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 PD다. 자신이 꽂히면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제작비를 많이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진주 PD의 요구라면 들어줘도 된다. 언제나 그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물을 가져온다.”(나영석 PD) <꽃보다 할배> 조연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공동 연출을 거쳐 첫 기획작이자 메인 연출작 <윤식당>을 흥행시킨 이진주 PD는 이른바 ‘나영석 사단’에서 리얼 예능 프로그램 촬영 방식부터 동료를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가 독립한 뒤 만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환승연애>는 최근 범람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화제성을 자랑했다. 특히 <환승연애2>가 세운 역대 티빙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는 상태다. 이진주 PD가 tvN에서 JTBC로 이직 후 선보인 <연애남매>는 <환승연애>과 다른 듯 닮았다. 남매들이 모여 서로의 연인을 찾아간다는 구성에서 누가 누구의 남매인지 추리하는 재미는 그대로지만, ‘X 연인’이 아닌 ‘가족’으로 엮여 있기에 확장할 수 있는 테마가 다양하다. 선배 PD 사단의 일원에서 자신의 팀을 꾸린 리더로서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이진주 PD를 만났다.
- JTBC로 이직한 후 처음 내놓은 작품이다.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던 아이템이었나.
= <환승연애>를 했던 팀이 모여 여러 가지 기획안을 만들어보았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다. 왜 우리가 연애 예능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걸까? 그냥 우리가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며 기획한 게 <연애남매>였다. 임정아 JTBC 예능제작본부장이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보다 넓은 시청층에 어필할 수 있겠다. 재밌겠다”고 해주셔서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티빙에서 독점 공개됐던 <환승연애>와 달리 JTBC <연애남매>는 웨이브에서 풀버전이 선공개된 후 일부 신이 편집된 버전이 JTBC를 통해 방영된다. 기획 단계부터 TV 시청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겠다.
= 기획 단계부터 완벽한 TV 프로그램을 상정했다. <환승연애>처럼 회당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 것은 회사에서 이전처럼 가보자고 해서였다. 전반적으로 우리 엄마가 봐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을 넣고 싶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유년 시절을 담은 홈 비디오와 사진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지만 귀엽게 느껴진다. (웃음) 아이들이 잘 자라서 한 집에 모여 재미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했다. 이것은 비단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원래 즐기던 젊은 층뿐만 아니라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 세대도 대입할 수 있는 감정이다. 사실 섭외 단계에서 남매들에게 홈 비디오가 남아 있는지 확인한 건 아니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남아 있는 자료가 많더라. 운이 좋았다.
-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함께하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어떻게 두 테마가 붙게 됐나.
= <환승연애>에는 ‘X 연인’이 페어로 나오고 그 사실을 숨기는 장치가 있었다. <환승연애>처럼 페어를 추리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계를 고민하다가 남매가 나왔다. 물론 러브라인 중 한 라인을 포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내 편 혹은 결정적인 순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포인트가 됐다. 작은 변주지만 결과물은 굉장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가족’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남매가 같이 나오면 재밌을 거라고 단순하게 접근했다. 그런데 남매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다 보니 이게 가족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겠더라. 출연자가 어떤 누나인지 오빠인지 딸인지 아들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알게 되면서 그들의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 자녀를 방송에 출연시키는 부모도 걱정이 많겠다는 생각에 한번 인사를 드리자며 찾아뵀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너무 재미있는 분들이었고 그들의 인터뷰 역시 방송에 담게 됐다.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 색깔이 확장되면서 기획 단계에서 많은 변형이 있었다.
- 자료 조사를 하다 보면 확장성 있는 아이템과 그렇지 않은 아이템이 있다. 기획 단계에서 이들을 선별하는 것이 관건이겠다.
= 그래서 그동안 ‘빠그라졌던’ 기획안들이 있었던 거다. 지난해 3월 JTBC로 이직한 후 여러 기획안이 나왔지만 이 이상 뭐가 안 나오겠다 싶은 기획들이 있었다. 가령 새로운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이라면 어떤 사람이 섭외되느냐에 따라 생기는 제한이 있었다.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은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완전히 방송이 달라질 수 있고 그 풀도 무한하다. <연애남매>는 남매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가 각자 가족의 이야기를 대입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이 자라온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들의 유년 시절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행동을 분석하는 일도 가능하다.
