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인비상정책포럼에서 만난 3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이은,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대표 최낙용,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김이석
2022-03-13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관객의 볼 권리와 영화의 공공재적 가치를 논의할 때
최낙용, 김이석, 이은(왼쪽부터).

지난 2월22일, 영화인비상정책포럼의 주도로 영화인 503명이 현 정부와 각당 대선 후보들에게 한국영화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정책을 제안했다. 503명의 제안자들은 성명을 통해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극장 매출 감소는 상영관 중심의 독과점 특수를 누리던 국내 영화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으며, 정부 지원이 필요한 창작자와 중소 제작, 배급사, 상영관의 경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짚었다. 3월1일 기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측이 제안문에 회신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 캠프도 답변 의사를 전달한 상태다. 충무로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회장 이은 명필름 대표는 “쇄신에 대한 절실한 의지를 보여줄 시기”라며 이번 제안서에 뜻을 모으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은 회장, 그리고 신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인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대표(영화사 풀 대표)와 김이석 동의대학교 교수 3인과 모색한 한국영화계 생태계 복원을 위한 대안을 전한다.

비상정책 5개안

1. 붕괴된 영화산업 복원을 위한 긴급 예산 편성

2. 프랑스식 자동 선별 지원체계를 도입하여 창작, 제작, 배급, 상영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

3. 불공정거래행위 근절, 상영 및 배급 겸업에 대한 규제

4. 스크린 독과점 규제 및 홀드백제도 정착

5. 중소기업지원자금의 대기업 사용 금지

최낙용

- 503명이 서명해 비상정책 제안문을 발표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이은 지난해 12월경 공공 플랫폼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온라인으로 연구회를 연 자리에 초대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임 활동이 주춤했던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 위원회’ 멤버들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정책의 필요성과 시급함을 공유하고 있는 영화인들을 모아 우리도 매주 온라인 모임을 열기로 한 것이다. 12월4일 처음으로 24명의 영화인비상정책포럼이 열렸고 1~2주 간격으로 월요일 밤마다 모여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그동안 영화계 내 단체 중심으로 정부 건의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엔 그 틀에서 벗어나 개인들의 연명을 받아보고 싶었다. 우리부터 관성과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전제였다. 개별적으로 영화인들과 접촉해 2월22일까지 총 503명의 지지를 받아냈다.

- 현재까지 응답한 대선 후보가 있나.

이은 윤석열 캠프에선 전체적으로 우리의 제안에 동의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대선 후에 간담회를 열자는 정도의 간단한 답신이 왔다. 이재명 캠프는 5개 제안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달긴 했는데 아직은 신중한 입장이다. 가령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프랑스식 자동 선별 지원체계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심상정 캠프는 곧 답을 주기로 했다. 영화계의 목소리에 대선 후보 과반수 이상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 지난 2~3년간 한국영화계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는 전국 17개 극장이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지금 한곳이 휴관에 들어가 운영 중인 극장은 16개이고, 협회에 소속돼 있지 않은 독립영화제 전용관, 시네마테크 등과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데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이중의 위기를 느낀다. 첫 번째는 구조적 위기다. 애초에 이윤을 목표로 하는 영화관이 아니고 공공적 성격과 역할을 갖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저 민간인들이 어떻게든 버티면서 운영해왔다. 이제 더이상은 개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친 것이다. 보조금 일부와 관객 매출로 겨우 1년치 운영만 내다보면서 벅차게 해나가고 있는 극장들 대다수가 매출이 70%까지 급감하면서 누적 적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이다. 결국 상영 회차를 줄이고 인력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버티다보니 프로그램 수급과 기획력까지 약화되는 악순환이 초래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개인들이 감당해온 예술영화관 생태계는 이런 식으로라면 완전히 사라질 거라 본다.

- 한국예술영화관협회 16개사의 상황은 요즘 구체적으로 어떤가.

