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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영화가 이탈리아에서 축제가 되었으면 - 정한석 영화평론가의 제23회 피렌체한국영화제 참관기

극장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피렌체한국영화제. 작고 소박할 것이 틀림없는 영화제다. 그런데 최근 이 영화제를 찾는 주요 한국 영화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창동, 봉준호, 김지운, 임상수, 나홍진,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이정재, 박해일, 황정민 등이 최근 몇년간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 곳일까. 어떤 매력을 갖춘 곳일까. 영화제 기간 동안 현지에 머물며 각종 행사를 지켜보고 참관기를 전한다.

나홍진 감독(왼쪽)과 리카르도 젤리 집행위원장(오른쪽).

개인적으로 피렌체한국영화제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당연한 일이다. 그 이전에는 알 만한 계기가 없었다. 피렌체한국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리카르도 젤리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었고 많은 것을 궁금해했고 더 좋은 작품을 초청하고 싶어 했다. 종종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카페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동석한 장은영 피렌체한국영화제 부위원장에게 “목소리가 너무 크다, 조용히 말하라”고 어김없이 지적받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을 말릴 방법은 별로 없어 보였다. “뒷일 생각하지 않고 먼저 저지르고, 끈기와 집요함으로 달려들고, 머릿속에 든 생각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 사람. 그래서 매일이 마찰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마침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영화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장은영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런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내가 업무로 정신이 없어 그와 마주치지 못하기라도 하면 그는 잊지 않고 반드시 어딘가에 있는 나를 찾아냈고, 그가 원하는 작품의 정보들을 기어코 수집해갔다. 한 개인에 관한 특별한 인상이 피렌체한국영화제를 궁금하게 만든 전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일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황정민, <베테랑2> 무대인사.

이번 피렌체행에 복잡한 사연이 없진 않았다. 대략 2년 전부터 어드바이저를 제안받아 오던 중 올해는 한번 같이해보자며 의기투합하였으나 공교롭게도 피렌체 출장 중 나의 보직이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에서 집행위원장으로 변경될 예정이어서 영화제가 가까워 올수록 참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예정된 현지에서의 업무들이 있었던 터라, 약속은 약속이라는 마음으로 피렌체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렌체로 향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왜 그토록 중요한 한국 영화인들이 이곳을 이렇게나 많이 찾는 것일까. 예컨대 최근 몇년간만 해도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송강호, 황정민, 이병헌, 이정재, 박해일 등이 이곳을 다녀갔다. 피렌체한국영화제와 유사한 규모의 전세계 어떤 영화제 혹은 타 대륙의 ‘한국’영화제들 중 이 정도의 화려한 한국 영화인 초청 라인업을 자랑할 만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피렌체라는 유서 깊은 도시의 특수성이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제는 게스트들의 ‘후기’를 먹고 자란다. 그러니까 그들이 피렌체라는 도시의 매혹에 끌려 방문했다 해도, 영화제가 엉터리면 안 좋은 소문은 금방 퍼지게 되어 있다. 중요한 손님은 집으로 돌아가며 불평을 늘어놓을 테고, 그다음 사람들은 방문하기를 꺼리게 된다. 피렌체한국영화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중요한 한국 영화인들이 이곳의 손님이 되고 싶어 한다.

관객과의 대화 중인 <폭로: 눈을 감은 아이>의 전선영 감독.

일단 매년 양질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자 시도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올해 개막작은 이종필 감독의 <탈주>, 폐막작은 전선영 감독의 <폭로: 눈을 감은 아이>다. 전자는 국내시장과 평단에서 이미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냈고, 후자는 아직 국내 개봉하지 않은 기대작이다. 올해의 특별전으로는 ‘황정민 특별전’과 ‘나홍진 특별전’을 마련했다. 말 그대로 설명이 필요 없는 동시대 한국영화 거장들에 관한 프로그램이다. 개막식에 맞춰 도착한 황정민 배우는 현지 관객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마스터클래스를 여는 한편 <베테랑2>의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의 박수와 질문이 쏟아졌다. 그가 배우로서 걸어온 경력, 연극인과 영화인으로서의 관점, 함께 일한 감독들과의 에피소드, 좋아하는 이탈리아영화 등등 질문은 다채로웠다. 장은영 부위원장은 “올해 이 두개의 특별전을 취재하기 위해 주변 유럽 국가에서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와서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취재를 위해 런던에서 온 기자도 있다”고 전해주었다.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무대인사.