- <환승연애> 당시 작가들이 최소 1만5천명 이상에게 연락했다고. <환승연애>와 <연애남매> 중 어느 쪽 섭외가 더 어려웠나.
= <연애남매>가 훨씬 어려웠다. 인스타그램 DM으로 접촉한 사람 수는 비슷한데 새로운 IP가 소문나면 안되다 보니 프로그램의 컨셉을 미리 밝힐 수 없었다. 연애 예능을 준비한다는 정도만 밝힌 후 어마어마한 공력을 들여 이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판단이 들 때쯤 컨셉을 오픈하면 “저는 외동인데요”, “저는 자매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섭외가 어그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환승연애>는 ‘X 연인’이 여러 명일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알아본 사람에게 어떤 결격사유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는지 재차 물어볼 수 있었지만 <연애남매>는 이 또한 불가능했다. 부모 역시 방송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섭외가 훨씬 제한적이었다.
- 그동안 다른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러브콜을 많이 받았지만 고사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출연을 설득했나.
= 작가들이 센스가 좋다. 심지어 인터뷰만 하고 실제 출연은 하지 않은 분들과 아직 친분을 유지할 정도로 일로 만나는 분들과 관계를 잘 맺는다. 작업실에 쿠키를 잔뜩 들고 오길래 누가 줬냐고 물었더니 “저번에 면접 본 친구가 줬다”고 하더라. (웃음)
- 많은 시청자가 세승과 재형이 남매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승과 정섭의 외모가 더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웃음) 일부러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입주 순서의 허를 찌르고 비슷한 외향을 가진 사람들을 섞은 것인가.
=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첫 에피소드의 관전 포인트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입주자가 남매라는 것은 시청자도 당사자들도 예상 못할 지점이었다. 그래서 “3주 동안 남매 단둘이 남겨진 상황도 많을 텐데 절대 티를 내서는 안된다.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뒀다. 덕분에 처음 마주쳤을 때 두분이 연기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세승, 재형 남매 외에는 시청자를 너무 열심히 속이고 싶진 않았다. 남매 하나가 특정되고 나면 나머지를 추리하기는 쉽다. 1회 큐피드 쪽지 미션을 통해 소거되는 라인들도 있었다. 비밀을 오래 가져가다 보면 포기해야 할 리액션 컷도 많았기 때문에 남매 추리에 너무 힘을 빼진 않았다.
- 연애 감정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 있도록 서로 호감을 가질 만한 출연자들을 섭외한다고.
= 이번에도 인터뷰 단계에서 각자의 이상형을 자세히 물어봤다. 촬영에 들어가면 이분이 누구에게 꽂히겠다는 계산을 하긴 했다. 처음엔 아닐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에게 끌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한다.
- 예측이 적중할 때가 많나.
= 거의 똑같이 간다. <환승연애> <연애남매>팀이 스무 몇명 정도 되는데 다들 보는 눈도 비슷하다. A가 말했던 이상형이 B에 부합한다면 실제 촬영에 들어간 후 A가 B에게 호감을 보인다.
- <환승연애2>가 화제 몰이를 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반 ‘메기’(안정된 환경 속에서 긴장감을 조성시키도록 중간에 투입된 이들)로 투입된 현규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였다. 그가 바로 해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예상했던 포인트였나.
=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기획 단계에서는 우리가 해은씨에 대해 아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촬영에 들어가고 편집을 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다. 그래서 현규씨가 해은씨의 어떤 면을 보고 호감을 가졌는지 나중에 알게 됐다.
-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메기 투입 시기는 어떻게 결정하나.
= 인물 투입은 그 회차의 주인공일 만큼 무척 중요하다. 출연자들의 비밀이 차례로 공개되는 구성 속에서 어디에 들어가야 가장 효과적일지 고려한다. 메기가 들어오기 전에 출연자들끼리 공유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도 안되고, 그전까지 아무 비밀이 밝혀지지 않아도 재미가 없다. 어느 정도 정보의 차이를 두고 가장 텐션이 올라갈 수 있는 타이밍을 고려한다.
