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마드리드는 주민 대부분이 휴가를 떠나면 정처 없는 관광객이 점령하는 곳이다. 마드리드에 사는 33살 에바(잇사소 아라나)는 떠나지 않고 남아 있기를 택한다. 아파트를 빌린 에바는 매일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시내 투어 버스를 타고, 박물관을 방문하고, 산책을 하며, 영화를 보고, 축제의 콘서트를 즐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잘 연락하지 못했던, 육아 중인 친구 소피에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화를 걸어 만나고, 3개월 전 헤어진 연인과 마주치며, 길거리에서 우연한 계기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영화는 휴가와 여행과 같은 소재에서 기대할 법한 흥분과 즐거움보다 휴식과 사색에 더욱 집중한다. 이건 주민과 관광객의 경계에 있는 에바에게서 기인한다. 스스로 선택한 모호한 위치는 너무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특별한 시공간에 해당하는데, 사색에 빠지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에바 스스로를 포함한 인물들과의 대화에 주목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가치관을 경청하며 내면의 소리도 외면하지 않는 사려 깊은 에바의 모습을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 사색의 출구가 보일 때쯤 관객은 사색을 추동한, 에바를 휘감고 있던 고민의 정체가 여성으로서의 존재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앞서 등장한 인물들과 에바 사이에 있었던 말들과 형성된 관계는 그 의미를 다시 부여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