이종필 감독의 개막작 <탈주>가 상영되던 날도 객석은 완벽한 만석이었다. 관객은 숨을 죽여가며 먼 타국의 슬픈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탈주극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밖에도 <행복의 나라>의 추창민 감독이 관객을 만났고, 모그 음악감독은 현지의 플로렌스 팝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특별한 협연도 펼쳐 보였다. 한편 남동협 감독의 <핸섬가이즈>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주요 게스트 중 한명인 음악감독 모그는 현지 음악인들과 특별 협연을 펼쳤다.

올해 피렌체한국영화제의 목표는 “영화의 본질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영화 그 자체로 대표되는 황정민, 나홍진 같은 게스트를 대표적으로 초청하고자 했다”고 리카르도 젤리 위원장과 장은영 부위원장은 밝힌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피렌체한국영화제의 시작은 한국영화를 향한 정말 단순한 바람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지속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알리려 노력한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리고자 했고, 전통무용, 한복 전시, 조각 전시와 함께 영화 10편을 상영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는 게 피렌체한국영화제측의 설명이다.

명예 피렌체 시민이 된 배우 황정민.

23년이 지난 지금 피렌체한국영화제는 그 규모와 무관하게 많은 한국 영화인들에게 ‘가보고 싶은 좋은 영화제’로 손꼽힌다. 영화제를 이끄는 리카르도 젤리 위원장과 장은영 부위원장은 원대한 소망 대신 이런 말을 전한다. “지금도 사실 큰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매년 열심히 하는 것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약간의 바람이 있다면, 영화제가 훨씬 더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 바통을 넘겨받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하지만 후임에 대한 걱정은 당분간 넣어두어도 될 것 같다. 열정적인 운영진도, 소박한 현지의 관객도, 환대받는 한국 영화인도 모두가 서로를 좋아하고 즐거워했다. 피렌체한국영화제라는 이 축제의 현장은 여전히 오래 갈 것 같다.

한 눈에 보는 AI 요약
피렌체한국영화제는 작지만 진심과 열정으로 운영되며, 한국 영화인들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열정적인 운영진과 품격 있는 프로그램, 현지 관객의 환대가 어우러져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찾고 있다. 영화제는 한국영화에 대한 순수한 애정에서 출발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1. 피렌체한국영화제의 위상
    1. 작고 소박한 영화제지만 이창동, 봉준호, 송강호 등 주요 한국 영화인들이 꾸준히 방문
    2. 한국 영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영화제의 진정성과 품격 있는 운영
    3. 영화제에 대한 현지의 진심 어린 환대와 긍정적인 후기가 입소문을 타고 확산
  2. 열정적인 운영진과의 인연
    1. 리카르도 젤리 집행위원장의 끈기와 추진력이 영화제의 성장 원동력
    2. 장은영 부위원장과의 팀워크로 영화제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성 확보
    3. 필자와의 인연도 젤리 위원장의 적극적인 정보 수집 노력에서 시작
  3. 참여와 고민, 그리고 선택
    1. 필자는 영화제 어드바이저 제안 후 보직 변경으로 참석을 고민했으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렌체 방문
    2. 피렌체의 유서 깊은 도시성과 영화제의 품질이 영화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
    3. 좋은 영화제는 방문자들의 후기로 성장하며, 피렌체한국영화제는 그 기대를 충족
  4. 프로그램 구성과 관객 반응
    1. 개막작 <탈주>, 폐막작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등 양질의 상영작 구성
    2. 황정민, 나홍진 특별전 마련 및 마스터클래스와 관객과의 대화 진행
    3. 현지 관객의 뜨거운 반응과 해외 기자들의 방문으로 영화제의 국제적 관심 확인
  5. 행사와 수상
    1. <탈주> 상영 시 만석, 관객의 몰입도 높은 반응
    2. 추창민 감독, 모그 음악감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
    3. 남동협 감독의 <핸섬가이즈>가 심사위원대상 수상
  6. 영화제의 시작과 지속
    1. 영화제는 한국을 알리고자 하는 순수한 바람에서 시작
    2. 전통문화 전시와 함께 10편의 영화 상영이 첫 시작
    3. 운영진은 크게 욕심내지 않고 매년 성실하게 이어가는 것이 목표
    4. 운영진, 관객, 영화인 모두가 서로를 좋아하는 분위기로 지속 가능성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