- 처음부터 서사를 완벽하게 짜놓고 들어가는 대신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며 탄생하는 그림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는 연출을 고수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가도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게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찐텐’이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찐텐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 <연애남매>는 특히 집이 중요했다. 어렸을 때 명절에 친척들이 큰 집에 모이면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또래는 또래끼리 놀지 않나. 그런 레트로한 집을 떠올려 달라고 미술감독님에게 말씀드렸다. 사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할 집을 고를 때 선택지가 별로 없다. 서울에 10명 이상 되는 사람이 생활할 만한 주택이 거의 없으니까. 지금 방송에 나오는 집과 굉장히 고급스러운 주택 두 군데를 놓고 고민했다. 후자는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고 공간도 넓어서 우리가 촬영하기 좋았는데 뭔가 가족적이고 화목한 느낌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감 가고 소박한 게스트 하우스 같은 쪽을 선택했다. 또 <프렌즈> <남자셋 여자셋> <논스톱> 같은 옛날 시트콤 느낌을 주고 싶었다. 거실은 시트콤 속 친구들이 모이는 공용공간처럼, 지하공간은 자주 모이는 아지트처럼 구현한 거다.
다양한 유형의 가족을 보여줘야 시청자도 몰입할 수 있다
- 1회 세승이 아빠와 통화하는 화목한 모습을 보며 흐뭇한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혹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자녀가 있는 4인 가족이 일반적이라는, ‘정상 가족 판타지’를 부추기는 방송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후에 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모습이 등장했다. 이 역시 인터뷰 단계에서 염두에 둔 것인가.
= 대표성을 고려하며 남매를 섭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매력적인 사람들을 모았는데 그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다양한 속사정이 있었다. 소위 4인 가족을 표준으로 둔 ‘정상 가족’이 다수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실제 비율은 이런 게 아닐까? 다양한 가족을 보여줘야 시청자들도 출연자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다.
- 일반인의 가족사를 어디까지 노출할 것인가도 고민이 됐겠다.
= 2회가 공개되기 전 철현, 초아씨와 방송에 어떤 멘트가 나갈 것인지에 대해 미리 얘기했다. 그전에 우리끼리 시사를 하면서 방송에 나갈 워딩도 하나하나 고민한다. 어떤 발언이 더 나가고 말고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 <환승연애> 당시 ‘X 연인’끼리 서로 미련을 갖는 모습을 보일 줄 몰랐다고 하지 않았나. <연애남매>에서도 그런 포인트가 있었나.
=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되는 구성이 있다. 우리는 아주 라이트하게 넣은 설정이었다. 어떤 출연자가 과거 사진을 보고 예전에 느꼈던 슬픔이 상기됐는지 감정을 많이 드러냈다. 그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보면서 숨겨진 사연을 생각하게 되는 그림은 예상하지 못했다.
- 카메라는 몇대 정도 설치하나. 거울처럼 보이는 곳 뒤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다고 알고 있는데.
= <환승연애>와 비슷하다. 100대 이상 된다. 그런데 카메라가 공간별로 뭉쳐 있고 항상 출연자가 걸려 있는 건 아니라서 하다 보면 영상이 눈에 익어서 아주 힘들지는 않다. 스탭들은 거울 뒤에 숨어 있고 출퇴근도 한다. 출연자들과는 인터뷰할 때나 마이크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하지만 스탭들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환승연애> 때는 힘든 일이 있으면 꾹 참다가 인터뷰 룸에서 우리를 붙잡고 토로하기도 했다. 재밌는 건 <연애남매>는 조금 새로운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옆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바로 그들과 대화한다.
