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다. 한국 예능프로그램 최초로 넷플릭스 전세계 TV쇼 10위권 안에 진입했던 <솔로지옥>은 시즌3 역시 공개 직후 전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대한민국 1위를 넘어 홍콩,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에서도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공개 이틀 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TV쇼 시청 순위 4위를 기록했다. 김재원 PD는 <솔로지옥>의 모든 시즌을 진두지휘한 연출자다. 2011년 JTBC PD 1기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 교양국과 예능국을 모두 거치며 <크라임씬2, 3> <비정상회담> <방구석 1열> 등의 조연출을 맡았고, <솔로지옥>을 기획해 메인 PD로 입봉했다. 시즌을 거듭하며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신선한 시도를 감행하는 김재원 PD를 만나 <솔로지옥>을 비롯한 비연예인 출연 리얼리티의 연출 비결을 물었다.
-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솔로지옥> 시즌3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세 시즌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소감은.
= 두 시즌 정도 하다 보면 시청자들도 포맷에 익숙해지다 보니 새로울 게 없는 쇼라는 인식이 생길 수도 있다. 여러 이유로 시즌3부터는 인기 추이가 꺾이는 게 일반적인데 <솔로지옥>은 시즌3를 가장 재밌게 본 분들이 꽤 많았다. 방영 당시 체감한 화제성의 농도가 짙었다. 전과 달리 주변 남자 동료들도 이번 시즌을 재밌게 본다며 촬영 비하인드를 굉장히 궁금해했다. 기존 시청층에 비해 확실히 저변이 넓어졌고 또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감사했다.
- <솔로지옥> 시즌2와 시즌3 사이에도 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나왔다. 특히 지난해 가을 <나는 솔로> 16기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즌3 방영을 기다리던 시점에 유사 프로그램의 성행이 어떻게 다가왔나.
= 좋았다. 시즌3를 한창 편집할 때 <나는 솔로> 16기가 인기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니 다들 ‘연애 프로그램의 탈을 쓴 사회 실험극’이라는 평을 하더라. 연애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무조건 설렘 위주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는 솔로> 16기가 보여줬다. 설렘 없이도 리얼리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한하다는 걸 그 프로그램이 증명해준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솔로지옥> 시즌3도 설렘은 덜해도 더 재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편집 과정에서 설렘의 요소가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설렘 이상의 다른 재미가 있다면 그대로 내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옥도가 두개인 설정이 이번 시즌의 주요 변화였다.
= 데이트 장르의 관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러브라인의 교차 여부다. 연애 예능 PD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이 뭔지 아나. 남자 5명, 여자 5명이 모였을 때 첫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각자 이상형을 찾아 다섯 커플이 한번에 탄생하는 상황이다. 둘이 첫눈에 반해 죽이 맞는 순간은 생각보다 수요가 덜하다. 그래서 최대한 참가자들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게 하고, 마지막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2개의 섬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 도착한 섬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해도 분리된 섬에서 또 다른 이와 데이트를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반대편 섬의 사람들은 전부 메기인 셈이다.
- 무인도를 찾아 나서는 로케이션 헌팅은 어떻게 진행되나.
= 헌팅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역 관광청의 협조도 구한다. 한국의 무인도는 대개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촬영이 어렵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스탭들까지 무인도에서 함께 지낼 순 없는 노릇이라 근처 인프라 접근이 용이한 섬이어야 한다. 겨울에 답사를 시작해야 행정 처리를 마무리해 여름에 촬영을 시작할 수 있다.
- 여성 출연자들이 방에서 나누는 신랄한 대화와 통찰이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재미였다.
= 그 대화를 라이브로 들으며 대화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관희씨를 걱정하게 됐다. 이러다 하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관희씨의 발언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충분히 관희씨에 관한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라 에피소드 자체의 개연성도 있었다. 누군가를 음해하려는 뒷담화가 아니라 여러 액션에 대한 격양된 리액션이 나오는 게 리얼리티의 묘미라고 판단했다.
- 섭외 및 사전 미팅 시 후보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뭔가.
= 인기 여부다. <솔로지옥>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오는 쇼여야 한다. 지원자들은 지금껏 내가 어느 정도의 인기가 있는지 몸소 데이터로 축적해온 이들이다. 첫만남에서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서 이 사람의 매력을 온전히 알 순 없으니 당신이 어떤 식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증명해달라는 질문을 자주 건넨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원자가 한국 사람 특유의 겸양의 미덕이 있어(웃음) “저 인기 없습니다” 하는 경우도 꽤 많다.
- 시즌3 남성 출연자는 최연장자와 최연소자가 띠동갑의 나이 차가 나기도 했다.
= 사실 우리도 20대 중후반 남성들을 찾고 싶었는데, 지금껏 한국에 나온 연애 리얼리티가 30개가 넘다 보니 타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은 분들을 모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구글 폼으로 지원자를 받으면 늘 여성 8, 남성 2의 비율로 지원자가 모인다. 전체 지원자 중 20% 정도가 그래도 남성들이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정도다.
- 이전 두 시즌의 경우 촬영 전 사전 검증을 위해 전 출연진이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거쳤다는 사실이 주목받았다.
= 이번 시즌에선 사전 상담뿐 아니라 촬영 이후 사후 상담도 지원했다. 특정 출연자가 프로그램 방영 이후 진료를 의뢰하면 상담을 통해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 비연예인 출연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조성하나.
