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오드리 디완 감독의 <레벤느망>, 개인의 오롯한 경험에 집중하기
2022-03-10
글 : 이보라 (영화평론가)

<레벤느망>의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은 예기치 못한 결과였다. 이미 영화계에서 공고한 입지를 다진 제인 캠피언과 파올로 소렌티노가 각각 <파워 오브 도그>와 <신의 손>으로 은사자상(감독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마침내 최고상의 영예가 이제 막 두 번째 장편영화를 연출한 오드리 디완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많은 시네필로 하여금 궁금증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는 그해 베니스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봉준호 감독이 맡았으며, 그의 2021년 베스트 목록에도 <레벤느망>이 언급되었다는 사실로 더욱 화제가 됐었다. 어느 여대생의 원치 않은 임신과 중절 시술의 경험을 다룬 <레벤느망>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에세이 <사건>을 원작으로 한다.

아니 에르노가 쓴 에세이 <사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이 책에서 에르노는 논문을 준비하고 진로를 결정할 시기였던 23살에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고 중절을 감행하기까지의 과정을 초연히 회고한다. 책의 초반부, 아니 에르노- 결혼 전 당시 그의 성은 뒤셴느였으며 영화 속 주인공 안의 성도 동일하게 나온다- 는 기숙사 친구들에게 이끌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이 상연되는 공연장에 간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이미 자신 앞에 닥칠 일을 직감한 그는 뒤숭숭한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바쁘다. 그는 수첩에 적었다. “‘멋지다. 내 안의 이런 현실만 아니었다면.’” 본문의 ‘현실’이라는 단어에 밑줄이 쳐진 까닭은 복합적일 것이다.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여자애들, 그리고 내가 있”는, 그리하여 은연중에 평범함을 획득한 여성 친구들과 나 자신으로 분리되는 현실이자, 곧 “내 안에서 내 엄마를 죽”이는 일에 가담할 작정을 하며 죄의식에 휩싸이는 현실. 오랫동안 자신을 세상에 고발하는 동시에 해명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온 에르노는 이 책에서도 특정한 의지 표명 따위로 환원되지 않는 종류의 고백을 이행한다. 실제 불륜의 경험을 담은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도 “나는 그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라며, 정직하고 당돌한 언어로 말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우회 없이 펼치는 작가다.

대화가 거의 제시되지 않으며 대부분 내면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에르노의 에세이는 일기라 일컬어도 무방할 만큼, 침잠하고 골몰했던 당시 아니 뒤셴느의 ‘상태’ 그 자체를 써내려간다. 한데 행위보다 심경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를 도와주는 이가 정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낙태는커녕 여성의 섹스 자체가 저어되던 시대에 에르노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고, 어렵사리 터부를 뚫고 도움을 구할 때조차 타인들은 제각각의 구실로 그를 판단하거나 관망하거나 심지어 희롱했다. 이렇듯 <사건>은 작가가 스스로를 치밀하게 관통한 고백문이다.

사실 따져보면 ‘원치 않은 임신’이나 ‘임신중절’이라는 모티브는 서사 예술에서 그리 드물지 않다. 영화에 한정하더라도 일찌감치 클로드 샤브롤이 <여자 이야기>를 통해 암암리에 낙태를 돕는 여성의 삶을 소상히 그린 적 있으며, 셰어와 낸시 사보카가 공동 연출한 옴니버스 <더 월>, 크리스티안 문쥬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최근에는 일라이자 히트먼의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등이 그러한 소재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레벤느망>이 굳이 <사건>이라는 원작을 밝힌다는 사실은 본편이 그것의 정신을 빌려왔다는 점을 천명하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말하자면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를 서술하면서도 끝내 글쓰기로서 보편에 가닿길 원한다고 적었듯(“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그 태도를 이어받는 의미에서 오드리 디완은 극중 안이 겪는 12주를 관객도 함께 체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녀’가 겪는 본격적 시간

<레벤느망>의 구체적인 모양을 들여다보자. 1960년대 초반 프랑스, 안은 교사를 꿈꾸는 문학도다. 무도회에 가기 위해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브래지어를 고정하며 한밤의 일탈에 설레는 그녀는 또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성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녀는 교수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학생이기도 하다. 즉흥적으로 받은 질문에도 자신의 의견을 막힘 없이 설명하는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모범생으로 꼽힌다. 그러나 혼자 남은 방, 옷을 갈아입은 안은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는 팬티를 확인하고 노트에 적는다. “‘4월29일 없음. 오늘도 또.” 곧 ‘3주차’라는 자막이 뜨면서, 관객은 이 진중하고 명민한 학생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레벤느망>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주인공 안에게 바짝 다가서 그녀의 근거리를 맴돈다. 관객에게는 거의 정방형으로 인식될 만한 1.37:1 화면비, 게다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연상케 할 만큼 끝없이 반복되는 클로즈업은 관객과 안의 거리감을 확 좁혀 우리가 그녀의 삶에 덜컥 승차했다는 느낌을 배가한다. 화면비는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물론 태도까지 좌우한다. 4:3 화면비를 채택한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는 작고 좁을수록 크고 넓어지는 우정이라는 관계를 설명하는 데 어울리는 구성으로 두 남성 주인공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증명했고, 1.66:1 화면비인 루카스 돈트의 <걸>은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좇으면서 자신의 몸을 살피고 교정하고 끝내 처치하는 인물을 신체 부위라는 단위로 담아냈다. 반면 <레벤느망>의 좁은 화면비는 프레임 내부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규정한다든가 특정한 요소들을 파편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안이 하는 행위와 반응이다. 숏마다 안이 등장하며, 다른 인물들의 행위와 반응은 거의 담기지 않는다. 말하자면 타인들은 모두 안과 연루되어 존재할 따름이다. 모든 장면은 결국 안의 얼굴로 수렴한다. 그녀가 걸을 때, 생각에 빠질 때, 춤출 때마다 영화는 빠짐없이 그 얼굴에서 피어나는 모든 표정에 거의 붙으려 한다. 이러한 가까움의 전략을 채택했음에도 영화는 내레이션 등으로 안의 내면을 발화할 기회는 배제한다. 그리하여 관객의 근처에 있지만 설명되지 않는 안의 어떠한 상태- <사건>을 빌려 말하자면 눈앞의 광경을 방해하는 ‘현실’- 는 끝내 저편에 있고 우리가 보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사태를 홀로 돌파해나가는 인물의 액션과 리액션뿐이다.

