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검색
지고이네르바이젠 (1980)
청소년 관람불가
144분 미스터리
50, 0년대 맹렬한 기세로 가장 독특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스즈키 세이준의 1980년도 영화. 형이상학적인 버디 영화 혹은 두 쌍의 부부와 한 여성의 관계를 그린 치정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플롯보다는 이미지로 감각해야 하는 영화이다. 그 감각은 잘해봤자 불가해한 서사가 주는 난감함을 피해보려는 차선책 정도겠지만 그럼에도 기괴하고 치명적인 이 영화에 대한 불길한 매혹과 맹목적인 열광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군사학교 교수인 아오치는 한때 동료였으나 지금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친구 나카사고를 쫒는다. 그 과정에서 자유롭고 이기적인 나카사고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역겨워하는 아오치는 기이한 체험들을 하게 된다. 인간 본성의 극단적인 두 측면을 두 남자에게 투사한 이 인물들은 어쩌면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죄다 꿈인 것도 같다. 다섯 남녀의 엇갈리는 치정, 붉은 뼈에 대한 나카사고의 집착, 음탕한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3인조 맹인 악단,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녹음할 때 사라사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음반에 들어있다는 이야기, 죽은 남자의 책과 음반을 돌려달라고 자꾸만 찾아오는 여자 등 인과관계에 의한 서사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이 이야기는 비논리적인 악몽 시리즈처럼 보인다. 오직 심리적 동기로 열리고 닫히는 시공간의 급격한 이동, 묵음과 음악 사이를 오고 가는 사운드 실험, 정동의 움직임과 접사와 원사의 교차 등 낯선 시각적 체험 안에 살인과 자살, 사랑과 치정, 우정과 질투를 뒤섞어 넣었다. 스즈키 세이준의 이 독특한 세계는 에드가 알란 포, 람포, 루이스 브뉘엘, 로저 코만의 이름을 다 갖다대더라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으며, 일본 역사와 문화를 통달하더라도 가닿기 어려워 보인다. 파시즘의 광기로 빠져드는 1920년대 일본의 시대적인 공기가 탐미적이고 냉소적인 이 영화의 기운을 만들어냈다고도 한다. 현존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감독의, 음산하고도 도착적이며 낯설고도 아름다운 이 영화를 통해 일본 독립영화의 예술적 성취가 어디까지 가닿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