-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빠삐용특집 - 이진주 피디 편’에서 사실적인 연출을 위해 디졸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적’이라는 개념은 무척 광범위하다. 이를테면 <나는 솔로>가 추구하는 사실성과 <연애남매> <환승연애>가 추구하는 사실성은 무척 다르지 않나. 후자는 예쁜 공간을 섭외해 색보정을 거쳐 출연자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감정의 사실성을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 아직 디졸브를 선호하지 않긴 하지만 후배들이 해온 연출에 대해 그리 엄격하게 굴지는 않으려고 한다. <연애남매>에서도 세승의 아빠에게 전화가 왔을 때 전화기를 비추는 풀숏에서 타이트숏으로 바뀌는 순간 나오는 디졸브는 상황에 어울리기 때문에 그냥 놔뒀다. (나)영석 선배가 내가 해온 것을 많이 존중해줬던 것처럼 나도 그러려고 한다. 그리고 공간이든 사람이든 예쁘고 아름다워야 보는 이도 몰입이 된다. 시청자가 출연자의 말과 행동을 궁금해하게 만들려면 그들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서 공간 세팅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인터뷰이가 한 말 중 ‘진짜’라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실제 사건과 인터뷰 시점에 시차가 있을 때 누가 봐도 힘들었던 사람이 당시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상황 자체에 집중되게끔 편집한다.
- <연애남매> <환승연애> 모두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고 다양한 BGM을 까는 것으로 유명하다. 돌이켜보면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윤식당> 시리즈도 모두 그랬고. 좋은 음악과 방송에 쓰기 좋은 음악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곡을 고르나.
= 각각의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흐름을 더 중요하게 본다. A에서 꽝꽝거리는 음악이 나왔다면 그다음에는 풀어주는 음악이 등장해야 한다. 그 뒤에는 긴장감 있게, 그 뒤에는 코믹하게 등등 베리에이션을 해야 보는 사람의 감정도 리듬감 있게 출렁일 수 있다. 생각보다 청각적인 데서 오는 텐션이 무척 중요하다. 음악을 잘 쓰면 다소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도 몰입해서 보게 할 수 있다.
- ‘빠삐용특집 - 이진주 피디 편’에서 제작비를 많이 쓴다며 나영석 PD가 놀리지 않았나. (웃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은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감수하고 밀고 나감으로써 좋은 퀄리티의 방송을 만들고 성공시킨다는 연출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연출자로서 고집과 타협을 가르는 기준이 있나.
= 제작비 내역을 들여다보면 내가 필요 없는 데 돈을 쓴 건 없다. 그런데 모아놓고 보니 규모가 커진 거다. (웃음) 일단 비주얼적인 부분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공간과 미술에 투자를 많이 한다. 그리고 섭외는 포기할 수 없다. 이를테면 출연자들을 모아놨는데 이 라인업으로는 약하다고 느껴지면 다른 사람을 더 찾고 싶다고 요청한다. 이 말은 곧 작가들의 월급을 한두달 더 줘야 하고 인터뷰 장소와 카메라 대여비도 추가 지출되어야 한다는 의미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연애남매>를 준비할 당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 남매 조합들이 모였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중 일부는 방송 이후 아무 논란이 없을 사람이라고 내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준비 기간을 더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 다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의 과거가 폭로되는 등 구설수가 터진 적이 있다. 논란이 있을 만한 출연자를 거르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 섭외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혹시 예전에 했던 행동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을 때 문제가 될 만한 게 있냐고, <연애남매>는 본인뿐만 아니라 방송에 나오는 남매와 부모한테까지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이다. 제작진이 이렇게 말했을 때 출연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연애남매> 포맷 자체가 필터링을 거치게끔 하는 작용을 한 것 같다.
- 사이가 좋지 않은 남매를 섭외할 생각은 없었나. 지금 출연자들은 우애가 너무 깊다.
= 섭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만나본 사람들도 있다. 티격태격하며 소위 ‘혐관’을 보여주는 모습이 예능적으로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좀더 대화를 나눠 보니 결격사유가 될 만한 부분이 있더라. 매력적이고 인품도 훌륭하지만 남매 관계는 좋지 않은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 2회 만에 모든 남매가 공개되고 서사도 등장했다. 앞으로의 전개는 어떤 것을 기대해보면 좋을까.
