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정답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2022-03-09
글 : 임수연

대한민국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 다니는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동훈고등학교에 입학한 한지우(김동휘)는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사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다. 고액 과외를 받는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식의 클리셰도 지우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동훈고등학교의 수학 교사이자 지우의 담임인 근호(박병은)의 신념처럼, 이곳은 원리보다는 문제를 잘 푸는 기술에 단련된 학생일수록 높은 등수에 오르기 수월한 세계다. 특히 지우가 계속 고전하는 수학은 담임이 일반고 전학을 권하는 계기가 될 만큼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편 국가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학문 그 자체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은 정체를 숨기고 동훈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과거를 아는 이는 고물상을 운영하며 가끔 그의 바둑 상대가 되어주는 기철(박해준)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건으로 학성이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고수라는 사실을 지우가 알게 되면서 그에게 수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학성은 정답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문제와 친해지는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수학은 머리만 좋거나 노력만 하는 이보다는 용기 있는 자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더불어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지우에게 호기심을 갖는 보람(조윤서)이 특별한 수업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들은 삶의 분기점을 맞이한다.

수학을 매개로 한 사제의 교감은 <굿 윌 헌팅>을, 과열된 입시 경쟁과 상위 1% 우등생을 위한 사교육 전쟁, 시험지 유출 같은 소재는 드라마 <SKY 캐슬>을 연상케 한다. 지우와 학성의 관계에서 <무한대를 본 남자> 등이 만들어진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과 그의 스승 하디의 일화가 겹치기도 한다. 이미 익숙한 구도하에, 입시를 위한 기술 단련과 학자의 태도를 기르는 교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접근 역시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는 수학의 단순함이 가진 매력을, 수식이 교감의 가교가 될 수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일상에 늘 함께하는 수학의 이치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할 땐 거시 세계가 숫자로 환원되는 신묘한 매혹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종이 혹은 칠판 위에 풀이를 써내려가는 순간을 근거리에서 담아낼 땐 필기구의 질감과 경쾌한 리듬으로 몰두의 쾌락을 보여준다. 더불어 모범 답안을 외우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숫자와 친해지는 과정이 요구된다는 학성의 가르침은 정해진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풀도록 요구하는 시험 시스템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삶의 방향성과 방식에 관한 온화한 드라마다. 북한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며 수학을 무기 개발에 필요한 도구로 쓰고, 남한의 수학은 입시 커트라인을 가르기 위한 잣대가 된다. 학성과 지우가 겪는 딜레마는 남과 북이 각기 당면한 정치사회적 부조리를 대비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순도 높은 용기를 견인할 수 있는 수학의 속성은 외부에서 강요된 욕망과 수단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주체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최민식은 오랜만에 특유의 뜨거운 에너지 대신 온기를 품은, 카리스마 있는 야생성 대신 친밀감을 더한 캐릭터로 관객을 만난다. 최민식이 <쉬리> 이후 22년 만에 이북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상대역 한지우 역에는 2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서 발탁된 신인 김동휘가 캐스팅됐다. 실제 학교에 있을 법한 학생의 얼굴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선배 배우와 함께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계몽영화>로 제54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박동훈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 상업영화다.

CHECK POINT

파이 송

이학성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즐겨듣는 음악 애호가다. 그에게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지우, 피아노 연주를 향한 열망을 놓지 않는 보람은 음악이란 교집합으로 보다 가까워진다. 학성과 보람이 원주율 파이(π)에 음을 붙여 만든 ‘파이 송’을 함께 연주하는 신은 수학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구체적인 소리의 예술로 옮겨낸다.

수학의 정확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경제학과 졸업 후 경제부 기자, 증권사 펀드 매니저를 거치며 독특한 이력을 쌓은 이용재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수학 지식을 매끄럽게 녹여낸 스토리를 완성했다. 제작진은 사전에 물리학 교수에게 자문을 구해 시나리오의 정확도를 높였고, 촬영 현장에서 수학 전문가를 대동하며 혹시 모를 오류에 대비했다.

무채색과 앰버 톤의 대비

대한민국 상위 1%의 우등생만이 입성할 수 있는 자사고. 이곳의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은 무채색의 화이트 톤을 통해 시각화된다. 명암 대비를 낮춘 교실과 달리 이학성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과학관 B103 아지트는 명암 대비를 높여 보다 입체성을 더했다. 주로 앰버 톤을 활용해 어두우면서도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담았다. 이학성과 한지우의 집은 모두 메말라 있고 비어 있는 황량한 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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