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엣나인필름이 공동 주최하는 ‘2025 재팬무비페스티벌 반항과 혁신: 1960~80년대 ATG 특별전’이 3월15일(토)부터 23일(일)까지 9일간 아트나인에서 개최된다. 어느덧 10회를 맞이한 재팬무비페스티벌이 올해 선택한 테마는 일본영화사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제작, 배급사였던 ATG의 작품들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마쓰모토 도시오 감독의 <장미의 행렬>, 데라야마 슈지 감독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와 <전원에 죽다>,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모리타 요시미쓰 감독의 <가족게임>,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 클럽>까지 총 6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현대 일본영화의 근간이 된 전위영화들의 예술적 열망을 통해 오늘의 갈증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 이후 세계는 새로운 물결을 맞이했다. 세계 각지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질서와 관습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영국의 프리 시네마 운동, 프랑스의 누벨바그 등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파도가 각국에 당도했다. 1960년 이후 일본영화를 되돌아본다면 많은 이들이 오시마 나기사를 주축으로 한 쇼치쿠 누벨바그의 크고 높은 파도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파도는 홀로 오지 않는다. 거대한 조류가 형성되면 크고 작은 물결들이 일어나 아름다운 빛을 반사시키기 마련이다. 이때 파도가 일으키는 에너지를 온전히 파악하고 싶다면 앞자리부터 끝자리까지, 그러니까 가장자리를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흔히 전위영화라고 부르기도 하는 실험영화들은 영화의 영토를 넓히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 방식이다. 제일 먼저 도착했다고 전위(前衛)가 아니다. 기존 질서가 허락하지 않는 한계선까지 달려가 충돌하고 밀어붙이는 힘, 타협하지 않는 투쟁 정신이야말로 ‘앞자리’ (아방가르드, avant-garde)로서의 전위가 지닌 힘이자 가치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화에 대한 열망으로 1961년 일본에서 설립된 ATG(Art Theatre Guild)는 혁신과 예술의 아이콘으로서 시대를 관통한다.
ATG는 대형 스튜디오 중심의 일본영화 시스템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네 멋대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창작 그룹이다. 당대의 영화언어를 탐구하고 해체하며 영화 형식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던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 혹은 출구였다(창작력은 이미 충분했다). 소규모 아트 시어터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립적인 배급 시도는 대형 스튜디오와 결이 달랐던 영화들에 숨통을 틔어주었다. 그렇게 ATG는 일본 사회의 모순, 정치적 억압, 성과 폭력, 실존적 고뇌 등 당시로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움을 갈망했던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바야흐로 시장이,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용 상영관을 중심으로 뿌리를 다진 ATG는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든다. 특히 쇼치쿠 등 대형 제작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가능성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창작자들(오기마 나기사, 와마카쓰 고지, 요시다 기주, 데라야마 슈지 등)이 합류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당대 기라성 같은 감독들은 물론 젊고 혁신적인 창작자들이 ATG를 통해 영화를 공개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여기엔 모순이 하나 있다. 다수의 대중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도전이다. ATG에 있어 규모를 키운 안정적인 흥행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흥행을 위해선 평범한 영화를 만들어야 했겠지만 ATG에 타협이란 없었다. 거듭된 흥행 실패에도 ATG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고 영화의 정신을 자극하는 도전들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오랜 침체 끝에 1992년 도호사에 인수합병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무리한다.
역설적으로 이 필연적인 흥망성쇠가 시대를 초월한 ATG의 가치를 증명한다. 획일화된 영화에 저항하며 과감한 예술적 실험의 끝자락까지 질주했던 ATG의 영화들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창의적인 실패와 타협하지 않는 상상력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2025년 한국에서 ‘1960~80년대 ATG 특별전’이 열리는 이유일 것이다. “일본영화가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수합병 당시 도호사의 공식 입장문)이었던 ATG가 걸어온 반항과 혁신의 길은 새로운 에너지를 갈망하는 2025년의 한국영화계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안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저항하고 상상하는 영화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 영원에 이르는 순간을 함께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