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브로커' 이지은 "아이유의 계획되지 않은 세계"
2022-06-08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이름 아이유(IU)는 배우 이지은을 바라볼 때도 새삼스레 정확한 포부로 다가온다. 그는 본능과 분석 중 어떤 쪽에 더 의지하냐는 질문에 “연기에 경험으로부터 얻은 감각을 많이 투영하는 편이라 아직 내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무엇이라면 소화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브로커>가 끝난 뒤 연기로나마 잠시 살아본 미혼모들의 현실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자기 말마따나 이지은은 세계와의 공감대를 삶의 첨탑처럼 올려다보며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는 누군가와 연결되려면 애써 자기를 비범하게 구별짓는 것보다 자신의 평범함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데뷔 15년차, 대중가수로서는 더이상의 정점이 없고 배우로서는 첫 주연작으로 칸 레드 카펫을 밟은 30대의 이지은에게서 여전히 가끔 에고를 털썩 내려놓은 것 같은 홀연한 분위기가 나는 건 어쩌면 신기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드문 재능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사로잡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리고 이번 신작 <브로커>에서 배우의 쓸쓸한 클로즈업이 등장할 때마다 꼭 어둠 속에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진 듯한 느낌을 준다.

-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드라마, 영화 작업을 할 때 모두 시기별로 뚜렷한 지향점을 설정한 뒤 이를 돌파해 나간다는 인상이다. 이번엔 어떤 동력으로 움직여 <브로커>를 선택했나.

= 아주 단순하게 축약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어서. 좋아하는 영화들을 잔뜩 만든 분인데 그런 대단한 감독님과의 작업 기회가 왔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내가 거의 마지막에 캐스팅된 터라 선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의 기대도 컸다. 큰 공부가 될 게 당연하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나의 아저씨> 속 모습에 반해 캐스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가족이 남긴 빚으로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젊은 가장 지안과 범죄 혐의 속에서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맡기는 미혼모 소영은 어찌 보면 비슷한 어둠을 끌어안은 캐릭터인 것 같다.

= 그래서인지 감독님도 작업 초반엔 주로 지안과의 어떤 대치점을 놓고 소영에 관해 설명해주셨다. 다른 점은, 소영은 지안보다 좀더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무감한 표정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소영에게서 자기를 감추려는 사람의 면모를 읽었다. 방어기제가 굉장히 센 사람이라고 해석해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길 나눴다. 그렇게 영화 초반부까지 소영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 2018년 제32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아티스트들이 “내색하지 않으려다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지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전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나의 아저씨> 속 지안과 비교해 소영은 확실히 자기 욕구에 대해 잘 내색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

= 염세적이고 방어적인 사람, 그런데 잘 못 참아서 어쩔 수 없이 내색도 잘하는 사람. (웃음) 그동안 드라마를 하면서 내색을 잘 못하는 배역들을 꽤 만났다. 반면 소영은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마음에 안 들면 꼭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 하는 사람이더라. “그런 쓸데없는 말을 꼭 해야 돼?” 같은. 마음에 무언가 떠오르면 한 마디라도 던져야지 직성이 풀리는 친구구나, 너무 많은 것을 감내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하니 차라리 약간은 다행스러웠다.

- 아이를 버린 뒤 브로커 일당과 동행하는 미혼모라는 캐릭터 설정이 굵직해 고유한 성격 묘사에까지 미묘한 디테일을 살려내기엔 어려운 캐릭터일 수 있다. 고민한 지점은 없었나.

= 소영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애틋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건드리기가 무서웠던 건 사실이다. 계획이란 걸 전혀 가져본 적 없이 살아온 소영은 나라는 사람과는 참 달랐다. 하루하루 내키는 대로 용감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갑자기 자기가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생겨버렸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책임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 사람이 겪는 변화는 어떤 것일지 헤아리는 동안 마음 소영의 미래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캐릭터의 디테일을 살피는 동안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을 오갔다.

