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크라임씬 리턴즈’ 윤현준 PD, 내 팔자는 새로운 시도다
2024-03-22
글 : 정재현
사진 : 백종헌

※ <크라임씬 리턴즈>의 불가피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반갑다 친구야”라는 유행어를 만들고 유재석에게 첫 연예대상을 안겨준 <해피투게더 프렌즈>. 100회 넘게 방송된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 잊힌 가수들의 재기와 무명 가수들의 발굴을 도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하 <슈가맨>),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이하 <싱어게인>의 모든 시즌. 이효리표 예능의 새 장인 <효리네 민박>과 <캠핑클럽>까지. 윤현준 PD는 1997년 KBS 입사 이래 수많은 화제작을 만들었다. 미처 다 나열하지 못한 그의 연출작 중 굳건한 팬덤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은 프로그램은 <크라임씬> 시리즈다. 한국 추리 예능의 시작이었던 <크라임씬>은 시즌3가 종영된 2017년 이후에도 유튜브에서 끝없이 스트리밍되며 기존 팬덤과 신규 팬덤이 무한 증식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크라임씬>은 지난 2월 7년 만의 새 시즌 <크라임씬 리턴즈>(이하 <리턴즈>)로 돌아왔다. TV 방송국 JTBC가 아닌 OTT 플랫폼 티빙에서 공개됐고, JTBC를 떠난 윤현준 PD가 새로 차린 스튜디오 슬램이 제작한 작품이다. 7년의 공백과 플랫폼의 차이가 무색하게 <리턴즈>는 공개 첫주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를 기록했고, 티빙 톱20 내 <크라임씬3>와 <크라임씬2>까지 안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크라임씬3>와 <리턴즈> 사이 7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사이 OTT의 강성으로 미디어 업계 전반의 조류가 급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크라임씬>의 모든 에피소드를 숱하게 반복 시청한 팬덤의 기대도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도 있었을 듯한데.

= 세번의 <크라임씬>을 마칠 때마다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새롭게 잘 만들었다. 그런데 시청률이 안 나오고 TV 플랫폼과 안 맞는다”. <크라임씬>의 부활을 원한다는 팬덤의 반응을 접할 때마다 플랫폼이 없어 아쉬웠다. 우선 7년이 지나 다음 시즌이 나오는 전례가 없었다. 그래도 <크라임씬>이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웃음) 지금 다시 <리턴즈>를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OTT를 선택하면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크라임씬>에 환호했던 시청자들의 소비 방식에 소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팬을 유입해야 하는 고민도 컸다. OTT 또한 방송국과 유사하게 프로그램의 시청 시간, 해당 프로그램으로 인한 신규 가입자 수의 증폭 여부가 인기의 지표다. 기존 팬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신규 팬덤을 유입해야 했다. 그래서 출연진도 포맷도 절반은 그대로 두고 절반은 바꾸었다.

- <리턴즈>의 가장 큰 개편은 세계관의 탄생이다. 개별 에피소드가 파편화돼 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선선교와 풍무 그룹의 세계관이 있고 각 에피소드에 세계관의 복선이 조금씩 매설돼 있다.

= 이 방식이 더 어렵다. 제약도 많을뿐더러 세계관과의 연결 지점을 일일이 생각하다 보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생긴다. 하지만 7년 만에 돌아왔는데 전과 같을 순 없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다시 제작할 이유가 없다. 또한 JTBC의 <크라임씬>이 아닌 ‘리턴즈’라는 이름으로 론칭하는 티빙의 <크라임씬>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티빙측의 의사도 있었다.

- <크라임씬> 현장은 PD, 작가들 사이에서 보람과 악명이 동시에 높았다던데.

= 지금처럼 통째로 사전제작을 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동이 틀 때까지 회의를 하면 이야기가 절반 정도 완성된다. 그러면 오전에 촬영 현장으로 가며 나머지 절반을 짠다. 이걸 2주에 한번씩 세 시즌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엔 프로그램이 성립하려면 최소 12회차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끝까지 일을 하니 후배들도 쉴 수가 없었다.