= 숨 막히는 러브 라인? (웃음) 싸우는 남매도 등장하고 혈육이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의 혈육과 친하게 지내려는 모습도 나온다. 본질적으로 <환승연애>처럼 치명성이 있는 구성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도 좋아하고 몰입한다는 것을 <연애남매>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느꼈다.
재미있는 유튜브 클립을 모아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 CJ ENM 입사 전에는 원래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문장력을 훈련하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자라는 직업이 너무 향기롭게 보였다. (웃음) <재즈 피플>이라는 잡지사에 무작정 찾아가 돈 안 받고 일할 테니 나를 받아달라고 한 적도 있다. 언론고시 스터디를 하면서 기자 시험을 많이 봤지만 내가 기자를 하기엔 나약하게 보였는지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다. 그러다 CJ ENM PD 공채에 지원하게 됐다. 당시 CJ ENM은 무척 파격적인 채용 절차를 선보였다. 서류만 통과하면 3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PD 오디션’을 통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안암 슈퍼스타K’ 가요제를 위해 만들었던 자작곡을 불렀는데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나 보다. 인턴십 과정을 밟을 때 당시 tvN 본부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면서 tvN으로 가게 됐다. 당시 tvN은 <현장토크쇼 택시> <롤러코스터> <화성인 바이러스> 등을 만들면서 이제 막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던 채널이었다. 돌이켜보면 채널의 성장이 나의 커리어와 함께 갔다는 게 정말 운이 좋았다.
- <꽃보다 할배> 조연출을 맡기 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거쳤나.
= <코미디빅리그>와 <부자의 탄생> <완판기획> 같은 방송을 했다. <부자의 탄생>을 하면서 부동산 계약과 창업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다. “내가 PD인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PD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라며 임하다 보니 창업 준비의 두근거림, 영업 첫날의 설렘을 느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개의 식당을 창업했던 덕분일까. ‘억지 서사’를 만들자면 이게 <윤식당>으로 연결된 것 같다. (웃음) 그동안 스튜디오보다는 외부 로케이션 예능을 많이 했는데 PD가 부동산 계약을 할 줄 안다는 게 꽤 중요하긴 하다. 특정 장소에 뿌리를 박고 집주인과 좋은 관계를 맺어 부동산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방송을 한다면, 행정적으로 수반되는 절차들을 이해한다는 게 필요하다.
- 직접 쓴 기획안이었던 <윤식당>으로 메인 연출 입봉을 했으니 꽤 일찍 기회를 얻은 셈이다. 심지어 그게 소위 ‘대박’이 났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의 티저와 ‘직진 순재’ 캐릭터가 이진주 PD의 손에서 탄생하는 등 선배들에게 연출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 편안하기보다는 어딘가에 쫓기거나 갈등이 생기거나 길을 잃어버리는 등 감정적인 동요가 생기는 편집을 좋아한다. 혹은 두근거리거나 설레는 감정을 보여주는 신을 만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영석 선배도 나한테 그런 장면을 많이 맡겼던 것 같다. <삼시세끼> <윤식당> 시리즈와 <환승연애> <환승연애2> 그리고 이번 <연애남매>까지 어떤 공간에 처음 들어오는 순간은 모두 내가 만들었다. 가장 메인에 배치하는 음악도 설레는 감정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 <윤식당>의 성공 이후 돌연 드라마 현장으로 갔다.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팀에는 어쩌다 가게 됐나. <엄마는 아이돌> <샤이니 스타트업– 빛돌기획> 같은 음악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것도 눈에 띈다.
= 몇주 동안 찍어온 영상을 편집실에서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계절도 바뀌었는데 나는 과거의 상황을 나노 단위로 뜯어보며 계속 몰입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드라마 현장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고 1년 만에 다시 예능으로 돌아오게 됐다. (웃음) <엄마는 아이돌>과 <샤이니 스타트업– 빛돌기획>은 다른 메인 PD 선배님을 서포트하러 간 거였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도 나는 친구 PD가 연출을 도와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 PD들이 메인 연출 입봉을 한 뒤 어떤 프로그램의 수장이 되면 계속해서 수장 역할만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인다. 내 프로그램을 했다가 다른 프로그램도 도와주고 또 좋은 기획이 있으면 내 프로그램을 하게 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권한이 커지고 책임도 져야 하는 것보다는 제한된 역할을 제안받는 것이 아직은 더 좋다.