따라서 영화는 안의 행위와 반응을 (객관적인 의미에서) ‘전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격렬한 추체험을 유도한다. 이런 장면이 있다. 안과 친구들은 동급생들이 그녀의 책에 꽂아둔 외설스러운 사진을 발견하고는 분노한다. 그러던 와중에 별안간 친구 브리지트(루이스 오리디케로)가 침대 위에 올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베개를 놓고 마치 성관계를 하듯 허리를 움직인다. 브리지트가 그 동작에 집중하는 동안 안은 넋이 나간듯 얼어붙는다. 욕망을 감각하는 행위로서의 섹스를 시뮬레이션하는 친구가 신음을 터뜨리면, 이어지는 숏에서 안은 입덧으로 변기를 잡고 구토한다. 타인에게 섹스가 호기심의 대상이자 욕구를 충족할 행위로 ‘가정’되는 한편, 안에게는 실질적으로 메슥거리는 증상을 유발하는 기제가 된다. 물론 그 정점에는 갖가지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몸속 깊숙한 곳에 생채기를 내야만 스스로가 살 수 있는 여성의 현실이 있다. 영화는 안이 결심을 이행하는 중대한 순간마다 에두르지 않고, 그것이 요구하는 본격적인 시간을 그대로 반영한다. 몇몇 장면의 리얼리티는 트리거가 될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노골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영화는 안의 경험에 있어 지체하거나 은폐하는 구석이 없다.

<레벤느망>을 이룬 여성들

영화의 생생함은 안을 연기한 배우 안나마리아 바르토로메이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1999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했다. <비올레타> <나의 혁명> 등에 출연한 그는 <레벤느망>에서 선보인 호연으로 지난 2월25일 열린 세자르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감독과 배우 사이의 두터운 신뢰는 사전 리허설 없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포용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다. 바르토로메이는 “우리 자신을 그저 내버려둔 채, 가끔은 놀랄 만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극중 안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프랑스영화에서 자주 만나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클로드 샤브롤의 페르소나였던 상드린 보네르는 안의 엄마로 등장해 적은 비중임에도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엄마의 모습을 믿음직하게 설득했다. 필리프 가렐의 <질투>의 여자주인공인 아나 무글라리스,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에서 베네데타를 의심하는 동료 수녀 크리스티나를 연기한 루이스 샤빌롯도 이번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영화에는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반목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하며 여성간에 일어나는 폭력과 상처도 간과되지 않는다. 동시에 어떤 여성들의 관계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수정되기도 한다. <레벤느망>은 안이라는 온전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여성 인물 하나하나의 결을 살려 클리셰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을 완성해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감 자리에서 오드리 디완은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이 영화를 분노와 욕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저의 배, 내장, 심장과 머리로 만들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열정을 표현한 이 말은 에르노가 품었던 보편에의 열망과도 맞닿는다. 2021년, 제인 캠피언이 웨스턴의 자장 안에서 오래된 남성성을 느슨하게 허물었다면 오드리 디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이 마주하는 극한의 현장으로 맹렬히 침투했다. 그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여성영화의 실천을 고심하는 연출자로서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 이후를 눈여겨볼 만하다.

<레벤느망> 트 리 비 아

첫째, 오드리 디완과 공동 각본가 마르시아 로마노는 원작자 아니 에르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모든 버전의 각본을 공유했다.

둘째, 내내 대학생 안의 입장에서 묘사되는 영화와 달리 원작은 아니 에르노가 에이즈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오래전 임신중절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셋째, 문학을 전공하는 안과 친구들은 카뮈와 사르트르에 관해 토론하는가 하면 수업에서는 아라공과 위고의 시가 언급되기도 한다.

넷째, 프랑스에서는 1975년, 시몬 베유가 보건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때 12주 이내 자발적인 임신 중지가 합법화되었다. 극중 시점으로부터 대략 12년 후다.

다섯째, 안은 중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캠퍼스 내에서 자신의 소지품을 파는데, 이때 한 학생이 뒤적이는 책은 사르트르의 소설집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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