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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imagolog 약속된 시간에 저희를 만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다룰 신작은 4월7일 극장 개봉했고 곧 왓챠에서 보실 수 있는 <나의 집은 어디인가>입니다. 올해 오스카에서 국제장편영화, 장편애니메이션, 장편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어요. 세 부문에서 동시 후보 지명을 받은 작품은 처음이라 그래요.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마이너한 작품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굉장히 소중하고 드문 필름이라 할 수 있죠. 주인공 아민은 아프간 난민이자 성소수자란 이중의 주변성을 감당하며 성인이 된 인물입니다. 이 영화는 두겹의 어려움을 극복한 커밍아웃 스토리기도 해요.
김혜리 @imagolog 뜨겁고 정치·경제적인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지만 접근법 자체는 난민을 덩어리가 아닌, 온전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해요. 아민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과 트라우마들이 그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리고 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여줌으로써요. 난민 영화는 대부분 선의로 출발하지만 어떻게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까 집중하다보면 난민의 원인인 독재 정권이나 침공, 내전 등에서 발생한 가혹행위나 억압을 시각적으로 전시할 수 있거든요. 결과적으론 불행을 구경거리로 삼는, 수난 엔터테인먼트가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장면화를 피하고 있어요.
김혜리 @imagolog 아민과 실제 친구 사이인 감독은 아민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아민의 주관적인 피난 경험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아민 가족이 아프간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유럽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풍랑을 만나는데, 이때 거대한 배 한척이 해무 속에서 다가옵니다. 배에는 크루즈 여행을 즐기는 백인 승객들이 가득 타고 있죠. 아민 기억에는 그 백인 승객들이 갑판에서 자기들을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고, 아민의 옆에 선 아프간 난민 어른들이 구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이때 소년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수치심이 들어요.
김혜리 @imagolog 이런 하드한 소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왜?’라고 묻게 되잖아요. <돼지의 왕>을 봤을 때 ‘왜 애니메이션이지?’라고 고민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이 영화엔 직접적인 이유가 있죠. 첫 번째, 아민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들려주지만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덮음으로써 감독이 친구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그의 안전을 보장한다. 두 번째, 물론 코펜하겐 시민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아민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애니메이션 양식이 어울릴 수 있다.
김혜리 @imagolog 이 영화를 통해 아직 내가 타자의 마음을 상상하는 데 부족하구나, 알게 됐어요. 영화에서 아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은 수치심인데요. 폭력 앞에서 비굴했던 경험이나 남을 돕지 못했던 기억을 가장 끔찍한 감정이라고 아민이 말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러시아 경찰에게 끌려가는 상황에서 아민이 여성 난민을 돕지 못한 일이라든가, 북유럽 승객들한테 구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동족을 부끄러워했던 일이나 이런 것들이 아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김혜리 @imagolog 다루고 있는 주제의 긴급함이나 내 친구의 경험을 알리고 싶은 욕망에 앞서 어떻게 이를 착취하지 않고 영화로 옮길까 고민했다는 게 영화에서 느껴져요. 감독의 성정과 감수성, 그리고 아민과 감독 사이의 신뢰, 어쩌면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죠. 이 영화는 오히려 아민과 감독 관계에 있어서는 일부일 뿐이다, 생각할 정도로 오래 다져진 조용한 신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는 괴롭지만, 안정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와 함께 보면 좋을 작품
배동미 @somethin_fishy_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고통스러운 아프간에서 떠나 난민이 된 사람들을 그렸다면,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은 여전히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걸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영화입니다. 아버지가 탈레반에 끌려가고 가족이 굶어죽을 상황에 처하자 주인공 소녀 파르바나는 머리를 자르고 소년처럼 옷을 입어요.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죠. 최근 탈레반이 여학교를 열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일이 있어요. 영화 속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지금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아프간 땅 위에 서 있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끝나거든요. 결국 아프간에선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남선우 @pasunedame 아프간 옆나라 이란으로 가보려 합니다. <페르세폴리스>는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동명의 원작 그래픽노블이 있는 애니메이션영화예요. 주인공은 감독과 이름이 같은 마르잔입니다. 액션 스타를 동경하고 펑크록을 즐기는 터프하고 야무진 이란 소녀죠. <나의 집은 어디인가>와 나란히 보길 권하는 건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이에요. 전쟁이 일어나도 첫사랑을 겪고, 떠도는 중에 영화, 음악을 즐기는 게 사람이잖아요. 이 영화는 그 점을 말해서 좋았어요. 마르잔의 2차 성징을 그로테스크하고 유머러스하게 작화해서 좋았고, 데칼코마니처럼 선 병사들이 서로 총을 겨누다 고꾸라지는 거울 같은 장면에선 소름이 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