- 1년의 사전제작을 거친 <리턴즈>의 프로덕션 과정은 전에 비해 수월했나.

= 혹자는 “전엔 부족한 와중에 12부작을 만들었으면서 이번엔 시간도 예산도 많은데 왜 5개만 만들었냐”고 타박한다. 하지만 7년 전과 달리 물가가 올라 그만큼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엔 5개의 에피소드만 만들겠다고 티빙측에 먼저 동의를 구했다. 지난해 2월에 모여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엔 2월에 프로덕션을 시작하니 8월 녹화 시작 전까지 에피소드 5개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전엔 1주일에 한편도 만들었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김없이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녹화에 들어갔다. (웃음)

- 첫화 <비행기 살인사건>부터 이번 시즌이 미술에 특히 공을 들였음이 표가 난다.

= 비행기 세트는 돈과 품이 가장 많이 들었다. 실제 비행기를 세트에 놓고 싶었다. 수소문해보니 비행기의 기자재를 보관 중인 사람이 있었다. 그분에게 오래된 실제 비행기 좌석을 사온 다음 세트를 만들어갔다. <고시원 살인사건>은 3층 세트를 짓고 싶었다. 실제 3층의 높이를 만들 순 없지만 3단 세트를 만들려 노력했다. 윤진희 미술감독을 비롯한 <크라임씬> 미술팀이 나를 만날 때마다 <크라임씬>을 언제 또 하냐고 묻곤 했다. 7년 전만 해도 돈도 시간도 부족해 못했던 것들을 이번엔 원없이 해냈다.

- 단서를 깔아놓고도 플레이어들이 못 찾는 경우가 있지 않나.

= 꼭 찾아야 하는 단서가 있다면 시간을 줘서 어떻게든 찾게 만드는 때도 있었다.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촬영을 마무리한 후 편집을 한다. 제작진과 플레이어간 암묵적 싸움이랄까. <고시원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원 설정에 의하면 황슬우가 안래퍼(안유진)에게, <쇼미더머니> PD가 파티에 왔다고 하며 피로나민씨에 관장약을 몰래 타 먹인다. 안래퍼는 그걸 먹고 춤을 추다 그만 실수하는 장면을 재연배우를 섭외해 촬영까지 다 해두었다. 그런데 정작 플레이어들이 이 단서를 못 찾아서 해당 소스를 방송에 사용할 수 없었다.

- 편집의 순서나 속도를 플레이어들의 추리 순서에 맞추는 편인가.

= 웬만하면 맞춘다. 하지만 플롯을 조정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거나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다면 편집을 통해 재구성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찍힌 내용이 왜곡되진 않는다.

- <리턴즈>에 새로 합류한 키, 주현영, 안유진씨의 경우 기존 플레이어였던 장진, 박지윤, 장동민씨와 20살가량 차이가 난다. 출연진 6명의 성비도 딱 3:3이다. <슈가맨> 연출 경력이 있어서인지 세대와 성별의 조합을 출연진 구성에 주요하게 고려한 인상이다.

= 어떤 프로그램이든 어린 친구도 필요하고, 나이 많은 출연진도 필요하다. 각 구성원이 가진 지식의 정도가 성별과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가령 키씨가 테트로도톡신을 알아낸 에피소드의 경우 대본이 아닌 플레이어 본인의 상식에 의해 알아낸 것이었다.

- <법원 살인사건> 에피소드에서 안기자로 분한 안유진씨는 박증인(박지윤)이 아무리 무섭게 다그쳐도 눈 하나 깜박 않고 모든 공격을 받아치는 담대함이 돋보였다.

= 신규 크루들에게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은 플레이어라고 해서 굽히고 들어가진 말아달라”고 주지했다. 세트 밖 실제 나이나 지위는 잊고 현장과 역할에 깊이 몰입해주길 당부했다.