- 스모키한 분장, 바싹 마른 긴 염색모로 등장한다. 무대에 설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일도 프로듀서로서 중책일 텐데, 배우로 일할 땐 인물의 외양을 구현하는 작업에 얼마나 관여하나.

= 프로덕션 초기 미팅 단계에서부터 분장, 의상팀 실장님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들려주셨고 그 아이디어들이 빠짐없이 마음에 들었다. <브로커>를 작업할 때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부분은 거의 없었다.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다 사용하고 싶어요’ , 그렇게 말씀드렸다. 마침 2021년 정규 앨범(5집 《LILAC》) 직후에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라 스타일링으로 머리가 많이 상해 있었다. <브로커>의 헤어는 얼룩덜룩한 탈색된 내 긴 머리에 노란색 헤어 피스만 조금 더한 결과다. 한 가지 신경 쓰였던 건 앨범 활동 중에 의도와 달리 살이 너무 많이 빠져버려서 지금 상태도 괜찮으시겠냐고 감독님께 여쭤볼 정도였다. 감독님은 소영은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니까 야윈 모습도 괜찮다고 했는데, 다만 소영이 극중 인물들과 관계가 단단해지고 생기를 되찾는 지점부터는 좀더 잘 먹고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귀띔하셨다. (웃음)

- 소영이 상현, 동수 일행의 진심을 엿본 뒤 뒤늦게 자기 본명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겉보기엔 대수롭지 않은 순간이지만 갑옷을 둘렀던 캐릭터가 스스로를 무장 해제시키는 값진 모멘텀이다. 배우 이지은에게도 <브로커> 현장에서 그런 순간이 있었나.

= 소영이 어느 순간 무거운 스모키 메이크업을 싹 지워내는 장면이 있다. 이름을 밝히고, 화장까지 벗겨내 제 얼굴을 보이는 거다. 화장을 말끔히 지우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촬영 초반에는 소영처럼 나도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뒤부터 점차 달라진 것 같다.

“네 안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도 좋아.”

-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장편영화의 첫 주연을 맡은 데다가 사용 언어가 다른 해외의 유명 감독과 일하게 됐다. 감독, 동료 배우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새롭게 다가온 것들이 있었나.

= 원체 현장에서는 말을 많이 안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선배님들이 내게 뭔가 물어보면 인사와 대답이라도 제발 잘하자’라고 다짐했을 정도로. (웃음) 촬영장에서 재밌게 놀다가 자칫 방심해 내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못하면 안된다는 긴장감 때문이다. 그런데 송강호 선배가 먼저 농담도 해주시고 강동원 선배도 과묵하지만 한두 마디 툭툭 건네는 말들로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두분 다 촬영 때나 휴식 때나 상현과 동수 그 자체였다. 한편 고레에다 감독님은 예상보다 더 배우의 해석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편이셨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소영에 대해 많이 묻고 듣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래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반대로 무척 값진 순간도 있었다.

- 그 값진 순간이라 함은 배우에게 주어진 자유가 영화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체감한 때일까.

= 소영이 화를 내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께서 “네 안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도 좋아” 하는 식으로 내 감정과 언어를 믿고 열어주셨다. 나는 은근히 겁도 많고 대본에 충실하자는 쪽이라 웬만해선 애드리브를 안하려 한다. 그런데 <브로커> 현장은 배우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테이크마다 조금씩 다르게 가는 시도가 있었고, 감독님이 그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할 때 마다 기분이 굉장했다. 날씨나 로케이션에 따라 촬영 콘티도 달라졌는데, 놀랍게도 전체 일정상으로는 하루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기한에 맞추어 끝이 났다. 신기해서 선배 배우, 스탭들에게 물어보니 이 현장을 디폴트로 생각하고 다른 현장에 가면 안된다고 하시더라.

- 이야길 들어보니 <브로커>의 현장은 촬영 프로세스가 꽤 유연했던 것 같다.