최낙용 대구 동성아트홀은 2021년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천장이 무너진 이후로 아직까지 복구를 못하고 있다. 다른 공간을 찾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고, 창원의 씨네아트 리좀은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고 있다. 인구 100만 도시인 창원은 물론이고 경남 유일의 예술영화관의 상황이 그렇단 얘기다. 안동의 중앙시네마 역시 사용하던 공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폐관을 심각하게 고려하다 마지막으로 2년 정도 더 운영해보기로 결정했다. 20년 역사의 대전아트시네마 또한 현재 상영관의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잠시 쉬어야 하지 않겠나 고민하더라.

- 코로나19 시국에 영화계를 향한 정부의 대응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이은 정부가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인식의 문제도 크다. 산업적으로는 2019년까지 영화계가 최고의 호황이었다고 평가하지 않나. 5편의 천만 영화를 비롯한 역대 최고 관객 동원 수치, 세계 1위인 1인당 영화 관람 횟수, 세계 5위 규모의 영화시장, <기생충>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까지 정부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수치들이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에 속한 중소기업가의 입장에서는 이미 최소 10여년에 걸쳐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체감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모든 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극장과 영화계 단체들이 2019년의 호황으로 돌아가려고 영화 할인권 지원, 대작 영화 개봉 유도 등을 시도했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근본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영화계 내부에 자가당착과 모순이 존재한다. 오로지 시장 중심으로만 달려온 영화 생태계를 점검하고, 다시 공공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 새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 정부가 긴급 예산을 편성한다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나.

이은 의견은 천차만별인데 프랑스의 경우 5천억~6천억원을 조달받고 있다. 산업 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긴급 예산이 최소 4천억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제작에 1천억원, 배급에 1천억원, 극장에 2천억원 정도를 배분해 정부에서 새로 구성된 영진위에 예산을 만들어주면 전문가들이 실효성 있게 예산을 집행하고 단시간 내에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본다. (2022년 영진위 예산은 2021년보다 75억원 감소한 978억원으로 책정됐다.-편집자)

최낙용 현재는 영화발전기금이 정부의 대출금 형태로 운영되는데 정부가 독립적인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입장권 부과 방식으로는 예전과 같은 기금 재원 마련이 어려우니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해서도 다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올해까지 코로나19 여파가 있을 거라 예상한다면 4천억원도 빠듯하다. 현재까지의 위기와 훼손 상황에 대한 복구 비용도 필요할 테고,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 투입할 자금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성명서는 결국 이렇게 첨예한 예산 책정 문제에 있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고, 그 핵심은 공공성의 가치에 있다. 적절한 산업적 성장과 공공성의 가치를 양 날개로 펼쳐야 한다.

이은

- 프랑스식 자동 선별 지원체계의 장점은 무엇인가.

김이석 용어가 좀 낯설 수 있는데 쉽게 설명하면 자동 지원은 일종의 마일리지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외 선택 지원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공모 사업과 비슷하다. 프랑스는 이렇게 마일리지 제도와 공모 사업의 균형을 5.5 대 4.5, 6 대 4의 비율로 맞추면서 영화 생태계 균형을 꾸리고 있다. 마일리지 제도는 제작, 배급, 상영 분야 모두 적용되는데 실적을 낸 만큼 일부 금액이 자동으로 적립되어 차기작 개발에 쓸 수 있다. 단순히 성과에 비례한 적립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흥행이 덜된 영화들의 경우 적립률을 높여주고, 텐트폴 영화는 낮추는 식으로 적립률도 적정한 차이를 두도록 설계돼 있다. 한마디로 단순 공모를 통한 지원 사업의 빈틈을 보완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자동 지원제가 도입되면 흥행이 안된 극장이나 영화도 마일리지 제도 안에서 약간의 혜택을 얻어 좀더 안정적으로 차기작 제작에 임할 수 있다. 작은 영화관들은 멀티플렉스의 수익 일부를 활용할 수 있으니 좋고, 큰 제작사나 상영관들도 크게 성공한 만큼 적립금의 규모 자체가 절대적으로 커질 테니 시드머니가 생긴다. 원천적으로 규모가 작은 제작 사업, 배급 사업은 이런 자동 지원 외에 공모와 같은 선별 지원을 통해 지원을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이야기다.