- 이번 시즌 가장 화제를 모은 서사는 <교주 살인사건>의 주모던(주현영)과 박기생(박지윤)의 멜로였다. 주모던의 “내가 죽이려고 했어, 너 사랑하니까”라는 대사는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내죽너사’라는 준말이 생길 정도로 이슈가 됐다.

= 현영씨와 지윤씨가 열심히 캐릭터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만든 것이다. 촬영본을 보니 두 플레이어가 연인이라는 설정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대화도 주고받고 브리핑 중에도 서로에게 눈빛을 쏘고 있더라. 내죽너사가 대본에 있었을 리 없지 않나. 현영씨가 진심으로 몰입해 그 대사를 직접 만든 것이다. 정작 지윤씨는 파워 T라(웃음) 범인을 어떻게든 수색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주모던을 의심했던 것 같다. ‘널 사랑하지만 네가 범인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재미가 있었다.

-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직관적 이름은 <크라임씬>만의 정체성인가.

= 그렇다. 작명이 가장 재밌다. 이게 쉬워 보여도 캐릭터별로 이름 후보가 꽤 많다. 그중 시청자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이름을 고르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은 한다. “해외 시청자들이 <크라임씬>을 보면 이 이름을 국내 시청자들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넷플릭스의 유기환 매니저에 의하면 한국어로 내내 말싸움을 하는 <데블스 플랜>도 해외에서 전부 통했다고 하더라.

- 1997년 KBS 입사 후 첫 입봉작이 <해피투게더> 시즌1의 ‘쟁반 노래방’인가.

= 아니다. 첫 입봉작은 <꿈의 피라미드>였다. 당시 청년 실업률이 심각해 청년을 취업시켜주는 공익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유수의 기업에 당시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었다. 여전히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내가 뽑은 건 아니지만 반갑다. 이후 만든 게 <해피투게더 프렌즈>다. <해피투게더>의 인기 이후 유재석씨와 또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그때 <해피투게더 프렌즈>의 기획안을 써 유재석씨에게 제안했다. 아직도 유재석씨가 이야기한다. 기획안을 보자마자 “이건 된다”라는 확신이 가장 들었던 프로그램이 <해피투게더 프렌즈>라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생기며 김시규 전 JTBC 스튜디오 대표의 제안으로 JTBC로 이적해 열심히 일했다. 이후 JTBC에 잔류하는 게 나한테 좋은 일일지 고민하던 때, 예능도 드라마 시스템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당시 나를 따라 함께 퇴사한 PD과 스튜디오 슬램을 차렸다. 거기서 <싱어게인>도 만들고 <리턴즈>도 만들었다.

-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비롯해 그간 연출한 프로그램엔 MC들과 출연진간의 토크가 주로 포함됐다. 토크쇼 포맷이 한동안 TV에서 부재하다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토크쇼를 표방한 콘텐츠가 나오는 최근의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나.

= 유튜브와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TV에 비해 접근성도 좋고 알고리즘도 무시할 수 없다. 기사도 TV 방송보다 유튜브 채널 기사가 훨씬 많이 나는 상황이지 않나. 그래도 가끔은 토크쇼의 부활을 생각한다. 말초성에 집중한 매체인 유튜브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으니, 의미 있는 토크쇼를 다시 만들고 싶다. 하지만 토크쇼 포맷이 더이상 새롭기는 어려워 고민 중이다.

- 오늘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새로움’이다.

= 처음 KBS에 입사했을 때 몇몇 작가들이 당시 일본에서 한창 만드는 쇼 프로그램을 참고해야 한다는 이야길 많이 했다. 그런데 그걸 참고하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 어떤 일본 프로그램도 지금껏 보지 않았다. 무얼 참고하는 순간 비슷한 게 나오기 마련이거든. 이건 PD로서 내 팔자다. 요즘 어떤 프로그램이 잘나간다고 해서 차용하면 일정 정도의 반응이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너무 쉬운 길이다. 음악 프로그램이 많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도 <싱어게인>은 또는 <슈가맨>은 다르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해주는 게 좋다.