= 내가 새삼 신기한 구경을 하고 있다고 느낀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홍경표 촬영감독님 두 분 모두 빛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름메이커란 사실을 직접 목격할 때였다. 낮 신에서는 대부분 자연광 중심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두 분이 나란히 해를 기다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가 그 차이를 아주 잘 알지는 못하니까, 지시대로 기다리다가 ‘지금이다!’ 하면 얼른 화면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식이었다. ‘음, 지금은 빛이 안 좋으니까 좀 더 기다려봅시다’ 하고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두 분의 모습이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 베테랑 홍경표 촬영감독의 호흡은 어땠나. 홍 촬영감독에게도 아이유는 낯선 피사체였을텐데.

= 어느 한 장면에서 홍경표 촬영 감독님이 되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카메라가 아주 가까이 들어와서 창밖을 내다보던 소영이 한숨 쉬는 얼굴을 담을 때였다. 운좋게 한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는데,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템포가 아주 좋았다”라고 음악적으로 표현하셨다. 촬영 초반이라 아직 현장에 한창 적응 중인 시기여서 촬영감독님이 만족스럽게 칭찬해주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로드무비의 평화, 윷놀이의 충격

- <브로커> 이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배우 이지은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는 감독이었나.

= <어느 가족> <아무도 모른다>도 너무 좋아하지만 한 작품만 꼽으라면 <원더풀 라이프>다.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저기’의 이야기인데 ‘여기’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그런 신선함이 너무 좋더라고! (<원더풀 라이프>는 망자들이 생전에 추억을 단 한가지만 골라 영화로 남기는 과정의 이야기를 일상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낸다-편집자) 이렇게 인간적인 판타지가 또 있을까 싶었다.

- 브로커 일당이 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횡단하는, 동선이 긴 로드무비다.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과 이동 거리를 요구하는 합숙 촬영은 어땠나.

= 해외 여행은 물론 스케줄로 외국을 나가도 가급적 금방 돌아오려고 할 정도로 집을 오래 떠나 있지 못하는 편이다. 한번은 미국 스케줄이 있었는데 무리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있다. (웃음) <브로커> 촬영 때도 역시나 초반에 잠자리를 설쳤다. 그런데 집 떠나 계속 타지를 전전하니까 어느 순간 잡생각이 안 들어서 오히려 평화로워지는 타이밍이 찾아오더라. 숙소에 있다가 촬영 갔다 오면 해가 져 있고,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 평소보다 좀 일찍 자는 식으로 생활이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아, 그리고 휴차 때 배우들끼리 모여서 윷놀이를 하는 모습은 처음에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스타들이 내 앞에서 윷놀이를 하다니! (웃음) 영화 현장의 단체 생활 분위기를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윷놀이를 잘 하지는 못해서 주로 지켜보는 쪽이었지만 금방 함께 즐기게 됐다.

- 오늘 들려준 현장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항상 한 발짝 떨어져서 풍경을 관조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주변을 기민하게 관찰한 다음 빠르게 적응하는 재능을 엿봤다.

= 맞다.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다’에서 ‘편하다’로 가는 기간이 남들보다 짧은 게 아닌가 싶다. 적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기보다 내가 편해지는 게 여러모로 스스로에게 좋다고 느낀다. 어떤 면에선 남들보다 어색한 걸 잘 견디는 편인 것 같다.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말 없는 공백,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시간 같은 게 사실은 좀 재미있다.

- 그런 순간을 오롯이 느낄 때 아이유 안에서 노래 가사들이 뭉글뭉글 피어 나는 게 아닌가.

=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웃음) 관찰하는 걸 워낙에 재밌어한다. 어색함이란 건 대체로 아주 짧고 귀한 순간이니까 나 스스로가 그걸 잘 알아차린다면 좋은 일 아닐까.

- 가수로서는 사실상 방송과 공연, 앨범 작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드라마 작업에서는 그보다 단출하게 주어진 배우의 몫에만 집중할 수 있어 양쪽의 일에서 얻는 충족감의 형태가 다를 것 같다.

