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윤웅원 건축가의 '헤어질 결심'의 공간 구조에 관하여
2022-07-14
글 : 윤웅원 (건축가)

<헤어질 결심>을 보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서래(탕웨이)의 행동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낯선 행동으로 가득하고, 공감을 요구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지만 이해가 안된 적은 없었다. 영화를 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야기의 전개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설명하는 다른 구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쥐>와 <헤어질 결심>의 포스터는 특별하다. 배우들의 모습을 요란하게 전시하는 다른 영화 포스터들과 다르게, 두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념 다이어그램 같은 느낌을 준다. 박찬욱 감독이 이런 방식을 생각의 도구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고, 영화가 만들어진 후 포스터가 제작되었을 테지만 이 두 포스터는 영화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시간, 혼돈 속에서 생각이 정리되는 바로 그 순간, 즉 개념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박쥐>의 포스터는, 태주(김옥빈)가 사제 상현(송강호)의 목을 잡고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태주가 상현의 목을 조르는 행위와 두몸이 겹쳐진 형태 때문에 성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포스터는, 딜레마에 빠진 상현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사제라는 영화의 개념은 <박쥐>에 나오는 놀랍도록 창의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동인이다.

<헤어질 결심>의 포스터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수갑을 공유한 형사 해준(박해일)과 피의자 서래(탕웨이)의 모습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비켜 앉은 두 남녀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래의 손가락 하나가 해준의 손을 살짝 덮고 있다. 이 손의 모습은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눈을 감고 있는 형사 해준이 피의자 서래의 손가락을 방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형사의 딜레마’를 암시하고 있다.

건축가가 자주 사용하는 설계 방법의 하나는 다이어그램으로 건물을 개념화하는 것이다. 가끔 냅킨이나 영수증 위에 그린 스케치가 건축가의 영감을 보여주는 표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건축은 단순화된 구조의 형태, 즉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계를 시작할 때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계획이 설명되면 이후의 모든 설계 과정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이어그램은 마치 식물의 씨앗처럼 앞으로 나올 모든 줄기와 잎과 열매를 품고 있다. <박쥐>와 <헤어질 결심>의 포스터 이미지가 그런 경우처럼 보인다. 신부와 형사 모두 자신에게 금지된 상대를 사랑하고, 존재론적 딜레마를 갖고 있고, 살인이 자신들을 곤경에 빠트린다. 그리고 <박쥐>의 두 남녀가 흡혈 욕망을 공유한다면, <헤어질 결심>의 형사와 피의자는 범죄를 공유한다. 나는 이 포스터를 보고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구조로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질 결심>과 <박쥐>가 비슷한 구조로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존재한다. <박쥐>는 흡혈이라는 소재가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직간접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면, <헤어질 결심>은 그러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헤어질 결심>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인 방법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박찬욱 감독은 살인의 구조를 만들 생각을 한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은 추락과 익사를 통해 살인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추락과 익사는 산과 바다라는 공간 구조를 통해 완성된다. <헤어질 결심>에서 살인과 공간의 구조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살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서래의 대사처럼, <헤어질 결심>의 사랑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죽음이다. 살인 사건을 통해 서래가 피의자로 형사 해준과 만나고, 또 다른 살인 사건으로 끊겼던 인연이 다시 시작하고, 자살로 사랑이 완성된다. <헤어질 결심>은 살인 사건을 통해서 사랑하게 되는 연인들에 관한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에서 잠복과 심문은 연애의 다른 표현이다.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공간의 특징은 전반부의 산과 후반부의 바다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추락사, 계단 공간의 지속적인 사용, 건물과 계단을 올라가는 추격 장면 등과 후반부 물에 관련된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이러한 공간 개념의 결과로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높은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그냥 바다도 아니고 아예 구덩이로 들어가는 하강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공간 구조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첫 번째 살인과 첫 번째 자살이 높이와 관계가 있다면, 세 번째 살인과 두 번째 자살은 물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세 번째 살인이 정확하게 물에 의한 살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시신이 수영장에서 발견되어, 물이라는 공간적 특징과 연관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물보다는 다른 도구가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나오고 있다. 물도 살인의 도구가 될 수 있는데 왜 배제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아마도 피에 관한 서사의 전개가 이 공간의 구조에 개입한 것 같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에서 공간의 구조가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되었는지는 이 구조에 리듬까지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로 잘 알 수 있다. 산 추락사 다음에 옥상 추락사가 오고(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작은 추락사도 사랑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이어서 수영장, 그리고 다시 작은 웅덩이가 온다. 이렇게 반복적이면서 축소되는 리듬으로 공간 구조가 짜여 있다. 영화 속 죽음과 공간들은 엔딩에 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서래가 해변에 웅덩이를 판 이유는 축소되는 공간의 구조로 더 잘 설명되고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미완성 프로젝트 ‘끝없는 타워’는 얇고 긴 원형의 기둥이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첫 아이디어는 종이에 그린, 위로 갈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수직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하면, 하늘로 사라지는 건물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하부에는 어두운 석재 마감재로 시작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투명한 유리 재료로 계획된다. 그리고 지붕 위로는 유리로만 건설된 높은 벽이 감싸고 있다. 이 때문에 아래서 건물을 바라보면, 건물 끝이 하늘로 사라져서 ‘끝없는 타워’가 완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지표면에서도 건물 주위를 해자처럼 파내서 건물이 땅속으로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처음의 아이디어가 스스로 진화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끝없는 타워’의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하늘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용과 공간의 구조가 정확하게 맞았을 때, 이따금 예상하지 못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헤어질 결심>은 공간의 구조가 잘 설계된 영화다. 그런데 구조로 생각하는 것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 역설은 ‘구조의 독재’에 관한 것이다. 구조가 먼저 정해지면 나머지는 그것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구조를 통한 계획은 생각의 피를 돌리는 데 효과적인 심장을 주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항상 얻게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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