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열대왕사' 한 사건을 두고 망각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과 여
2022-04-20
글 : 오진우 (평론가)

1997년 무더운 어느 여름밤, 에어컨 수리공 왕쉐밍(펑위옌)은 차를 몰아 애인이 있는 영화관으로 향한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그는 누군가를 치고, 당황한 나머지 뺑소니를 친다. 차에 치어 죽은 사람은 후이팡(장애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남편을 찾는 데 열중한다. 왕쉐밍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왕쉐밍은 자수를 결심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대신에 그는 후이팡에게 직접 사실을 고백하고자 에어컨 수리를 빌미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열대왕사>는 한여름 밤에 일어난 뺑소니 사고의 전말을 더듬어가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익숙한 서사지만 연출은 새롭다. 우선 왕가위 영화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는 영화가 담아낸 무더운 한여름과 살인 사건에 연루된 주인공의 찜찜한 죄책감과 맞물려 한껏 분위기를 살린다. 또한 뺑소니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더듬어가는 편집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의 기억을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주며, 사건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면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해탄적일천>의 배우 겸 제작자인 장애가와 대만의 청춘스타 펑위옌이 호연을 펼친다. 영화에서 이들의 관계를 사랑으로 묘사하지 않은 게 매력적이다. 이들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감정을 서로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펑위옌이 망각을 이야기하는데 영화는 역설적으로 절대 잊을 수 없는 둘 사이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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