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초 자본주의, 일본의 고민
2022-02-24
글 : 우석훈 (경제학자)

2002년에 만들어진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았다. ‘황혼’의 의미는 ‘해가 지면 집으로 퇴근하는 사무라이’라는 의미다. 막부 말기, 일본의 봉건제가 무너지면서 무사들이 장부도 정리하고 회계도 하는 사무직으로 밥값하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어린 딸이 사무라이인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제가 바느질을 열심히 배우면 나중에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글공부를 하면 나중에 뭘 할 수 있죠?”

아버지는 자기가 <논어>를 읽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바느질처럼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글공부를 하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단다. 생각하는 힘이 생기지. 세상이 변한다 해도 생각하는 힘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그건 여자든 남자든 마찬가지야.”

영화는 이렇게 <논어>도 보고, 글공부도 한 가난했던 딸이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닭도 치고, 물고기도 잡고, 가사도 돕던 사무라이 아버지의 짧았던 생을 그의 무덤에서 회상하는 형식이다. 2002년, 일본도 마초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고, ‘초식남’으로 불리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면서 청년 문제와 젠더 갈등, 이런 고민들이 심각해지던 순간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남성의 일평균 가사 노동 시간이 일본은 62분으로, 덴마크나 노르웨의 186분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일본 남성들이 집안일을 하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우리나라는 그런 일본보다 더 낮은 40분이다).

사무라이라는 일본의 영웅적 이미지를 통해 이 시대가 원하는 일본인의 영웅상은 무엇인가, 그런 고민들이 <황혼의 사무라이>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황혼 이혼’이 부쩍 늘어났다고 알고 있다. 마초 자본주의인 일본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고령화가 문제고, 출산율이 문제다. 그래도 일본의 젠더 갈등은 잠재형이고, 폭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아사이TV>의 대표 드라마인 <긴급취조실>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경찰을 원톱으로 내세웠다. 일본에서 벌어진 문제는 10년 정도의 터울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벌어진다. 전형적인 마초 자본주의였던 일본만큼이나 마초 자본주의인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이제 어디로 갈까?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면서, 저 사람들도 저런 고민을 저 시절에 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영웅상을 묘사할 것인가? 영화는 판타지다. 때로 시대에 영합하고, 때로 시대와 불화한다. <황혼의 사무라이>는 치매 어머니를 모시면서 삶을 짊어지고 갔다. 마침 나도 그런 상황이라, 이 생생한 어느 남자의 삶에 조금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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