피소드들이 산만하게 흩어진 탓”이라 설명한다. 그 분석에 동의하는 한편, 이 시리즈를 끝까지 견디기 쉽지 않았던 이유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구하는 사람과 도움받기만 하는 사람의 이분화

어디선가 나타난 좀비가 한 고등학교를 초토화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도시 전체로 번져나가며 고립된 아이들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한다. 주동근 작가가 2009년 발표한 동명의 원작 웹툰은 대단히 매력적인 설정을 지녔다. 그러나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된 웹툰과 글로벌 OTT를 겨냥한 시리즈라는 차이, 웹툰 완결 후 10년이라는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왜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부적절하다. 다만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더해진 것과 빠진 것은 무엇인가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것들도 있을 듯하다.

<지우학>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은 10명 안팎에서 시작하는 2학년 5반 그룹으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균형 잡힌 성비를 자랑한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원작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청산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던 주인공 온조(박지후)는 수동적이고 감정에 휩쓸려 친구들을 위기에 몰아넣을 뻔한 인물로 그려진다. 특전사 출신 구급대원 아버지(전배수), 소꿉친구이자 일편단심 온조만을 바라봐온 청산(윤찬영)이 온조의 서사와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온조의 자리는 줄어든다. 질 나쁜 양아치 귀남(유인수)이 청산을 향한 복수에 집착하는 서사가 청산에게 화려한 액션 신을 선사하며 돋보이게 만든 것과 정반대의 효과다. 게다가 청산과 온조, 수혁(로몬)과 남라(조이현)의 연애 감정이 강조되면서 탈출 과정은 ‘짝 피구’(두명이 짝을 지어 공을 맞아도 죽지 않는 한명이 뒤에 숨은 한명을 보호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피구)와 비슷해진다. 강하고 성숙한 두 남자가 ‘내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서사다.

로맨스를 떠나서도 남녀의 존재감 차이는 두드러진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서글서글한 성격의 경수(함성민), 고급 아파트에 살며 거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나연(이유미)이 각각의 계급을 대표해 기능적으로 쓰였음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대수(임재혁)는 노래를 잘하고 성격이 유쾌하며, 우진(손상연)은 배려심이 깊고 누나 하리(하승리)를 아끼며, 준영(안승균)은 얄밉지만 똑똑하고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던져 희생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삭(김주아), 지민(김진영), 효령(김보윤)은 각각 온조의 친구, 부모 잃은 소녀, 끝까지 생존한 인물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남학생간의 대화에는 관계성과 유머가 드러나는 반면, 여학생들의 대화는 갈등과 불필요한 신경전의 비중이 높은 데는 애초에 캐릭터에 주어진 깊이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체불명의 바다 생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염됐던 원작과 달리 <지우학>은 효산고 과학 교사 이병찬(김병철)이 학교 폭력 피해자인 아들 진수(이민구)를 위해 만들었던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즉 인간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설정한다. 학교 폭력은 <지우학>에서 비중 있게 다루려다 전시에 그친 사회 이슈 중 하나다. 진수를 괴롭혔던 가해자 무리는 은지(오혜수)의 교복을 벗기고 또 다른 피해자 철수(안지호)를 협박해 이 모습을 촬영시킨 뒤 온라인에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조롱한다.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착취 영상 유포 범죄를 고발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 여성의 노출된 몸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 자살까지 결심했던 은지가 좀비 떼 창궐 와중에도 영상 유포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은 피해자의 고통만 선정적으로 드러낼 뿐 가해자와 사회를 향한 유의미한 메시지로 구현되지 못한다.

학생들이 부모에게 남기는 영상 편지,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을 연상케 하는 표식 등 <지우학>은 사회적 참사와 관련된 여러 상징을 등장시키며 어른의 책임과 가족애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물의 전형성과 감정의 기계적 배치는 오히려 주제의식을 반감한다. <테이큰>시리즈의 리암 니슨 같은 활약을 펼친 뒤 영웅적 죽음을 맞이한 온조의 아버지는 부성애를, 아들을 찾으러 학교에 왔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청산의 어머니는 모성애를 담당한다. 공중화장실에서 출산한 뒤 좀비에게 물리자 아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묶은 희수(이채은)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청소년 미혼모의 고통이라는 현실적 맥락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모성애의 화신으로만 존재한다. ‘책임’이라는 메시지와 관련해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은 좀비 확산을 막기 위해 효산시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계엄사령관 진선무(김종태)다. 적지 않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작전을 진행한 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결단이었으니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며 자살하는 그의 선택이야말로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우학>은 대를 위해 ‘소’를 버린 그가 다정한 남편이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임을 굳이 드러냄으로써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여러 중년 남자들을 향한 지극하고도 지나친 연민과 관심은 이 시리즈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희망 아닌 폐허에 닿다

즉 <지우학>이 견디기 힘들도록 지루하고 산만한 이유는 작품의 재미와 쾌감을 위해 원작에 덧붙인 대부분의 설정과 서사가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소급되지 않고 각각의 방식으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만함은 최종적으로 작품이 초반부터 이야기한 지옥에 대한 은유조차 주제의식을 배반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진수와 은지, 철수에게 지옥이었던 학교는 좀비의 등장과 함께 모두의 지옥이 되고, 곧 학교 밖도 지옥이 된다. 감염자가 늘어난 효산시를 희생시켜 다른 지역을 지키기로 한 이상, 세상 어디라도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떠미는 지옥과 다를 바 없어진다. 철수는 군인들이 탄 구조 헬기가 왔을 때 다른 학생들의 도움 요청을 무시하고 혼자 떠나 격리소에 수용되었다가 무증상 감염자가 된 은지에게 물려 사망한다. 둘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돕지 못할 뿐 아니라 고의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학생들의 구조를 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조를 비롯한 몇몇 학생은 살아남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성장이 아닌 상실과 배제의 경험이며, 학교 폭력의 피해자 세 사람은 최소한의 존엄성을 발휘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괴물’이 되고 만다. 이재규 감독은 <지우학>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이 시리즈가 닿은 곳은 이병찬의 대사에 가까운 폐허처럼 느껴진다. “다 죽으면 어때? 어차피 이런 세상, 이런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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