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고레에다 히로카즈 X 강동원, <브로커>를 말하다 ①
2022-06-10
글 : 남선우

영화 속 상현(송강호)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브로커> 팀의 트럭은 지체 없이 달리고 있다. 지난 달 27일 칸 프리미어로 시동을 건 그들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고 돌아온 지 열흘 만에 한국 극장가에 도착했다. 덕분에 <브로커>를 일찍 만나본 관객들은 알 것이다. 이 작품이 힘주어 건네는 부드러운 메시지는 이동과 이동 사이에, 불 꺼진 모텔 방이나 공중의 놀이기구 안에서 전해진다는 것을. 촘촘한 일정으로 바쁜 <브로커> 팀의 이야기도 비슷할 테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말하지 못한 감상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맺어졌을지 모른다. <씨네21>은 그 틈을 비집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강동원의 대화를 주선했다. 일본에서 우연히 인사를 나눈 후 7년 가까이 <브로커>를 키워온 그들이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 다른 작업을 병행하면서 말이다. 국내 개봉을 일주일 앞둔 시점, 감독과 배우는 줌(zoom)을 켜고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기다렸다는 듯 주고받았다. 작은 모니터를 휴게소 삼아 <브로커>의 오랜 여행기를 들려준 두 사람의 줌터뷰는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기사에는 <브로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줌으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강동원(왼쪽부터)

고레에다 함께 있을 때는 자연스러웠는데, 막상 이렇게 화면으로 만나니까 괜히 긴장하게 되네요. 화상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강동원 저도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할까봐 긴장됩니다. 그럼 제가 감독님한테 질문을 한번 해볼게요. (웃음) 이미 많은 기자들이 물었겠지만, 한국에서의 촬영 중 어떤 점이 가장 좋았고,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고레에다 준비 기간을 포함해 촬영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강동원 힘들었던 점은?

고레에다 아마 나보다 프로듀서들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웃음) 제작진은 감독이 크랭크인 전까지는 대본을 완성할 거라 예상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스토리보드나 콘티를 완성하지도 않았죠. 보통 한국에서는 콘티를 완성한 다음, 그걸 바탕으로 투자자를 설득한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제 방식을 현장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아이고, 이거 골치 아프다’ 하셨을 거예요. 촬영, 촬영 후 편집, 대본 수정. 이 사이클이 제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일본에는 현장편집 전문가가 많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현장편집을 맡은 김만근 기사님이 제게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전 촬영할 때 배우들을 직접 보고 싶기 때문에 모니터 대신 카메라 쪽으로 가거든요. 만근씨도 평소 작업과 다른 느낌을 받으셨을 테지만 제 방식을 존중해주셨어요. 동원 씨는 어떠셨어요? 나 같은 감독과 같이 일하면서 ‘어, 이건 평소와 너무 다른데?’ 싶은 위화감을 느끼진 않았나요?

강동원 저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장르영화를 많이 찍은 배우다 보니 <브로커> 현장이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콘티를 많이 바꾸시는 걸 보면서 감독님 스타일을 빨리 캐치했죠. 한국에서는 원래 편집감독님들이 편집을 계속 해가면서 촬영이 이뤄져서, 그런 것은 전혀 낯설지 않았고요. 다음에 또 감독님과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레에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웃음)

강동원 재밌었어요!

고레에다 이런 환경이라면 또 한국에서 영화를 할 수 있겠다고 실감합니다. 그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만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강동원 아마도 다음에는 더 편하게 찍으실 수 있을 거예요.

<브로커> 현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우리만의 리듬으로

고레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신주쿠가 맞나요? 호텔 로비에서였던 것 같은데.

강동원 하이, 소오데스! (네, 맞습니다!)

고레에다 정말 우연히 만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원씨가 제게 선물을 잔뜩 안겨주셨어요. 그게 김이었는데, 왜 먹을 것만 그렇게 챙겨줬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강동원 그게 우연이었나요?

고레에다 네, 우연히 만났는데 정말 맛있는 김을 주셨어요!

강동원 우연이었군요! 근데 그 전에도 한번 만나기로 얘기가 나오지 않았었나요?

고레에다 서로를 소개해주겠다는 분이 계셨죠. 그 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식으로 다시 인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동원 아, 헷갈리네요!

고레에다 호텔 로비가 첫 만남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처음 <브로커>의 플롯을 썼던 게 2016년이에요. 강동원 배우와 우연히 만난 직후 그 인상을 가지고 플롯을 썼을 겁니다. 지금은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었는데, 이후에 동원씨가 자주 가는 부산의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죠?

강동원 암소갈비!

고레에다 그거 맛있었죠. 갈빗집에서 만나기 전에 플롯은 이미 동원씨에게 전달되었고요.

강동원 맞아요.

고레에다 그때 동원씨가 한국에서 영화를 이런 식으로 찍어보자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줬잖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뭔가 현실적이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였던 이 프로젝트가 부산에서 동원씨를 만난 이후 가능성을 찾게 됐죠.

강동원 이건 실현시켜야겠다 싶었어요.

고레에다 감사합니다, 정말! 외국 프로젝트의 경우 꼭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주장해도 일방적으로 실현시키기기 어려워요.

강동원 만남부터 완성까지 7년이 걸렸지만, 실은 빨리 찍을 수도 있었는데 더 잘 찍으려고 기다린 거잖아요. 일찍 찍었으면 팬데믹이 심각했을 때 개봉했을 수도 있어요.

고레에다 그렇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프랑스 분들께 죄송스럽지만, 프랑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한번 찍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해외 작업이 더 잘 돌아갈 수 있는지 배웠어요. 한국에서의 작업은 순서도, 타이밍도 베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강동원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찍으실 때는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고레에다 (미소와 함께 끄덕끄덕) 하루에 여덟 시간만 촬영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물론 기술 스탭들은 다들 놀랍도록 뛰어났어요. 거기에 더해 이게 결코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점이긴 한데, 노동시간 규정이 정말 엄격해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하루에 2시간밖에 일을 할 수 없어요. 카트린 드뇌브씨가 촬영장에 있는 시간과 아역배우의 스케줄을 맞추기가 어려웠지요. 그게 올바른 일이긴 하지만요. 한국 또한 노동환경이 잘 정비돼있지만 융통성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강동원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이 프랑스보다는 문화적으로 가까우니까요. 대사에 관해서도 그래요. 꼭 이해를 못 하더라도 한국어는 그 리듬으로, 느낌으로 알아들을 수 있지 않으셨을까요?

고레에다 특히 편집할 때 그걸 느꼈어요. 처음엔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죠. 불어의 경우 편집 포인트를 찾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프랑스어 사용자가 저와 함께 있어주지 않으면 장면을 어디서 잘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브로커>는 일어 영화를 편집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편집할 수 있었습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현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 기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X 강동원, <브로커>를 말하다 ②>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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