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하나인 우주인 장난감 버즈는, 극중극인 가상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다혈질이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버즈는, <토이 스토리> 프랜차이즈를 통해, 크고 작은 사이즈의 장난감, 말하는 장난감, 소리나는 장난감, 스페인어를 하는 장난감 등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되어 소개된 바 있다. 2022년 여름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새 장편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는 바로 그 극중극인 가상의 영화, 버즈 장난감의 영감이 된 영화다. 픽사 최초의 장편 SF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지난 4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버즈 라이트이어>의 제작진을 화상으로 만났다. 앤거스 맥클레인 감독과 갈린 서스만 프로듀서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 <버즈 라이트이어>의 첫 시작이 궁금하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장난감에 영감을 준 가상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앤거스 맥클레인 1999년 <토이 스토리2>를 보고 처음 버즈 장난감의 모티브가 된 것이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스타워즈> 프리퀄도 개봉했다. SF 르네상스라고 부를 만한 시기였고, 우리도 픽사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토이 스토리2>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영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버즈 라이트이어>를 준비하는 5년 반 동안 그 영역을 마음껏 탐험하려고 했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2>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던 20대의 내가 가졌던 갈망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 <토이 스토리>의 여러 캐릭터 중에서 버즈가 솔로 무비의 주인공이 된 이유가 있나.
앤거스 맥클레인 언제나 버즈가 가장 좋았다. 버즈는 외모처럼 강직하고 반듯한 성품을 가졌다. 그 점이 버즈로 하여금 자신의 직업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게 했고, 그로부터 코믹한 순간이 만들어졌다. 장난감일 때의 버즈는 로봇을 연상시키는 우주복을 입고 있는데, 이는 어린 시절 내가 정말 좋아했던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 SF를 떠올리게 했다. 사실 버즈를 주인공으로 해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하나의 도전이었다. <토이 스토리> 프랜차이즈와 연관될 필요가 없는 대신 현실적인 이야기, 실재적인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 처음 <버즈 라이트이어>에 대해 들었을 때, 버즈의 귀 모양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떠올랐다.
갈린 서스만 버즈의 머리카락에 대한 궁금증은 픽사에서도 대단했다. 우리의 첫 번째 피칭 제목이 ‘버즈에게 머리카락이 있다’였을 정도로 혹하는 부분이 있었다. 헤어스타일을 찾아내는 과정은 힘들기보다 재밌었다.
앤거스 맥클레인 버즈의 얼굴에서 애니메이션 히어로로서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건, 오히려 턱이라고 생각했다. 각진 턱을 가진 스테레오타입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SF 장편을 만드는 게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몽타주가 아름답고 또 슬펐다. 특히 우주에서의 시차 때문에 타인과 다른 속도로 살게 된 설정은, 버즈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로서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앤거스 맥클레인 몽타주를 보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사는 또 다른 SF 캐릭터를 떠올렸다니 재밌다.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두 캐릭터가 ‘시간’을 남들과 다르게 경험하는 공통점을 가진 것은 우연일 뿐, 캐스팅에 어떤 영향을 주진 않았다. 크리스를 버즈의 목소리로 캐스팅한 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우선 <토이 스토리>의 버즈와 <버즈 라이트이어>의 버즈는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같은 목소리일 수 없었다. 우리는 풍부하고 듣기 좋으면서 코미디와 드라마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거만함이 없는 영웅의 목소리여야 했다. 이렇게 정하고 난 뒤 크리스에게 연락했다. 그때 크리스가 애니메이션의 대단한 팬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녹음하는 동안 그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보여줬고, 애니메이터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버즈 라이트이어>의 SF 묘사는 약간 까다로웠을 것 같다. 1995년보다 과거가 시간적 배경이 되어야 했을 텐데, 그 시절로 돌아가 미래를 상상하는 건 어떤 작업이었나.
갈린 서스만 그 상상이 영향을 미친 부분은 스토리보다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터치스크린이 없고 화려한 컴퓨터 기술도 없었던 시대의, 물리적으로 구현이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려고 했다. 현대 SF의 깔끔함과 거리가 먼, 컴퓨터 키 조작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시대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필요했다.
앤거스 맥클레인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0~80년대가 상상한 미래였다. 그래서 초기부터 다양한 모양과 질감을 통해 네오-레트로 퓨처를 구현하려고 했다. 결국 투박한 스타일의 군용 비행선 디자인을 기본으로 1980년대 소비용 가전의 외양을 더한 중간점을 찾아냈다. 이 기준은 지상의 탈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우주선, 세트의 모든 프로덕션 디자인에 적용됐다.
- 목소리로 조작되는 우주항로 내비게이션 I.V.A.N이나 로봇 반려동물 삭스는 편리하려고 만들어졌는데 짜증나는 존재로 그려진다.
앤거스 맥클레인 맞다. 편리하지만 짜증나는 것이 기술이라고 봤다. 사실 기술을 디자인한다는 건 생활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인데 때때로 그 결과가 의도와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I.V.A.N이 잘 작동되지 않을 때 버즈는 인터넷 시대 이전에 게임 콘솔 팩에서 먼지를 불어내는 것처럼 기계를 꺼내 입으로 후후 분다. 이렇게 인간이 기술과 교류하는 방법은 의외로 코미디일 때가 많다.
- 영화를 소개하면서 “좋아하는 너디한 취향들의 아말감”이라고 했다. 평소에 레고 블록으로 여러 가지를 만드는 애호가로 알려져 있는데, 레고 외에는 어떤 취향들이 반영됐나.
앤거스 맥클레인 레고, 로봇, 영화. 이 세 가지가 나의 너드스러움(nerdity)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장난감에 대한 사랑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만 꼽자면 역시 레고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직접 만지고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 작업과 가장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복잡한 아이디어도 블록을 하나씩 더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구체화되는데, 영화 만들기도 비슷한 면이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탈것들이나 로봇 디자인들의 경우 내가 먼저 레고로 만들어서 가면 그걸 토대로 애니메이터들이 작업한 경우도 있다.
- SF는 물리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선 개연성을 얻기 힘들 것 같은데, 영화 속 과학은 얼마나 정확한가.
갈린 서스만 거의 정확하지 않다. (웃음) 과학에 바탕을 두었지만 상상에 더욱 무게가 실린 SF다. 하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미 항공우주국(나사)을 반드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픽사에서 이뤄지는 보통의 리서치보다 좀더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했다. 영화의 준비 과정에서 우주인 톰 매시번을 휴스턴의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여러 날 동안 센터를 견학하고 우주복의 구성, 수많은 버튼, 스위치, 손잡이, 다이얼, 배지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장치들을 실제로 만져보면서 왜 이런 모양과 질감을 가지게 됐는지 이해했다. 훈련용 에어 크래프트와 캡슐에 실제로 앉아보기도 했다. 과거에 만들어진 우주복은 작은 여성의 몸에는 맞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헬멧을 써본 뒤에야 우주인이 안경을 쓸 수 없고 수염을 기를 수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