= 영화 작업은 내게 어떤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준다. 물론 가수일 때도 스태프분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팀 단위로 움직이지만 영화는 그 감각이 확실히 다르다. 연기하는 일이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주어진 일을 그저 성실히 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고, 나는 그 임무만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마음 놓이는 일인지! 물론 내 몫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부담이 더 클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주변의 의견을 믿고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된다.

-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을 선택할 땐 주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나.

= 회사로 들어오는 제안들이 수적으로는 가장 많지만, 지금까지는 우연히 개인적으로 소개받은 작품을 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요새는 같이 일하는 회사 팀원들이 조금 더 수월하도록 팀워크에 필요한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좋다고 사적인 채널로 일을 성사시켜 버리면 결국 그 이후에 일을 수습하고 매니징하는 회사 인력들의 노고가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팀원들이 무언가 요구하거나 눈치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내색 않으니 혼자서 뒤늦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더더욱 크루들과 최대한 많이 상의하고 프로세스를 지켜가며 일을 벌리려고 한다. (웃음)

작품을 하면서 그렇게 배운다

- 성공한 대중가수로서의 밝고 주류적인 이미지 한편에는 자기 내면에 잘 접속하는 ‘밤편지’ 쓰는 사람의 면모가 있다. 지금의 아이유-이지은을 대중이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이게 된 건 그런 복합성과 깊이 덕분이 아닐까.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나.

= 우리가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게 내게는 1번인 것 같다. 나의 무언가를 내보일 때는 그게 무엇이든 어떤 형태이든 우리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라서이다. 사실 ‘그냥 이지은’은 참 일반적이고 특이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나를 좀 더 돋보이게 만드는 개성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한 시기도 있었다. 연예계에는 워낙 화려하고 특출난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내가 남들과 아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무언가 쓰고 표현한 결과물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 스타로서의 아우라가 확고하기 때문에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존재감이 크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바꿔 말하면 인디 영화, 비주류 캐릭터에 뜻이 있을 경우 그동안의 외적 성취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고충도 상상해보게 되는데.

= 무대에서 아무리 화려해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충분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배우 이지은이 조금 조용하고 퍽퍽한 인간, 자기 고뇌가 있는 인간을 연기할 때 더 자연스럽게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 역시 그게 더 편하다. 그리고 팬분들은 이미 충분히 나라는 사람에 관해 의아해하고 있다. 내 사복 패션을 보고 “대체 저 옷은 왜 고른거야?” 하고서...(웃음)

- 얼마 전 생일(5월16일)에 미혼모협회에 기부를 했다. 꾸준히 기부해오는 동안 기부처도 매번 세심히 선정하는 것으로 안다.

= 전에도 미혼모협회에 기부하긴 했지만 이번 생일엔 <브로커>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다. 소영을 연기하면서 나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많았다. 베이비박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왜 우성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전보다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미혼모 가정, 편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야 함을 느꼈고 실정이 널리 공유되어야 할 필요성도 체감했다. 작품을 하면서 그렇게 배운다. <나의 아저씨> 때는 손숙 선배님이 연기한 지안의 할머니를 통해 청각 장애인의 실질적인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 첫 장편 주연작 <브로커>에 이어 올해 이병헌 감독의 <드림>도 앞두고 있으니 30대를 시작하면서 영화 커리어도 본격적으로 펼치는 셈이다. 5집《LILAC》으로 20대에 산뜻한 작별을 고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내다보고 있나.

= 30대에는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을 거야, 라는 계획이 있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마음이 편하고 건강도 좋아졌다. 목표의식 같은 게 지금은 좀 잠잠한 상태여서 일단 해야 하는 일들 위주로 잘 해내고 당분간 일을 너무 크게 벌이지는 말아야지 싶다. 30대는 나도 처음이니까, 출발선에서는 지금의 이 바이브를 유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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