- 나이를 먹은 후에도 데스크보다는 현장에 있고 싶나.
= 현장에 있지 않으면 답답할 것 같다. 데스크에 있으면서 실무자들에게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건 무척 힘들고 어렵지 않을까.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자신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짧은 영상이 소비의 중심이 됐다고들 하는 시대다. 동시에 매회 러닝타임이 2시간29분에 다다르는 <연애남매>도 사랑받는다. 어떻게 양극단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나.
= (나)영석 선배 밑에 조연출로 있을 때 (이)우정 작가님과 영석 선배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가 재미있는 유튜브 클립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편집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3~4분의 클립을 모으다 보면 2시간이 넘어가도 방송이 지루해지지 않는다.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산발적으로 벌어진다. 그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엮기보다는 각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툭툭툭 보여주는 식으로 편집하면 긴 방송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 관성처럼 TV를 보던 시청자층이 줄어들고 OTT 플랫폼이 투자하는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시대다. 흥행을 평가하는 지표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예능 연출자로서 하고 있는 고민은.
= 재미있는 영상은 유튜브에 많다. 우리가 유튜브 콘텐츠 같은 것을 만들어보자며 접근하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돈 주고 볼 만한 웰메이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제작진의 성의가 돋보이는 콘텐츠라는 게 화면에서 느껴져야 한다. 돈과 시간, 전문 인력을 들여서 만드는 만큼 그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
- PD로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노력이 있나. 요즘 유행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팔로업한다거나.
= 예전부터 유행하는 콘텐츠를 잘 따라갔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트렌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무리 노력한들 그게 될까. 대신 주변에 트렌디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말을 잘 들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내 의견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금 유행을 파악하는 것보다 시대적인 의식 변화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발언이 지금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 오히려 이런 게 PD가 가진 트렌디함이 될 수 있다.
- <연애남매>에서 출연자가 “몰카인 줄 알았다”고 말했는데 자막은 ‘깜짝 카메라’로 바뀌어 나갔던 거라든지.
= 주변에서 그런 의견을 하나하나 제시할 때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거대한 흐름에 내 안의 동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PD가 쫓아야 하는 트렌드가 있다면 인기 유튜브나 밈보다는 이런 변화들이다.
- 예능 작가나 PD들은 어딘가에 몰두해본 경험이 있는, 이른바 ‘덕후 DNA’가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 나도 있다. 어렸을 때 만화책을 많이 안 본 이유도 몇번 봤더니 ‘싸한’ 느낌이 들어서다. 한번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스스로 제어했다. 지금도 무언가를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출연자들을 ‘덕질’하고 있다. (웃음) 나는 우리 방송에 나오는 친구들을 나노 단위로 보면서 편집실에서 귀여워한다. 홈 비디오에 나오는 대사를 더블링 치듯 다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외우고 있다. 전반적으로 과몰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쪽 일을 많이 한다. 나도 가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신기하다. 십수년 동안 일을 했는데도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가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재밌다고 웃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운이 좋다.
- 앞으로 어떤 PD가 되고 싶나.
= ‘같이 일하고 싶은 PD’가 되고 싶다. <연애남매>를 대표해서 내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본 결정적인 장면이 다른 친구들의 손에서 나온 경우도 무척 많다. <연애남매>를 칭찬할 때 내 이름만 거론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후배 PD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가담하고 내 역할은 작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예능은 공동 창작이다. 좋은 방송을 만들고 흥행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인 PD 외의 사람들이 성장 없이 소진되기만 했다고 느낀다면 누가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하겠나. 결국 훌륭한 동료 및 후배들이 있어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리 같은 팀을 만들고 싶다. CJ ENM을 다닐 때 “쟤는 회사를 동아리처럼 다닌다”는 뒷담화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왜 흠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회사에 나오는 게 기다려질 만큼 일이 즐거운 조직을 만든다면 <연애남매> 이후에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