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흥행 기대 미흡 속 후반부 평 갈리고 개봉 전후 온라인에 악평 쏟아져
일부 평론가 “바이럴 마케팅사가 투자영화 위해 경쟁작 혹평 의혹”마케팅사 “전혀 사실 아니다” 부인
지난 3일 개봉한 항공재난 영화 <비상선언>의 흥행에 ‘비상’이 걸렸다. 관객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가운데, 특정 세력이 일부러 악평을 쏟아냈다는 ‘역바이럴’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비상선언>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보면, <비상선언>은 전날까지 149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 뒤 이틀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으나, 이후로는 한주 앞서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에 밀려 줄곧 2위에 머물고 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초호화 캐스팅에다 순제작비만 240억원을 들인 기대작치고는 뜻밖의 성적이다.
이를 두고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 중반 테러범이 제압되기까진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항공재난 영화의 특장점을 잘 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 한재림 감독은 후반부에 코로나, 세월호, 사회적 분열 등 실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응축해 넣었는데, ‘그래서 좋았다’는 반응과 ‘다소 억지스럽다’는 반응으로 뚜렷이 갈린 것이다. 비행기 승객들이 막판에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세월호에 대한 애도’로 보는 관객과 ‘과도한 신파’로 보는 관객으로 나뉜다.
이런 관객 반응과 별도로 일부에선 ‘역바이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관객 반응이 갈릴 순 있지만, 개봉 전후 짧은 시기에 악평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건 비정상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이런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상선언> 개봉 전후 새벽에 비슷비슷한 악평이 트위터, 커뮤니티 게시판에 쏟아지는 정황을 보고는 역바이럴을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럴 마케팅은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내 제품 등 판매를 촉진하는 기법이다. 이와 반대로 경쟁사 제품 등에 대해 안 좋은 입소문을 퍼뜨려 판매를 방해하는 행위를 ‘역바이럴’이라 한다. 김 평론가는 “ㅂ스튜디오라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비상선언>에 대한 역바이럴 작업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2017년 광고대행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화장품·식품업계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하고 직접 일부 제품 생산도 하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출판·웹툰·음원 시장에도 진출해 몸집을 키웠다. 이 회사의 유아무개 대표가 쓴 에세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회사는 최근 사모펀드로부터 500억원대의 투자를 받았으며 코스닥 상장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올해 들어 영화업계에도 진출했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의 <외계+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산: 용의 출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헌트> 등에 투자했다. 다만 올여름 개봉 대작 ‘빅4’ 중 유일하게 쇼박스의 <비상선언>에만 투자하지 않았다. 투자한 영화들의 경쟁작인 <비상선언>에 대한 역바이럴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 평론가는 “의혹 제기 이후 화장품·출판업계에서도 이 회사의 역바이럴 행태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망한 회사도 여럿이라고 들어서 진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쇼박스 쪽도 “우리도 여러 제보를 받고 전문가 도움을 얻어 알아보는 중이다. 우선 사실 파악부터 하고 대처하려 한다”고 밝혔다.
영화계에서도 이번 일을 주시하고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영화에 투자하고 그 영화를 마케팅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일부러 경쟁작에 흠집을 낸 게 사실이라면 영화 생태계를 교란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이 회사의 유아무개 대표는 <스타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금까지 바이럴 마케팅을 하면서 잘되라고 마케팅을 했지, 망하라고 역바이럴이란 걸 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비상선언>과 관련한 역바이럴을 우리 회사가 하고 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ㅂ스튜디오 쪽 의견을 듣고자 여러 차례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