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이전 영화들보다 차라리 그의 사진을 닮아 있는 영화 같다. 프로덕션의 양식미는 덜어내고 편집을 통해 인물과 자연, 로케이션에서 뉘앙스를 추출해내는 가운데 응시는 더욱 깊어졌다. 수사극이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두 남녀는 오감을 공유하며 사사로운 일들을 펼쳐가는데, 영화에서 유독 부각되는 것은 시선과 언어, 그리고 호흡이다. 히치콕의 보기가 관음에의 매혹이라면 박찬욱의 보기는 그보다 무구한 호기심에 가깝다. 복수심, 강박 등 병든 내면을 탐미적으로 해부하는 작가인 박찬욱은 품위 있는 성정과 사회적 족쇄에 묶인 사랑의 처참한 경로를 또 한번 황홀하게 따라간다. 영화는 차마 감지 못한 시신의 눈, 핸드폰 화면의 액정 등을 이용해 하염없이 흔들리는 얼굴을 엿본다. 한편 뜻이 통하지 않을 때도 각자의 언어를 천연덕스레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는 스마트폰 번역 앱, 전자시계를 통해 소설적 감흥도 돋운다. 디지털 기기로 발생한 소통 양식과 영화 문법 사이에 절묘한 접점을 마련한 <헤어질 결심>의 몽타주가 결과적으로 고풍스럽게 다가온다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다.
슬픔 앞에서 물에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반응하는 이가 있다면, 사랑 앞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젖어드는 사람에게도 마침내 파도는 친다. <헤어질 결심>은 뒤늦은, 그러나 그만큼 거센 사랑의 파도에 관한 영화이며 박찬욱 감독은 만조의 경지로 미결된 사랑 앞에 장탄식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지만,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도 있어."(<헤어질 결심>의 형사 장해준은 타인을 묘사하듯이 자신에 관해 발설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CHECK POINT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속 음악 교사 베로니끄(이렌 자코브)는 자신을 미행하며 흔적을 남기는 인형술사의 존재를 알아차린 뒤 즉각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서로를 향한 침착하고 집요한 탐구 끝에 어느 날 조우한 두 남녀는 베로니카의 가방 속에서 립밤, 고무공, 언젠가 찍은 필름 사진 같은 것들을 꺼내어 만진다. 어떤 감독들은 영화적 재료가 되기엔 사소하고 보잘 것없어 보이는 일상의 도구들 사이에서도 쓸쓸한 기운을 읽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