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아직) 칸이다. 이틀 뒤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의 수상 결과가 나오고 3일 뒤면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겠지. 아찔하게 행복하고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정확히 10분 전엔 <토리와 로키타>로 칸을 찾은 다르덴 형제 감독을 인터뷰했는데, 인자한 미소의 거장들 앞에서 감정이 벅찼던 것도 잠시, 잰걸음으로 프레스센터에 들어와 노트북을 켠다. 정확히 1시간20분 뒤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전세계 최초로 칸에서 상영된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1시간 만에 이 글을 마감하고 영화를 보러 들어가야 한다.
올해 칸영화제가 유독 바쁘고 재밌는 이유는 한국영화의 선전 때문이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받은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엄청난 화력을 장착한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정재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얘기했듯 거의 20분 만에 등장하는 액션 신은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몰아붙인다. 함께 작업한 모든 이가 이정재 감독의 집념과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 치열한 과정이 좋은 결과로까지 이어져 영화를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행복한 경험을 하고 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벅차게 좋았다. 풍부한 뉘앙스로 관객을 영화의 레이어 속으로 힘껏 끌어당기는 <헤어질 결심>은 우리가 왜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헤어질 결심>을 본 날 밤엔 올해 칸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상영이 있었다. 크로넌버그의 영화를 보고 났더니 <헤어질 결심>이 더 좋아졌다. 어제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인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상영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임수연 기자는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충혈된 눈으로 크루아제트 거리를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브로커>가 남았다. 정확히 43분 뒤에 영화가 시작된다. 한국 배우들과의 협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계에 어떤 무늬를 새겼는지 확인하러 갈 시간이다. 칸에서 본 모든 영화들에 고마움을 전한다. 칸에서 참 많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