- <크라임씬>을 두 차례 함께한 전효진 작가가 <리턴즈>에 다시 합류했다.

= 전효진 작가와 시즌3도 함께하고 싶었다. 당시 전효진 작가가 드라마를 준비 중이어서 작가가 아닌 크리에이터 롤로 들어올 계획이었는데, <크라임씬>은 일정 부문만 관여한다는 게 쉽지 않아 결국 합류가 불발됐다. <리턴즈>를 준비하며 전효진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 작가가 합류 의사를 밝혔다. <크라임씬>을 거친 스탭들은 모두 다시 <크라임씬>을 하길 바랐다. 그리고 새로 모은 작가진도 <크라임씬>의 팬이었다. 처음 만난 작가들이 나조차 잊고 있던 <크라임씬>의 여러 내용들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리턴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더 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 애초 계획은 에피소드 마지막의 ‘사건의 전말’을 일러스트가 아닌 재연드라마로 찍으려 했다. 그런데 예산 문제로 진행할 수 없었다. 여전히 넘어야 할 허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들 함께 넘으며 지금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출연진들 또한 만만치 않은 허들을 넘었을 것이다. 처음 합류한 세 출연진(키, 주현영, 안유진)은 얼마나 힘들었겠나. 아무리 대본을 숙지해도 막상 현장에 오면 어떻게 스스로를 방어하고 또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고, 연기에 몰입하느라 재미를 놓치면 “예능은 안 한다”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크라임씬>을 거친 선배들이 어떻게 욕을 먹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부담을 느끼는 출연진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한달 전 첫회 <공항 살인사건>의 대본을 미리 보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턴즈>를 만드는 과정도 몹시 힘들었다. 무얼 하나 만들어도 이야기에 버그의 유무를 확인하며 끝없는 수정이 이어졌다. 이전보다 노동환경은 나아졌지만 이번 <리턴즈>도 새벽같이 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격무가 지난 2월부터 녹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계속됐다.

- 버그라 함은 스토리의 논리와 관련 있는 것인가.

= 그렇다. 대본을 검수하다 보면 서사 내적인 논리가 안 맞거나 캐릭터끼리 맞붙는 과정에서 상충하는 요소가 계속 발견된다. 버그는 촬영 후 편집실에서 발견될 때도 심지어 최종 상영본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전 에피소드가 공개된 지금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 “어디까지 쓰레기가 나와야 끝나니”라는 박지윤씨의 푸념처럼, <크라임씬>의 에피소드는 <게임의 규칙> <고스포드 파크> 등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되는 후더닛 무비의 라인을 따른다. 이번 시즌의 경우 세트 전체를 잡는 부감숏에선 <도그빌>의 느낌마저 난다.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나.

= 작가들이 스토리를 구상할 때 많은 영화에서 본 요소를 차용할 순 있지만, 영화 자체를 모티브로 해 에피소드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크라임씬>의 스토리를 만들 땐 제목 그대로 범죄 현장 자체를 특정하며 시작한다. 고시원일지, 공항일지, 회사일지 등을 먼저 정한 다음 범인을 정하고 나머지 용의자를 이어 설정한다. 여기서부터 스토리라인을 짜가는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바꾼다.

- <리턴즈>의 경우 모처럼 CP의 롤이 아닌 PD의 롤로 크레딧에 올랐다.

