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 넷플릭스
남성 임신부. 붙여 쓸 수 없을 듯한 두 단어가 합쳐진 세계가 펼쳐진다. 광고회사에 다니며 일과 일상 모두를 자신만만하게 꾸려가던 히야마 켄타로는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하게 된다. 상대는 비혼을 지향하는 여성 아키. 아키는 히야마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내 아이가 맞냐”는 말부터 내뱉는다. 그 자리에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던 임신과 출산이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시리즈는 남성의 생물학적 전제를 전복함으로써 여성의 현실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래서 ‘남자다운 임신부’를 꿈꾸는 남성 임신부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여자답게’, ‘남자답게’ 같은 수사 속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비추니 말이다.
메기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외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남녀의 섹스 장면을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이 유포된다. 그때부터 엑스레이에 ‘찍힌 자’를 찾아나서는 병원 사람들의 탐정 놀이가 시작된다.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과 남자 친구 성원이 아닐까 고민하던 윤영은 사직서까지 써보지만, 막상 휴직을 권고받자 퇴사를 거부한다. 한 환자가 키우는 메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는 윤영과 성원, 병원의 부원장과 환자들의 입장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이야기의 시발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영화 내내 인물들은 서로에 대해 추측하고, 소문내고, 오해한다. 그렇게 빠져버린 관계의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직접 질문하고 믿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재기발랄한 소재, 프레임 안에 자유롭게 배치된 피사체, 경쾌한 음악이 이옥섭 감독 특유의 유머에 힘을 싣는다.
유포리아 시즌1 / 웨이브
미국의 Z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하이틴 드라마. 이 한마디로 <유포리아>를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사랑의 설렘이나 풋풋한 우정에 노스텔지어를 한 방울 떨어트린 하이틴물이 아니다. 성적 정체성이 혼란스럽고, 사랑에 빠진 상대를 믿지 못해 불안해하며, 사회적으로 정의된 자아와 내밀한 자아 사이에서 길항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약과 섹스,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10대의 일상에는 안정된 미래를 설계할 여유가 없다. 그보다 상시적인 폭력을 경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마약에 중독된 루, 트랜스젠더인 줄스, 분노 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네이트, 여성 혐오적인 소문에 둘러싸인 캐시, 애정 결핍에 갇힌 매디, 외모로 인해 자존감이 낮은 캣. 이들의 거칠고 우울한 고민에 감각적인 이미지와 음악을 유려하게 더해 공감을 극대화했다.
1917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외
1917년 4월6일, 영국군 일병인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1차 세계대전의 복판인 서부전선을 가로지를 것을 명령받는다. 통신수단이 단절된 상황에서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샘 멘데스 감독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령병으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경험담을 각본에 녹여내 전쟁의 참상을 재현하고자 했다. 분절된 장면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게 하는 원 컨티뉴어스 숏을 활용하고, 작품 전체를 원숏처럼 편집해 관객의 집중을 그러모았다. 그 효과로 관객은 마치 게임 속 유저가 된 것처럼 참호전의 진창을 뛰어다니는 일병들에 이입하게 된다. 전쟁을 스펙터클화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전쟁의 재현 방식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