이은 제작, 배급, 상영업으로 자동 지원을 배분해 기업이 성과를 내서 산업에 기여하면 일정 부분 재원을 되돌려준 뒤 다음 스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지원하자는 것이다. 재원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제작쪽에서는 영진위에서 일종의 마일리지 제도를 적용한 적이 있다. 명필름의 경우 <나의 특별한 형제> 때 100만 관객을 넘겨서 1억원 정도를 회수받았고 이를 다음 영화의 개발비로 쓸 수 있었다. 다만 자동 지원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배급과 상영쪽에는 돌아가는 재원이 없었고 극장측에서 시설비 명목 등으로 편법을 써서 지원금 일부를 가져가는 상황도 벌어졌다.

최낙용 이미 빈익빈 부익부 상황에서 극장에 또 자동 지원을 해준다는 데 일부 반발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 영세한 기업은 추가적으로 선별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동 지원을 받는 큰 극장에는 의무 사항을 부여하는 식의 부가적인 장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이석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는 영진위와는 다른 규제책을 갖고 있다. 자동 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로 CNC에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돌아오는 불이익도 확실하다. 지원을 통해 곧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한국과 프랑스는 영화산업의 시장 규모, 극장에 들어오는 관객 규모도 비슷하다. 프랑스가 취하고 있는 영화 다양성을 위한 정책을 우리도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불공정거래행위 근절과 상영 및 배급 겸업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왔고, 이번 비상정책 제안에도 명시했다.

이은 사실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인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를 관리·감독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넣었다. 시장 내에서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CJ와 롯데가 자사 영화 밀어주기식의 운영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리가 소홀하다. 상영 및 배급 겸업 금지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최소한 이를 구조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율이라도 조정해야 하지 않겠나. 신문방송법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 OTT 플랫폼까지 가세해 더욱 혼란해진 홀드백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이은 현재는 사실상 홀드백이 무너진 상태다. 영진위에서 이를 잡아주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실종된 상황이다. 2019년까지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시장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약속이 휘발된 거다. 사실 홀드백에 관해서는 제작, 배급, 극장 모두가 잘 살기 위해 과연 영화가 극장에 얼마 동안 걸려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현실이 어렵다보니 업자들도 자기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예술영화를 극장에서 볼 이유가 왜 점점 사라지는가. 극장에 일주일 걸고 IPTV 내보내면 당장의 광고비를 포함한 이익은 빨리 회수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관객 입장에선 점점 더 극장에 가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우선순위로 관객의 볼 권리를 중심에 놓고 정책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OTT 홀드백의 경우는 넷플릭스가 치고 들어와 갑자기 생긴 몇 가지의 특수한 사례만으로 상영관 정책을 결정해야 하니 아직까지 혼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이석 프랑스의 기본 원칙은 4개월로, 최소 4개월이 지나야 DVD나 IPTV에서 볼 수 있다. 넷플릭스 같은 OTT에 풀려면 원래는 36개월이었지만 최근 15개월로 줄어들었다. 대신 자국 콘텐츠를 유치하는 형태로 규제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조건으로 홀드백 기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김이석

- 마지막으로 한국영화계의 위기에 관해 제언해준다면.

최낙용 단순히 말해 지금 한국엔 예술영화관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거의 모든 지역 공립 도서관에 가면 2010년부터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지난 10년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받은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 속에서 시민과 정책 당국 모두 도서관과 미술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영화관에 관해서도 그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대담을 볼 독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김이석 지난해부터 박스오피스에 한국영화가 없어졌다.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정 대기업들이 영화 제작부터 배급, 상영까지 독점하면서 다양성을 훼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위기를 기회 삼아 밑그림을 다시 짜야 할 때다. 1990년대의 역동적인 한국영화들이 가진 역량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은 영화계 현안들이 사실 매우 복잡하고 딜레마도 많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영화계를 지켜야 할 하나의 건강한 생태계로 바라보지 않았고, 산업 중심의 양적 성장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문화의 공공재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럽식 관점을 갑자기 도입하기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이 더 늦기 전에 치러야 할 진통의 시점이고 변화의 분기점이라는 것이다. 시장 확대와 활성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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