= 지금껏 CP에 이름을 올렸어도 연출에 준하는 역할을 한 작품도 거의 관여를 하지 않은 작품도 있다. 예전보다 후배 PD들의 입봉이 늦어지는 현실에 후배가 연출하는데 나도 연출자로 크레딧을 올리면 이상해 CP로 자리할 때도 있다. 그리고 요즘 CP가 예전처럼 데스크에 앉아 지시만 할 수도 없다. 이번 <리턴즈>의 경우 명료했다. 티빙측에서 지금껏 <크라임씬>을 만든 윤현준이 직접 연출하는 걸 드러내길 바랐고, 나 역시 연출로 자리할 생각이었다. 사실 어떤 크레딧으로 올라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 전체 세계관하에서 어떤 순서로 이야기를 짜나갔나.

= 1화 <공항 살인사건>을 쓴 후 4화 <교주 살인사건>을 이어 만들었다. 1화는 전체 시즌의 시작이라 먼저 짜야 했다. 풍무 그룹과 피로나민씨 등 <리턴즈>에 반복되는 단서의 떡밥을 뿌리는 회차이기도 했다. 4화는 전체 세계관의 근원인 스토리인 터라 이 이야기를 먼저 만든 후 나머지 2, 3, 5화를 만들어야 했다.

- 이번 시즌엔 변사체로 무려 더미가 등장한다. 인형을 놓았던 이전 시즌에 비하면 큰 변화다.

= 시체만은 정말 리얼하게 가고 싶었다. 이전 시즌에서 인형 하나 두고 하려니 리얼함이 살지 않았거든. 막상 실제 더미를 쓰니 이전의 쌈마이 감성이 그립다는 분들도 계시지만(웃음) 시체가 말하려는 여러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선 더미가 제격이었다.

- 단서를 깔아놓고도 플레이어들이 못 찾는 경우가 있지 않나.

= 4화 <교주 살인사건> 당시 장의사(장동민)가 확실한 범인인데 키맹신(키)이 범인으로 지목된 건에 대해, 특정 플레이어가 연기를 잘못해 벌어진 일이라 비난받았다. 사실 그 에피소드의 결정적인 단서는 장의사의 연구일지였다. 신교주가 장의사를 제물로 사용하려 하니 장의사가 외려 신교주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 자기가 선험적으로 아는 맥각을 활용해 신교주에게 불을 붙인다는 이야기가 적힌 일지다. 제작진 입장에선 이 일기가 너무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렇다고 이걸 숨기자니 플레이어들이 추리도 어려워지고, 결정적 단서랍시고 뒤늦게 내놓는 것도 원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박지윤씨가 처음 이 단서를 찾았을 땐 장의사가 범인으로 몰렸다. 그러다 다른 단서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우리의 의도대로 장의사와 함께 키맹신이 유력한 범인으로 몰렸다. 시청자들에게도 내심 제작진과 플레이어간의 싸움을 이 에피소드를 통해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 <뮤직뱅크> <슈가맨> <싱어게인>까지 음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지금까지 연출해왔다. <캠핑클럽>의 경우도 마지막 에피소드엔 핑클 멤버들의 공연이 포함돼 있었다.

= 딱히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다. 당시 <뮤직뱅크>의 경우 소위 ‘싹수’가 보이는 PD들이 관계를 넓혀 차기작 연출에 도움이 되라며 1년씩 거쳐가는 코스였다. 나는 1년 반을 했다. <슈가맨>도 버라이어티한 구성에 더 마음이 갔다. 작가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세대에 따라 아는 노래가 다른 점이 재밌어 출발한 프로젝트다. 본격적인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싱어게인>이 유일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취향은 아니었지만 한번은 연출해보고 싶었다. 천편일률적인 오디션 중에서 새로운 걸 해보려 고민하다 무명 가수들이 나오는 포맷이 생각났고, 그들에게 번호를 붙이는 시스템이 떠올랐다. 이름 대신 번호로 나오면 시청자들이 오히려 그들을 찾아볼 것 같았다. <한끼줍쇼> <오버 더 톱> 등 사실 음악과 무관한 방송을 연출한 적이 훨씬 많다. 프로그램을 가리기보다 새로운 걸 계속 찾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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