= 물리적인 요소가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미친다. 카메라가 없을수록 자연스럽고, 스탭이 없을수록 자연스러워진다. 사실 4K 화면을 찍기 위해선 무조건 촬영감독이 상주하는 게 옳다. 그래도 천국도에선 촬영감독들에게 카메라만 놓고 나와달라고 전했다. 참가자들끼리 호텔 방에서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 출연자들은 아무리 각오가 돼 있더라도 매일 누군가의 마음이 변하는 걸 시시각각 지켜보아야 하는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그때 나오는 반응이 이성적이지 못해 논란을 빚기도 한다. 촬영 중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정신 건강은 어떻게 보호되나.
= 출연자당 담당 작가가 한명씩 배정된다. 출연자들은 카메라 밖 상황에 대해 담당 작가들과 계속 소통한다. 연애란 것이 좁게 보면 모든 일이 막중하게 느껴지지만 넓게 보면 별것 아니지 않나. 아무래도 서바이벌 상황에 놓일 때는 하루하루가 수치스럽지만 하루만 지나도 요동하는 감정이 정리되기 때문에 작가들이 이 지점을 참가자들에게 환기시켜준다. 객관화된 제3자가 감정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물론 작가들이 이들의 연애 상황에 개입하진 않는다.
- <유자식 상팔자> <슈퍼밴드> 등 조연출로 참여한 프로그램에서부터 비연예인 출연자들을 자주 접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을 듯한데.
= 선배 PD들에게 배운 부분이 있다. 비연예인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 그들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지에 대한 편집 관점의 문제 등 말이다. 편집실에서 시사를 진행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멘트가 있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호감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비연예인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청자가 그들을 호감으로 느끼는 포인트는 솔직함이다. 무얼 꾸미거나 더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 시즌1부터 스튜디오의 패널이 VCR을 보며 중계하는 포맷을 택했다. 처음부터 패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 시즌1부터 스튜디오 패널을 투입했던 이유는 자막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자막 없이 마스터의 오디오로만 진행되는 방송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패널이 예능의 자막처럼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패널들의 리액션에서 기인하는 유머도 중요하다. 홍진경씨나 규현씨는 톱 예능인이다. 지옥도의 상황이 그들의 시야에서 재치 있게 중계되면 더 재밌게 느껴진다. 이번 시즌은 패널이 없었다면 답답했을 것 같다. 답답한 상황도 패널들의 비판과 리액션으로 인해 해소되는 지점이 생긴다. 스튜디오 패널들에겐 대본도 없다. 날것 그대로 솔직한 반응을 보여달라고 디렉팅한다.
- 방마다 놓여 있던 책 <상위 1%의 압도적 대화법>은 어떤 이유로 가져다둔 소품인가.
= 소품 아니다. 이관희씨가 가져온 책이다. 출연자들이 지옥도에선 전자제품을 못 쓰다 보니 책을 가져와달라고 종종 말해둔다. 이관희씨가 그 책을 읽고 늘 대화를…. (웃음)
- 이번 시즌은 ‘이관희의 신부 찾기’란 부제를 붙일 정도로 그의 활약이 상당했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프로 농구선수임에도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 사전 인터뷰 때부터 톡톡 튀는 점이 재미있었다. 정말 한마디를 안 지는 참가자다. 모든 행로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관희지옥’이라고 이름이 붙을 만큼 이관희씨로 인해 쇼의 톤이 바뀌었다. 그가 모든 순간 진심으로 임할 거란 걸 짐작은 했지만… 정말 끝까지 그만큼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관희씨는 방송이 끝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심이다.
-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19/20>이라는 풋풋한 연애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솔로지옥>의 연출 경험이 <19/20>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 <솔로지옥> 시즌2 촬영이 끝나고 극단적으로 다른 방향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19/20>은 극한으로 설레고 풋풋하며 천천히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직구를 던지고 속도가 빠른 <솔로지옥> 시즌3를 만들었다. 지금도 연출작 중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으로 <19/20>을 꼽지만, 돌아보면 결국 작금의 트렌드는 <솔로지옥> 시즌3에 가까운 것 같다. 전작과 다른 길로 연출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비교할 바는 아니나 박찬욱 감독님도 매번 다음 작품에서 전과 다른 걸 보여주려 하시지 않나.
- 제작이 확정된 <솔로지옥> 시즌4에 대해 귀띔해준다면.
= 한창 섭외를 진행 중이고 큰 탈이 없다면 어김없이 올여름 촬영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시즌2와 시즌3의 장점을 포함한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 시즌2에서 덱스씨와 신슬기씨가 보여준 간질간질한 감성에 시즌3만의 스트레이트함을 포함하고 싶다.
- 시청자 입장에서 연애 리얼리티 속 사랑의 작대기가 오가는 출연자들을 보며 ‘나도 저랬지’ 싶은 공감과 ‘저러진 말아야지’ 하는 반면교사의 마음이 모두 든다. 연출자 입장에서도 연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는 일이지 않을까.
= 그렇다. 연애 예능이라고 해서 설렘만 선사할 순 없다. 오히려 연애 예능에서 가장 귀하게 다루어야 하는 감정은 거절이 가져오는 실망과 열패감이다.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모든 게 지나가면 결국 그 마음이 각자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 상처는 생각보다 금방 아물고, 합숙 기간 동안 새로운 사람과 잘돼 천국도로 가는 경우도 있으니 결국 연애 프로그램은 세상사는 알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시청자들도 자신이 바라는 조합의 남녀를 응원하다가도 그 속에서 곤란을 겪는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는 마음을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